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연애하고 갈래요? 잘 해 드릴게”
영화 ‘죽여주는 여자(2016년)’에 나오는 대사다. 올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으로 인기가 높은 배우 윤여정(74)이 출연했다. 이 영화는 홀로 사는 노인의 무연고사를 다루고 있지만 주인공은 이른바 ‘박카스 할머니’다. 고령의 남성들이 모이는 공원 등에서 박카스를 파는, 서비스(성행위)가 죽여주는 여성이다. 여기서 외로운 노인들이 박카스를 사는 행위는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일이요, 주인공이 박카스를 파는 행위(성행위)는 성욕과 함께 생활의 의욕을 잃어가는 고령의 남성노인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다.
이에 앞서 2002년 개봉한 영화 ‘죽어도 좋아!’는 노년의 성생활을 노골적으로 그려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서 70세를 넘긴 두 노인은 각자의 배우자와 사별한 뒤, 죽음보다 더 외로운 생활을 한다. 그러다 두 사람은 공원에서 운명처럼 만나 뒤늦게 결혼을 하고 거의 매일 뜨거운 밤을 보낸다. 당시는 낯설고 파격적인 소재여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두 노인의 섹스 장면까지 자세히 그려 찬사와 비판이 쏟아졌다.
이들 영화의 진화처럼 우리사회에서 금기시되던 노인의 성 문제는 아직 ‘남사스럽긴’ 해도 부끄러운 일은 아니게 되었다. 이러한 세태는 지난 4월 대한임상노인의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이범석 원장(국립재활원)이 발표한 ‘노인의 건강한 성생활’이란 발제가 증거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 성생활이 줄어들 것이란 편견과 달리 노인들도 왕성한 성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날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60~64세는 84.6%, 65~69세는 69.4%가 성생활을 하고 75~79세의 58.4%, 80~84세의 36.8%도 성생활을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60대의 절반 이상, 80대 노인도 20~30%는 성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자료는 이달 2일 연세대 염유식 교수(사회학과) 등이 서울 거주자의 성생활을 연구한 결과와 거리가 있다. 성인의 36%가 지난 1년간 성관계를 갖지 않았다(sexless)고 응답했고 60대 여성의 경우는 47%에 달했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아직 우리사회가 성생활을 입에 올리기를 꺼려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좀 오래된 통계이긴 하나 미국은퇴자협회(AARP)가 2010년 45세 이상을 대상으로 발표한 통계도 비슷하다. 이에 의하면 지난 6개월 동안 남성은 키스와 포옹 67%, 성적인 스킨십과 애무 54%, 성교 33%, 구강성교 20%, 자위 34%의 성행위를 했다고 대답했다. 반면 여성은 이보다 낮아 키스와 포옹 49%, 성적인 스킨십과 애무 35%, 성교 23%, 구강성교 12%, 자위 12%의 성행위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유재언, 2018). 성별 차이가 있지만 상당히 많은 중고령자가 성생활을 즐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성생활 만족도는 한국이나 미국 모두 그리 높지 않다. 한국의 경우 60대 남성 40% 여성 30%, 70대 남성 33% 여성 28%며 미국은 60대 남성 52% 여성 41%, 70대 남성 26% 여성 27%에 그쳤다. 성생활에 만족하지 않는 노인이 다수를 차지한다. 이유는 남성노인의 경우 발기의 어려움, 사정량 감소, 성관계 지속시간 감소 등이, 여성노인의 경우 폐경으로 질벽이 얇아지고 질 수축 강도가 줄어들며 질 윤활액 감소로 인한 성교 고통이 성생활을 방해하는 주요 요인으로 꼽혔다. 이범석 원장은 원활한 성생활을 위해 남성은 발기부전 치료제를, 여성은 윤활제 사용을 권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60대 이상 남성은 실데나필(비아그라) 50mg에서 100mg으로, 타다라필(시알리스)은 10mg에서 20mg으로 증량하면 발기부전 치료가 가능하며 그래도 반응이 없으면 주사제를 사용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여성의 경우 성교 통증은 글리세린을 주성분으로 하는 수용성 윤활제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친밀감 형성이다. 남성노인은 일반적으로 삽입성교를 해야 만족하지만 여성노인은 삽입보다는 포옹이나 키스, 신체접촉 등 정서적 교감을 더 중시한다. 또 건강한 성생활을 위해서는 남녀 모두 평소 유산소운동과 케겔운동을 하는 게 성생활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걷기 달리기 등을 꾸준히 하면 성기능 장애를 예방하는데 도움이 되고 항문을 조이는 케겔운동은 요실금을 줄이고 성감을 높여준다.
이와 함께 고령층의 성생활이 활발해지면서 증가하는 성병도 문제다. 미국의 경우 질병관리본부(CDC)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 중고령자에게 대표적인 성병인 클라미디아, 임질, 매독의 감염비율과 감염건수가 대폭 증가 추세를 보였다. 우리나라도 보건복지부의 노인 성생활 실태조사(2012)에서 성병 감염빈도가 36.9%로 높았으며 임질 50%, 요도염(질염) 17.2%, 사면발이 5.7% 순으로 나타났다. 성인용품 구입 경험자도 19.6%에 이르며 그 중 발기부전치료제가 50.8%를 차지했다.
하지만 노인 대상의 성교육이나 성상담을 받은 경우는 1.2%(2017 노인실태조사)에 불과해 체계적인 성교육과 성상담이 절실한 형편이다. 전국적으로 노인복지관 등에서 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으나 체계가 잡혀있지 않고 전문성도 미흡한 편이다. 전주시의 경우 양지노인복지관과 안골노인복지관에서 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2008년 문을 연 양지노인복지관 노인성상담센터(전화 282-8899)는 전문교육을 받은 노년의 성상담사 6-7명이 번갈아 상담을 하고 있다. 2012년 시작한 안골노인복지관 노인 성(性)·마음상담센터(전화 243-4377)도 성상담과 함께 부부집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밖에도 노인요양병원이나 요양원 등 집단생활을 하는 노인과 만성질환이나 치매, 장애, 독거노인 등의 성문제 해결도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다.
/전 전주시노인취업지원센터장
노년 성생활의 놀라운 건강효과
흔히 ‘지푸라기 들 힘만 있어도’ 성생활이 가능하다고 한다. 식욕과 함께 성욕은 인간의 본능이다. 노년에도 젊은 시절만큼은 아니라도 여전히 성적 욕구는 살아있다. 노년의 성생활은 노인들의 자존감과 효능감을 높이고 정서적 안정에 도움이 된다. 나아가 주관적 건강을 높이고 사회생활에 활력을 불어 넣어 성공적 노화로 이끄는 원동력 중 하나다. 전남대 의대 박광성 교수(비뇨의학과)는 “노년의 활발한 성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첫째 좋은 신체적 건강 유지, 둘째 배우자 혹은 성 파트너의 존재, 셋째 젊었을 때부터 규칙적인 성생활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노년의 성생활은 △뇌 기능 향상 △심혈관질환 예방 △우울감 개선 △전립선질환 예방 △골다공증 예방 △피부 건강 유지 등 놀라운 건강 효과를 불러온다. 다만 노년층은 신체 기능이 많이 떨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무리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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