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호 농촌진흥청 차장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 흔하디 흔한 것/ 동시에/ 최고의 것/ 가로되 사랑이어라’(밥, 고은) 시인은 두 사람의 마음을 뭉근하게 데워주는 최고의 음식으로 ‘밥(쌀)’을 골랐다. 쌀은 가장 원초적이고 즉흥적인 미각을 깨워 사람 사이를 끈끈하게 잇는다. 우리 민족에게 쌀은 종교와 문화, 과학이 한 데 어우러진 결정체이자 보배다. 다 같이 일하고 함께 먹고 허물없이 어울리는 공동체를 유지케 한 원동력도 바로 쌀이다. 전북은 한반도 쌀 문화의 중심지이고, 김제 벽골제는 벼농사 문화의 근원지다. 전북 쌀은 맑은 물과 풍부한 일조량 덕분에 좋은 환경에서 재배되고 ‘쌀알이 굵다, 밥맛이 좋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여기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고 있는 ‘신동진’ 벼가 한몫했다. ‘신동진’은 전라북도 벼 재배면적의 64%를 차지할 정도로 전북을 대표하는 품종이다.
농촌진흥청에서 개발(1999년)된 지 20년이 넘도록 인기를 누려온 ‘신동진’은 밥맛 좋기로 유명하다. 특히 일반 품종에 비해 쌀알이 1.3배가량 굵어 크기가 확연히 구분되기 때문에 다른 쌀과 섞이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을 살려 전북만의 단일품종 상표를 만들고 쌀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신동진’의 품종 수명을 23년으로 볼 때, 경제적 파급효과는 총 49조 5000억 원(추정)에 달할 정도로 상상을 초월한다.
하지만, 최근 ‘신동진’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올해 전북 지역 에서는 이삭도열병 등이 크게 발생해 피해를 입었다. 가을장마로 인해 병이 발생하기 좋은 환경이 갖춰진데다 잦은 비로 방제 시기마저 놓쳐 병이 매우 빠르게 진행된 것으로 판단된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신동진’의 이삭도열병 저항성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 품종을 넓은 면적에서 오랫동안 재배할 경우 기존의 저항성을 침해하는 병원균의 밀도가 증가하게 된다. 아울러 병이 생기기 쉬운 환경이 조성될 경우 그 피해 속도는 더욱 빨라진다. 전북의 벼 품종을 다양하게 개발해 재배 안정성을 높이고 품질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다.
농촌진흥청에서는 밥맛, 외관 품질, 도정 특성, 내병충성 네 가지요소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 최고품질 벼 품종을 선정하고 보급하고 있다. 현재까지 개발된 최고품질 벼 품종이 20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수광’은 고창군 통합 상표인 ‘높을고창 쌀’의 원료곡으로 사용돼 프리미엄급 품종으로 이름을 알렸다. 전라북도농업기술원에서는 전북 지역에 특화된 벼 품종 개발을 추진해 쓰러짐에 강하고 향이 우수한 밥쌀용 향미 ‘십리향’을 선보였고, 농협과 함께 ‘예담채 십리향미’ 상표를 개발해 소비자의 눈길을 끌었다. 농촌진흥청과 전라북도농업기술원은 전북 쌀 고유의 ‘쌀알이 크고 밥맛이 좋다’는 상품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신동진’의 장점은 그대로 살리면서 병에는 훨씬 강한 새로운 벼 품종 ‘참동진’을 개발해 보급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전북의 기후와 토양, 정서를 담아낸 지역 맞춤형 품종이 다양하게 개발될 때 전북 쌀의 경쟁력은 한층 높아질 것이다.
쌀 한 톨의 고요 속에는 만인의 땀과 정성, 무한한 노고가 깃들어 있다. 밥맛이 깊어지는 계절, 햅쌀로 정성 그득한 밥 한 그릇 지어 최고의 음식 호사를 누려보면 어떨까. /김두호 농촌진흥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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