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우리나라 전통의 굿이 좋아 공부하며 우리 굿의 예술적 가치를 알리고 있는 국가무형문화재인 남해안별신굿의 이수자이다. 굿을 좋아하는 이유는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었다. 그냥 굿이 좋았다. 어릴 적 동네 앞산 굿당에서 굿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옛 속담에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라는 말이 있다. 이 속담처럼 굿을 보며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풍성하게 차려진 떡과 과일 등 맛난 음식을 얻어먹었다. 운이 좋으면 맛난 돼지고기 수육 그리고 당시 무녀, 악사들이 좋아하여 굿 틈틈이 마시던 모 제약회사의 “박*스”도 손쉽게 얻어먹었다. 필자의 어릴 적 굿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굿은 좋은 기운을 빌고 마음에 편한 말을 해준다. 특히 그 시절 더욱이 좋았던 것은 굿이라는 멋진 볼거리에 먹을거리가 풍성했던 것이다. 어찌 이보다 좋은 볼거리가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지금은 안타깝지만 그러한 굿의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가까운 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가 없다.
10여 년 전 전라남도하고도 진도에서의 추억 여행을 떠나보자. 달빛이 밝은 어느 날 나지막이 들려오는 은은한 징 소리에 순간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고, 도착한 그곳에는 병풍에 다소곳이 입혀진 지화와 흐드러진 지전이 마치 산수화를 보듯 단아하게 펼쳐져 있었다. 또한 황제의 백 첩 반상 부럽지 않은 제수 음식들이 오색 빛깔을 품으며 한 상, 두 상, 서너 상에 자태를 뽐내고 빛을 발하고 있었으니 이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다양하고 귀한 먹을거리요. 무녀 양손에 움켜진 신칼과 정주의 영롱한 울림은 이름 모를 망자의 해원을 위한 영험한 소리였으니, 그것은 세습되어 내려온 진도 씻김굿의 모습이었다.
우리나라의 굿에는 참으로 많은 종류의 굿이 있다. 드넓은 바다와 바다로 나간 이들을 위한 별신굿, 지역의 수호신을 모시고 마을의 평안과 생업의 번창을 기원하는 대동굿 그리고 돌아가신 망자의 영혼을 위로하고 씻겨주는 씻김굿. 모두 각각의 특성과 예술적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로 지정되어 그 음악과 행위가 보존하고 있다. 진도의 씻김굿은 특히 돌아가신 분을 위한 굿이다. 씻김굿에는 살아계신 분을 위한 굿도 물론 있지만 돌아가신 분의 액을 풀어주고 축원을 담은 해원의 주술적인 의식이 강한 한국인의 마음, 바로 정(情)의 굿이었다.
씻김굿의 먹을거리에는 항상 다양한 향토음식이 존재한다. 여느 지역의 굿 상차림처럼 다양하고 풍성하다. 진도에도 특별함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뜸북국이었다. 뜸북국은 뜸부기 또는 듬부기라는 진도 조도 일대에 자라는 해초를 잘 건조하여 끓인 국이다.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푹 고아서 나온 육수에 이 뜸부기를 넣고 갖은양념으로 더욱 감칠맛이 나게 그 국의 진미를 더 했다. 진도의 뜸북국은 밤을 새워가며 진행되는 굿 의식 중에 요깃거리로 먹는 영양 만점의 향토음식이었던 것이다. 일반 톳처럼 생겼지만, 그리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다. 입천장에 부드럽게 닿는 감칠맛이 그만이다. 뜸부기 밑에 살포시 내려앉아 있는 소고기는 뜸부기를 비웃듯 진한 고소함과 넉넉함으로 화답한다. 춘향가의 이몽룡과 성춘향만이 합이 되란 법이 어디 있던가?
전통예술과 산해진미山海珍味는 이렇듯 빼놓을 수 없는 궁합인 듯하다. 오늘 우리 모두 지역의 맛난 향토음식을 찾아 먹어보자. 왕후장상이 부럽지 않게 전라북도의 판소리를 들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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