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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완규 교수의 ‘마한이야기’] 마한문화, 일본 고대국가 성립의 기초가 되다

최완규 (전북문화재연구원 이사장)

오사카 加美 Y 1호 분구묘
오사카 加美 Y 1호 분구묘

일본의 방형주구묘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효고현 히가시무코(兵庫縣 東武庫) 2호분의 주구 내에서 한국 청동기시대 중기의 송국리형 토기가 출토되었고, 목관의 나이테 연대측정에 의하면 기원전 445년임이 밝혀졌다. 이 유적은 한반도 서남부지역을 중심으로 점토대토기와 철기문화를 가진 집단에 의한 마한의 성립과 관련된 새로운 정치변혁과정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도래인에 의해 축조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렇게 전래된 주구묘는 야요이 후기에 들어서면 지역적인 특징을 가지고 발전되어 가는데, 일본 고대문화의 중심지역인 긴끼(近畿)지방에서는 마한 주구묘의 변화와 동일한 패턴으로 축조된 분구묘가 출현한다.

분구묘라는 용어는 원래 일본 고고학에서 흙을 쌓아 분구를 갖춘 야요이 분구묘와 고분시대의 전방후원분을 구분하기 위하여 사용된 명칭이다. 한국 학계에서는 분구묘라는 용어를 그대로 수용해 사용하는 것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지만, 먼저 분구를 조성한 후 분구를 되파서 매장부를 지상에 두는 축조방법의 묘제라는 것에 대한 인식은 같이하고 있다.

영암 만수리 4호 분구묘
영암 만수리 4호 분구묘

마한 주구묘는 정치와 사회발전에 따라서 점차 그 규모가 대형화되면서 영암 만수리나 함평 예덕리 만가촌 분구묘와 같은 다양한 형태의 분구묘로 변화된다. 그리고 점차 대형화가 이루어진 하나의 분구 내에 다장(多葬)이 이루어지는데, 이는 농경위주의 생업경제에서 비롯된 혈연중심의 사회현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의 경우에도 긴끼지방의 오사카 우류도오(大阪 瓜生堂)유적과 카미(加美)유적에서는 장방형 분구에 다장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마한 분구묘와 속성을 같이하고 있다.

오사카 瓜生堂 분구묘
오사카 瓜生堂 분구묘

마한 지역과 일본 긴끼지방의 주구묘는 4세기 전반까지 유사한 형태의 분구묘로 변화 발전한 형태로 축조된다. 백제가 마한지역을 영역화하는 영향 속에서도 마한 분구묘는 백제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영산강유역이나 마한 전통이 강한 지역에서는 6세기 전반까지도 지속적으로 축조되고 있다. 한편 일본 긴끼(近畿)지역에서는 4세기 전반기에 들어서 다장 형태의 야요이 분구묘는 1인장인 전방후원분으로 변화되는데, 이는 권력자의 등장을 의미하며 긴끼 중심의 정치세력이 야마토(大和)정권의 중심에 자리잡게 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마한문화는 한반도 서해안 일대의 기층문화로서 백제 영역화 이후에도 지역적 전통에 따라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었고, 일본은 마한문화에 뿌리를 둔 전방후원분체제에 들어서면서 일본 전형의 고대국가로 발전해 가는데 이를 계기로 마한 분구묘와는 차별화가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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