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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문학관 지상강좌 - 한국문학의 메카, 전북] (46) 근원적 고통을 문학으로 풀어낸 시인 이목윤

송일섭 전북문학관 학예사

고 이목윤 시인의 가족사진과 그의 작품들.
고 이목윤 시인의 가족사진과 그의 작품들.

이목윤 시인은 1936년 완주군 소양면에서 태어났다. 전주공업고등학교 토목과를 졸업하였으며 스무 살 때 갑종간부 133기(1956년) 공병 소위로 임관하였다. 1960년 한미연합 기동 훈련 중 부대원의 실수로 지휘자인 이목윤 중위는 포탄을 뒤집어쓰는 상황이 되었다. 포탄이 폭발하면서 오른손을 잃었고, 얼굴에 큰 화상(火傷)을 입었다. 1963년 육군 대위로 퇴역하면서 국가유공자가 되어 귀가했다.

 

그리움 대신 두려움 앞서

갈아타는 역사(驛舍)마다

멈칫멈칫 발걸음을 늦추며 쉬어 가네.

 

포화에 이지러진 이 몰골

발길 돌려도 어디 숨길 땅 없어

밤을 기다려야 돌아가는 길

 

사립문을 펼치니

우리집 누렁이는 짖어대고

동생마저 날 몰라보고 놀라 달아나네

“나여...” 입안 가득 돌던 침을 삼키고

장승처럼 서 있는 날 바라보던

어머니는 통곡으로 얼싸안네

-「귀가」 전문-

 

집으로 돌아오는 시인의 마음은 매우 불안하고 복잡했다. 그 두려움은 기차마저 멈칫멈칫 발걸음을 늦추며 쉬어 간다고 표현하였다. 하근찬의 『수난이대』에서 아들이 전쟁터에서 돌아온다는 소식에 역(驛)으로 마중을 나갔다가 목발에 의지한 아들 진수를 보고 “에라 이놈아!”하고 울먹이던 만도의 모습이 연상되는 시다.

그러나 시인은 슬픔에 빠지거나 절망하지 않았다. 학창시절 틈틈이 책을 읽으며 글을 썼던 일을 떠올렸다. 바로 그 이듬해 전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였다. 1964년에는 〈문예가족동우회〉를 결성하면서 문학에 빠져들었다. 1967년에는 『문예가족』이라는 문학 잡지를 발간하였으며 중간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오늘에까지 이르게 하였다.

유인실은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영혼의 반짇고리』의 시평에서 ‘시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지닌 평생의 ‘고통 콤플렉스’를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고 했다. 군대에서 겪었던 참혹함은 그에게 실존의 위기를 안겨주었다. 시인은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몸부림을 하였으며 ‘존재의 구원’을 향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해야 했다. 그래서 시인의 시에는 유독 ‘절대’, ‘무한’, ‘영혼’이라는 시어가 자주 보이는데, 그것은 시인이 평생을 통하여 그토록 갈망했던 새로운 세계라고 하였다.

 

한때라도

꽃처럼 피어서

눈물 글썽이는 영혼에게

핏물 뚝뚝 지는

감동을 베푼 적이 있는가

 

한 번이라도

새처럼 노래를 불러

땅끝으로부터 끓어오르는 회한을 쏟아

밤이 무너지는 울음

울게 한 적 있는가

 

과연 시인답게 살았는가

체면 털고 인정 털고

몇 사람이나 그렇게 대답할까

 

해 저무는 산모롱이에서

손가락을 깨물어 본다.

-「나에게 묻는다」 의 전문-

 

그래서 시인은 늘 자신에게 다그쳤다. 비록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왔지만 “눈물 글썽이는 영혼에게 핏물 뚝뚝 지는 감동을 베푼 적이 있는가”라고 묻는다. 아울러 ”한 번이라도 새처럼 회한을 쏟아 울어 본 적 있느냐“고 묻는다. 시인의 삶은 자기 존재의 토대를 인정하면서 지향해야 할 세상을 한순간도 잊지 않았다. 그는 구도자의 자세를 견지하면서 문학을 반려로 삼아 시를 썼으며, 그동안 첫시집 『바람의 이랑을 넘어』(1992)를 비롯한 『별 밭이랑에 묻고』(1996), 일역(日譯) 시집 『귀택(歸宅)』(2000), 『지리산 연가』(2004), 『차나 한 잔 더 드시게』(2005), 『영혼의 반짇고리』(2014), 『은하계 아내별 통신』(2019) 등을 출간했다.

그후, 시인은 유년 시절의 고향 ‘완주군 소양면’의 아름다움과 전설, 설화 등이 사라져가는 것이 안타까워서 고향 이야기를 조곤조곤 쏟아내어 『소양천 아지랑이』라는 장편소설을 썼다. 소설까지 쓴 시인은 내친김에 문단에 이름을 알리기 전에 써 두었던 단편소설들을 묶어 『비둘기자리 별』이라는 소설집을 냈고, 이 외에도 8편의 소설을 남겼다. 2015년 7월 19일 제6시집 『영혼의 반짇고리』를 내고 역사소설 『약무호남 시무국가』를 집필하고 있는 사이에 사랑하던 아내 김남순 여사를 하늘로 떠나보내는 고통을 겪게 된다. 아내를 살뜰히 보살피지 못한 것을 자책하였지만, 때 늦은 자책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먼 하늘에 천둥이 울고/ 도시 숲이 노랗게 부서져 내리네(그의 시 「시인의 아내」의 일부)’라며 목을 놓아 울었다. 아내를 보낸 후 한동안 허송세월하다가 그의 자서(自序)에서 밝히듯 2019년 마지막일지 모르는 시집 『은하계 아내별 통신』을 출간한다. 은하계 안에 든 아내와 화상통화로 그리움을 달래는 시인의 모습이 비친다. 이 무렵부터 시인은 몸이 시들시들 아프고 숨쉬기조차 힘들었는데, 이는 스스로 마누라 곁으로 가고 싶어 애자져하는 병이라 하였다 한다.

 

설움도 원망도, 두려움도 다 벗어놓으니

우리의 이별은 이별이 아님을 봅니다.

당신이 먼저 가고

내가 뒤따라간다는 약속일 뿐입니다.

 

이승살이가 그러했듯이

저승살이도 당신이 먼저 가서

짐 들여 살림 정리하고

문간에 청사초롱 밝히려고

앞서 간 줄 압니다.

 

우리는 이별이 아닙니다

따순 밥상에 편한 잠자리 내주던 당신

다음 세상은 내조와 외조를 바꿔 살자던

당신의 농담에 당신이 무안해져

속절없이 먼저 떠난 줄 알기에

다시 만나는 저 세상은 꼭

당신이 낭군, 내가 아내 되는 약속드립니다.

-「이별이 아닙니다」의 전문

 

시인은 2021년 2월 18일 아내가 있는 은하계로 떠났다. 시인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했던 이승의 역사를 마감하고 은하계로 가서 부인 김남순 여사를 만났을 것이다. 아마 지금쯤은 시인의 약속대로 내조와 외조를 바꿔 알콩달콩 지내고 있을 것이다. 시인은 아내를 보내고도 5년 넘게 더 살면서 전북 문단의 어른으로 모범을 보이셨다. 항상 문우들을 아끼고 보살폈으며 ‘말년이 이만큼 즐겁고 행복할 수 있음은 / 나를 얼싸안고 얼러리 둥둥 / 사랑을 나누는 문인들 덕이라네’(그의 시 「노을이 아름다울 수 있음은」의 일부)라며 문인들과의 사랑과 우의에 늘 고마워했다. /송일섭 전북문학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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