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수 한국은행 전북본부장
요즘 A 과장은 중고거래 재미에 푹 빠져있다. 코로나 19로 인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눈에 보이는 필요 없는 물건들을 하나, 둘 정리하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었고 이제는 제법 다양한 물건을 거래한다고 한다.
최근 우리나라 중고거래 시장이 큰 폭으로 커지고 있다. 국내 한 경제연구소는 관련 보고서에서 국내 중고시장의 거래규모가 2008년 4조 원에서 2019년 20조 원으로 약 다섯 배 가량 늘어난 것으로 추정하였다. 특히 모바일 앱을 통한 거래가 크게 늘어 지난해 기준으로 스마트폰 이용자 4명 가운데 1명이 중고거래 앱을 사용 중이라고 한다.
이러한 중고거래 확대 배경으로는 우선 MZ세대의 대두를 꼽을 수 있다. 타인의 시선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MZ세대는 소비에 있어서도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하는 실용적 소비성향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격이 합리적이고 제대로 기능한다면 중고 제품이라도 개의치 않고 구매하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이 MZ세대를 중고거래 시장의 주요 참여자로 이끌고 있다. 지난해 한 리서치 기관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20~30대 응답자의 약 83%가 최근 1년간 중고거래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한편 정보통신기술 수준이 높아진 점도 최근 중고거래 시장의 급격한 확대에 기여하는 요인이다. 최근 기술발전 등으로 모바일 앱을 이용한 중고거래의 편의성이 개선되고 거래비용은 낮아졌다. 사고 팔 수 있는 중고물품만 있다면 누구나 가까운 거래자를 손쉽게 찾을 수 있다. 또한 앱 안에 내장된 거래자 평가 시스템을 활용하여 믿을만한 거래 상대방을 선택하여 거래를 할 수 있다.
이러한 중고거래 확대는 나에게 쓸모없는 물건이 다른 사람에게 이전되어 가치 있게 사용된다는 점에서 사회 전반적인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제고한다. 특히 디지털 거래 환경에 익숙한 젊은 세대의 효용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구하기 어려운 제품이나 값비싼 제품을 중고시장을 통해 ‘공유’하면서 낮은 비용으로 높은 만족을 얻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는 2021년 소비 관련 주요 키워드로 ‘N차 신상’이라는 용어를 제시한 바 있다. 여러 차례 손바뀜(N차)이 일어난 제품이라도 제대로 기능한다면 나에게는 신상품과 같다는 의미이다.
중고거래가 우리 경제 지표에 미치는 영향은 사회 후생에 주는 영향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다. 한 국가의 경제 상황을 나타내는 대표적 통계인 국내총생산(GDP) 측면에서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GDP는 한 나라 안에서 일정 기간 새롭게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가치를 합산한 통계인데, 중고물품은 그 해 신규로 생산된 재화가 아니어서 그 거래가 GDP 측정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처럼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지만 통계에는 반영되지 않는 활동을 어떻게 적절히 경제 통계에 반영할 것인지는 통계 편제 기관의 오랜 고민이기도 하다.
최근 모바일을 중심으로 한 중고시장 확대가 다양한 소비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나 그러한 혜택이 세대별로 다르다는 점은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코로나19 이후 정보화 능력이 삶의 필수요건으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모바일 접근성이 낮은 계층의 디지털 격차는 더욱 심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북지역은 고령 인구 비중이 높아 이러한 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해 보이는데, 노인분들을 위한 디지털 교육 프로그램 운영은 하나의 방안일 것이다. /한경수 한국은행 전북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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