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진 전 전주시노인취업지원센터장
노년기는 신체적, 경제적, 심리적 측면에서 상실의 위기에 직면하는 시기이다. 노화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고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외부환경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자아존중감이 감소하고 불안감과 우울감이 증가한다. 더구나 직장으로부터의 은퇴와 함께 가족이나 친구의 죽음 등은 노인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네트워크를 대폭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러한 시기에 종교 활동은 노후 삶의 질을 높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노년기 종교 활동에 관한 연구가 모두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지만 대체로 종교생활은 주관적 안녕감을 강화하고 우울증을 저하시키며 사망률과 유병률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노후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의 유지 및 증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국내외 연구결과, 종교생활을 하는 노인이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생활 만족도가 높고 소외감이 낮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노인들이 종교생활을 통해 생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자아 존중감을 높이며 친교활동 등으로 활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는 노인의 얼굴 표정이 더 밝다고 말하는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다.
실제로 노후에는 젊은 시절보다 종교에 의지하는 비율이 더 높다. 보건복지부의 2020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의 59.8%가 종교활동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2020년 11월 한국리서치의 종교인식조사에 나타난 우리나라 18세 이상 남녀 중 종교를 믿는 사람 48%에 비해 훨씬 높은 비율이다. 또 성별로는 여자 노인이 64.4%, 남자 노인이 53.6%로 여자 노인의 종교 활동이 더 활발했다. 종교별로는 개신교(기독교) 24.3%, 불교 23.8%, 천주교 10.8%, 유교 0.6%, 원불교 0.2% 순으로 나타났다. 이들 노인은 52.9%가 주1회 이상 종교생활을 하고 있었다.
종교생활은 노후에 활력을 주기도 하지만 죽음에 이르러 마음의 평안과 위로를 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면 실제로 종교생활을 하는 노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자(이소원·김찬우, 2016; 김형수, 2020).
#1 “성당에 다니면서 장례미사에 참 많이 다녔어요.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정성껏 보내드리고 사도회 분들도 최선을 다해 돕는 것을 보니 참 든든했어요. 전 천주교 장례미사로 제가 떠났으면 좋겠어요. 다른 분들에게 성당에서 해 주었던 것처럼 저에게도 해 주시지 않을까요? 마지막까지 저를 도와 줄 분들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참 좋아요.”
#2. “찬송 부르면 내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도하면서 회개도하고요, 사랑하며 살아야겠다는 나만의 결단을 하죠. 특히 기도는 나를 바라보고, 내가 사는 힘이에요. 이제 바라는 것은 없어요. 천국 갈 확신은 있으니까 욕심 부리지 않고 봉사하며 살다가 아름답게 떠나고 싶어요.”
#1과 #2는 각각 신앙경력 23년의 천주교 신자(80)와 20년의 개신교 신자(67)가 들려준 노후 종교생활에 대한 소회다. 기독교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며 오히려 새로운 생명, 즉 영원한 생명을 위한 출발이며 과정이라고 규정한다. 유한한 인간이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신의 은총에 의해 영원한 생명으로 덧입혀지고 새로운 존재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죽음의 단절은 이별과 슬픔을 동반하지만 부활과 영생의 상급을 바라보며 서로 위로하라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중심으로 죽음의 공포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다.
#3 “저의 어머님은 매일 천수경을 들으시는 불교신자였어요. 저도 날마다 (이곳에) 올 수만 있으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다 하겠어요... 화장실이 절은 다 바깥에 있잖아요. 등산객들이 많이 사용해서 지저분해요. 그래도 화장실 청소 다하고, 그 많은 사람들 공양 값 주냐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나는 말 못하는 부처님하고 한 약속을 지켜야지,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아요. 내가 그렇게 경험을 했고, 그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나는 존경스럽고, 내가 지금까지 결혼해서 애를 둘 낳을 때까지 건강하게 살 수도 있고, 얼마나 좋아요.”
#3은 50년 동안 절에 다니고 있는 불교신자(72)의 얘기다. 불교적 관점에서 죽음은 깨달음의 지혜로 본다. 불교에서 죽음은 본래 처음부터 없다는 깨달음이요 죽음을 두려워하는 주체적인 의식실체로서의 자아도 없다는 깨달음을 통해서 온다. 죽음이라는 관념을 없애버림으로써 죽음을 극복한다. 즉 삶에 대한 집착과 죽음이라는 공포, 이 두 가지 허구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인간은 해탈하게 된다는 것이다.
위 사례에서 보듯 종교를 가진 노인들은 사후세계에 대한 인식을 통해 현세를 살아가는 의미와 가치를 발견한다. 죽음불안을 감소시키고 사후에 갈 곳이 있다는 현실적 평안함을 얻는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상호작용의 기회가 부여돼 정서적 안정감을 갖고 소외감이 감소된다. 따라서 종교생활은 인생의 끝자락에서 아픔과 외로움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얻고 자신을 사랑으로 감싸주는 스승을 얻는 것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영성 계발
노년기에는 웰빙(well-being)과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욕구가 공존하는 시기이다. 잘 사는 것과 잘 죽는 것의 기로에서 노인들은 생애주기적인 발달과업으로서 자아통합의 과제에 직면하게 된다. 사는 동안 부정적인 경험이나 갈등의 기억들을 보다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하고 다가올 죽음을 또 다른 현실로 수용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영성(靈性, spirituality)에 대한 인식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죽음에 직면해 있다는 현실적 자각은 자신과 영성의 관계를 더 밀접하게 만든다.
여기서 영성은 흔히 기독교적 관점에서 언급되고 있으나 이를 뛰어 넘는 개념이다. 기독교에서 영성은 인간에게 부여되는 하나님 또는 하느님의 생명력을 의미한다. 즉 물질적인 것(animalis)과 반대되는 의미로 거룩한 생명의 기운으로 정의된다(한국가톨릭대사전). 하지만 영성의 본질은 ‘성스러운 것에 대한 추구’로 반드시 신이나 초월자를 믿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영성을 사회과학적으로 정의하면 자연, 예술, 우주, 실제 인물, 위대한 사상이나 지적인 이념 등과 같은 자신보다 더 차원이 높은 존재와의 관계에서 삶의 의미 또는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 내면과정이다(임연옥·허남재, 2017).
따라서 영성계발 또는 영적 성장을 바탕으로 노년기에 겪는 여러 스트레스 상황에 대해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대처하게 되면 풍요로운 노후 정신생활과 함께 죽음불안을 낮출 수 있다. 영성계발은 노인의 심리적 안녕이나 주관적 안녕을 긍정적으로 유지하게 하는 자원 혹은 적응 유연성으로 기능한다.
/조상진 전 전주시노인취업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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