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속담이 있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과 상통하는 말이다. 하지만 살다 보면 종종 분수를 알면서도 지키지 못할 때가 있다. 결국 알고는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삶의 복합성 때문에 분수를 넘는 뱁새 꼴이 되기 마련이다.
새마다 각양각색이다. 황새는 몸집이 크고 당당하지만 뱁새는 작고 초라해 볼품이 없다. 그래도 뱁새는 황새가 별거냐며 보란 듯이 흉내를 내본다. 황새는 아랑곳없이 “너쯤이야!”하고 커다란 날갯죽지를 치켜들고 긴 다리를 내민다. 뱁새 역시 한 치도 안 되는 보폭으로 한 자가 넘는 황새걸음을 따라 하다 이윽고 “우지직!” 소리와 함께 그대로 바닥에 나뒹군다.
가난하지만 착하게 사는 소녀가 있었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그 아이를 도와주었다. 그런데 몇 달 만에 그만두게 되었다. 소식을 끊고 자취를 감춰버려 황망한 마음에 여기저기 수소문한 결과 절도죄로 파출소에 잡혀 있는 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처음 대했을 때의 순수했던 내면까지 피폐해져 있었다. 먹고 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했다고 한다. 여린 풀잎과 같던 아이가 이 거친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었을까?
그는 평범한 가정에서 살아가는 또래들의 삶을 동경했지만 술고래 아버지와 병든 할머니와 살며 생활고를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갖고 싶고 먹고 싶은 게 많은 철부지 소녀가 아닌가. 부모에게 버림받고 살면서 온갖 욕구를 부추기는 현실의 유혹을 쉽게 뿌리칠 수가 있었을까? 사랑과 물질의 결핍을 이겨내지 못한 어린 것이 사회에서 격리될 수 밖에 없는 게 온전히 그 아이만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이는 이미 자신이 뱁새라는 걸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황새를 쫓기는 원치 않았지만 황새의 보폭으로 걸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버거웠을 것이다. 분수를 지켜야 한다는 높은 가르침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늘 고민인 뱁새였다. 그러니 모든 뱁새의 비극이 그저 나약한 의지나 허영심에서만은 아닐 것이다. 살면서 생겨나는 숱한 틈들로 말미암아 시나브로 가혹한 운명의 무대에 내몰리는 뱁새도 있다.
요즘 하루가 멀다고 청렴을 최고의 기치로 삼아야 하는 정치인들의 뇌물 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다. 그 진실이 뇌물이냐, 선물이냐, 차용이냐, 하는 것은 검찰과 법원에서 결정할 일이니 개인인 내가 판정을 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약자가 뇌물을 건넬 때는 두 가지 상황이 있다. 첫째는 나에게 위해를 가하지 말라는 것, 둘째는 권력자를 등에 업고 이득을 보자는 거다. 결국 권력을 남용하여 부조리를 저지르는 황새 가면을 쓴 뱁새들이 아닐지.
우리 역시 애정이나 관심 혹은 사회적 의무나 사명으로 종종 원치 않은 상황에 내몰리고는 한다. 끊임없이 우리를 또 다른 사회적 일탈과 새로운 시험 앞에 놓이게 한다. 혹여, 내 주변 사람을 황새걸음으로 걸어가도록 내몬 적은 없을까. 분명히 거기에는 우리의 무관심과 이기심도 함께했으리라.
바야흐로 자비로운 마음과 공공연한 도덕성이 끝 간데 없이 확산되고 있다. 가끔 내 주위의 진실을 외면하며 살지는 않았는지. 환하게 웃는 내 아이들을 보면서 가엽은 작은 새의 눈물이 스치고 지나간다. /박경숙 수필가
△박경숙 수필가는 <계간수필> 에서 등단하였다. 전북문인협회와 행촌수필, 영호남수필, 계간수필문우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전북수필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천일제면 대표다. 계간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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