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문화사학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얼마 전, 서울에서 여러 명의 손님이 왔다. 교과서를 만드는 출판사 팀장들이었다. 그들과 대체 교과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깜짝 놀랐다. 어느 시점부터 우리나라 초중등교과서에서 외국 문학이 다 빠지고, 그 자리를 한국문학부터 알아야 한다며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품만 수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괜찮을까?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 시절에 읽은 ‘고전’이라고 불리는 좋은 책들은 인생의 길을 제시하기도 하고, 평생에 걸쳐 동반자가 되기도 하는데…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바꿔서 말한다면 ‘가장 세계적인 것이 가장 지역적인 것이다.’일 수도 있지 않은가? 출판사 사람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멀지 않은 미래에 엄청난 문화손실을 초래할 것이다. 진시황 시대에 분서갱유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원군 시대에 쇄국주의도 아니고, 어쩌면 문화 쇄국주의에 다름 아닌 일일 것인데, 이를 어쩐다? 한참 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예언의 나팔을 불어라! 오오, ‘바람’이여 / 겨울이 오면 어찌 봄이 멀 것이랴.” 셀리의 <서풍의 노래> 중 한 소절이다. 서풍의>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T.S. 엘리엇의 <황무지> 는 얼마나 가슴을 아리게 했던가? 황무지>
“바람이 분다 /...살려고 애써야 한다.” 발레리 <해변의 묘지> 는 절망에서 희망으로 전이하도록 하는 마법의 자양분과 같은 시다. 해변의>
스물 여섯의 나이에 요절한 시인 J. 키츠의 <그리스의 항아리에 부치는 노래> 들은 얼마나 많은 청춘들의 마음을 요동시켰던가? 그뿐인가, 에밀리 디킨슨, 하이네, 헤르만 헤세, 릴케, 랭보, 로버트 프로스트, 로버트 브라우닝과 엘리자베스 브라우닝 등의 시들, 도연명이나, 이백, 두보, 소식 등 수많은 동 서양 시인들의 시가 사람들의 영감의 샘물이 되고 그리움의 자양분이 되었다. 그리스의>
시만이 아니고 우리들 가슴을 뛰어놀게 했던 소설이나 여타의 문학작품들은 또 어떤가.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 카프카의 <성> , 도스토옙스키의 작품과 톨스토이, 카뮈, 괴테, 사르트르 등 수많은 책들이 사람들의 인생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가. 성> 차라투스트라는>
불세출의 문장가인 셰익스피어나 헤밍웨이의 글을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에 읽지 않고 지낸다면 그 감성들이 얼마나 서운할까?
책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간의 한평생으로는 다 경험할 수 없는 세상의 이치를 수천 년의 세월 속에 먼저 살았던 위대한 사람들이 겪고 본 것들을 기록한 인류의 금자탑이다.
그래서 허만 멜빌은 <백경> 에서 다음과 같이 술회하지 않았던가.“나에게 있어서 고래잡이 4년은 하버드 대학이자 예일대학이었다.” 백경>
우리나라 문학과 작가들을 도외시하며 서양 문학만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고, 연암 박지원이나 다산 정약용, 그리고 백석 이청준 최인훈 김수영 신동엽 박경리를 비롯한 우리나라 이름난 작가들의 글과 함께 서양 고전을 골고루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상상력은 자유롭게 노닐어야 하는 법, 제가 원하는 대로 실들을 엮어서 짜야 하네.” 노발리스의 충고와 같이 인류의 혼과 우리의 삶에 필요한 자양분이 담겨 있는 고전인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을, 6대 4나 아니면 7대 3 정도로 배분해서 교과서에 수록해야 하지 않을까?
교육부 담당자들이나 도서관의 사서들, 그리고 서점을 운영하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문학에 몸담고 있는 작가들이 이 제안에 귀 기울여 주었으면 한다. 거듭 말하지만 고전 속에 길이 있다!
/신정일(문화사학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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