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중
어둡다고 말하지 말자
밝지 않을 뿐이니까
희끄무레하게 끌고 가는 생의 붓질,
아무래도 나는
예능보다 예술을 더 사랑하나 보다
남들 앞에서
장기자랑 한번 하지 못했으니
호탕하게 한번 웃지 못했으니
두터운 유화의 밑바닥에서
끝없이 망설이며
수없이 고치고 지운 흔적이
내 몸 안에서 울고 있다
늘 덧나는 생의 높이,
나는 상처로 세운 나목이다
자꾸 헐벗는 나이에
오늘 또 바람이 불지만
이제 춥다고 말하지 말자
따뜻하지 않을 뿐이니까
생의 밑바닥에 귀 기울이면
더운 뿌리 한 줄기가
끝없이 어둠을 파고들며
수없이 초록을 새기고 있을 테니.
==================
“생의 밑바닥에 귀 기울이면” 상처투성이 나목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나목이 어찌 상처를 품지 아니하고 생존할 수 있단 말인가. 어쩜 그 상처는 가장 가난해서 버려진 생명에게 순백의 아름다운 한 모금 물 자국일 것이다. 그 자비가 초록으로 고개를 내밀 때 “희끄무레하게 끌고 가는 생의 붓질”이 아니라 초록빛 오로라 같은 황홀한 세상으로 따뜻하게 끌고 갈 것이다. 시인은 비움에서 시가 쌓인다. /이소애 시인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