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발전과 후배 양성에 여생을 받쳤던 故채금석 선생에 대한 정보가 중구난방식입니다. 이제라도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바로 잡아야 합니다.”
채금석 선생은 그의 이름을 딴 금석배 축구대회가 창설될 정도로 한국축구에 위대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지만, 정작 출생지 등에 관해서는 잘못 표기되거나 제각각이어서 혼란을 주고 있다.
따라서 채금석 선생의 발자취 등을 재조명해 정확하고 통일된 정보제공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실제 지난 2005년 월명종합경기장 인근에 설치된 채금석 선생의 동상과 추모비에는 출생지가 구암동(260-1)로 표기돼 있지만 최근 근대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오토바이 채금석’ 기획전시에는 성산면 도암리 마동마을로 나와 있다.
또한 채금석 선생의 출생년도가 대부분 ‘1904년 4월 9일’로 되어있지만 호적상 출생년도는 ‘1908년 4월 9일’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현재 채금석 선생의 출생지와 출생년도 등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에 대한 검증 및 확인작업은 수 십년 동안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채금석 선생의 추모비 내용의 경우 오류가 많다는 지적이 있지만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추모비에서는 ‘1934년 광주학생사건과 관련, 일본 관헌 폭행사건으로 중학교를 중단’으로 표기했지만 광주학생은 1929년11월 3일 광주에서 일어나 전국적으로 확산됐던 대표적 학생독립운동으로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
채금석 선생은 1934년이 아닌 1929년 당시 경신중 재학 시절 광주학생사건 시위 도중 일경을 구타한 이유로 학교를 그만두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부분은 2000년 12월 발행된 ‘군산시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군산시사에서는 ‘1929년 채금석 선수가 학생활동에 가담한 이유로 퇴학당해 다시 소년팀이 활기를 띠고 그로부터 1년안에 호남의 최강팀이 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처럼 내용이 서로 다른 이유는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닌 구전 등을 통해 기록된 것을 토대로 기재했기 때문이다.
채정룡 체육학 박사(전 군산대 총장)은 “채금석 선생은 군산의 낳은 축구 영웅이지만 이에 대한 기본 자료부터 제대로 검증되지 않고 있다”면서 “추모비를 비롯해 곳곳에 출생지 등과 관련해 오류 또는 사실과 다른 내용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성산면 동암리가 출생지일 가능성이 높고, 태어난 해도 1904년으로 알려져 있는데 1908년도가 맞다”면서 “지금이라도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 축구 관계자는 “채금석 선생을 재조명할 수 있는 세미나 및 심포지엄 등을 통해 잘못된 부분을 찾고 이를 시급히 수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발이 빨라 ‘오토바이’라는 별명을 가진 채금석 선생은 지난 1995년 12월 26일 일생을 마칠 때까지 오로지 축구발전과 후배 양성에만 전념한 진정한 축구인으로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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