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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이름에서 만나는 베트남 위인들

박노완 주 베트남 대사

박노완 주 베트남 대사
박노완 주 베트남 대사

한국에서도 요즘은 거리이름으로 주소를 표기하지만, 그 역사가 길지 않아 보통사람들의 기억 속에 있는 거리이름은 종로, 충무로, 백제로 등 대표적인 도로명이 대부분이다.

내가 1995년 베트남에 처음 왔을 때 인상 깊게 보았던 것 중 하나는 도로변 상가 간판하단에 도로이름과 번지수까지 정확히 적혀있는 주소표기였다. 이곳은 주소를 표기할 때 도로이름으로 반드시 표기하기 때문에 약속장소를 정할 때나 관광지를 찾아 갈 때 늘 도로이름을 접하게 된다. 심지어 작은 골목까지 도로표기가 잘 되어있어서 찾는 데 불편함이 없다. 거리이름이 적힌 주소를 들고 낯선 곳을 찾아 갈 때, 대부분 택시기사들은 작은 골목까지 잘 알고 있어서 놀랐던 기억도 많다. 처음에는 도로이름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었는데, 유난히 위인들의 이름이 도로명에 많이 쓰였다는 것을 차차 알게 되었다, 베트남 사람들이라면 거의 알고 있는 위인들이며, 베트남 역사에 영향을 미친 일부 외국 위인들의 이름을 딴 거리들도 있다.

베트남에서는 일상적으로 거리이름을 접하게 되는 문화이다 보니 거리이름을 통해 위인들의 업적이 베트남 사람들의 머릿속에 잘 각인되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세월이 지나도 일상에서 매일 접하기 때문에 잊지 않고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1975년 통일이후 민족독립에 큰 공헌을 한 호치민 주석의 이름을 따서 사이공시를 호치민시로 헌법에 명기하여 사용하고 있을 정도이니 베트남 사람들이 역사적 위인을 존경하고 기리는 모습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모습들이 오늘날 베트남 민족의 정체성과 자긍심 고취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 같다.

위인들의 이름을 딴 거리들이 수두룩하지만, 어느 도시에서나 자주 볼 수 있는 거리이름을 예로 들면, 하노이 락롱꿘 거리와 어우꺼 거리는 건국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신과 아름다운 산신의 이름이며, 하이바쯩 거리는 1세기경 중국에 항거하여 최초로 베트남을 독립시킨 두 명의 쯩 자매를 일컫는 말이다. 또한, 쩐흥다오 거리는 13세기경 몽골군의 침입을 막아내고 베트남을 지킨, 우리의 이순신 장군과 같은 전쟁영웅을 기리고자 하는 데에서 비롯되었다. 호치민에 알렉산드르 드 로드 거리는 알파벳을 이용하여 현재 사용하고 있는 베트남 문자를 만든 프랑스 신부이름을 딴 거리이며, 1891년 사이공에 천연두와 광견병 확산을 막기 위해 실험실을 설치한 미생물의 아버지 파스퇴르 이름을 딴 거리도 있다.

이처럼 거리이름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베트남이지만, 아쉽게도 베트남에는 한국을 연상시키는 거리이름은 사실상 없다. 50년 전 월남 파병용사들이 호치민시에 건설한 대한로(大韓路)가 있었으나, 호치민에 거주하고 있는 일부 한국 사람들의 기억에만 존재 할 뿐, 현재는 사용하지 않아 아쉽기만 하다. 다만 서울의 용산구와 베트남 중부 꾸이년시와 자매결연을 통해 상호 문화거리 조성 차원에서 서울 용산구에 작은 규모의 베트남 문화거리와 베트남 꾸이년시에 용산 거리만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서울의 테헤란로가 한국과 이란간 우호관계의 상징물인 것처럼, 2022년 수교 3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과 베트남간의 우호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도록 베트남에 한국거리, 한국에 베트남 거리 조성을 추진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박노완 주 베트남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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