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석 논설위원
코로나19가 일상을 바꾼 것과 달리 20여년 전 국민들을 안방에 잡아 놓은 것은 사극(史劇) 이었다. 잡아 놓았다는 표현보다는 자발적으로 TV 앞에 앉아 사극에 몰입했다는 말이 더 적절하다. 사극은 1980년대부터 방영되기 시작했지만 국민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부터 였다.
사극 붐을 주도한 것은 드라마 허준 이었다. ‘동의보감’의 저자인 조선 중기 의학자 허준의 일생과 동양의학에 관한 이야기를 1999년 11월부터 2000년 6월까지 64부작으로 다룬 드라마 허준은 63.7%라는 역대 사극 최고 시청률 기록을 세웠다. 평균 시청률이 48.4%에 달할 정도였다.
MBC가 제작한 드라마 허준과 쌍벽을 이룬 사극은 KBS의 태조 왕건이다. 2000년 4월부터 2002년 2월까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밤 방영된 사극 태조 왕건은 60.2%의 최고 시청률로 드라마 허준의 뒤를 이었다. 방영 기간이 허준보다 세 배나 긴 200부작의 대작이었다.
태조 왕건은 고려를 건국한 왕건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였지만 한 쪽 눈에 안대를 낀 궁예와 비운의 후백제 견훤왕의 인기가 높았다. 드라마 허준과 태조 왕건에 이어 대장금, 주몽, 여인천하, 용의 눈물, 장희빈, 해를 품은 달 등이 40%가 넘는 시청률로 안방 사극 붐을 이끌었다.
후삼국 시대와 고려 통일의 과정을 다룬 사극 태조 왕건의 주인공은 왕건과 궁예, 그리고 후백제의 왕 견훤이다. 지금의 경북 문경 출신인 견훤은 신라 말기의 혼란했던 시기 전주에 후백제를 세웠지만 아들의 반란으로 자신이 세운 나라의 문을 스스로 닫아야 했던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이었다.
견훤왕 관련 유적지는 후백제의 왕도였던 전주를 중심으로 한 전라도는 물론 경상도와 충청도 일대에 광범위하게 남아 있다. 경북 문경시 가은읍 갈전리에는 견훤의 탄생지로 전해지는 금하굴과 견훤의 사당인 숭위전이 자리하고 있다. 경북 상주시에도 견훤사당과 견훤산성이 있고, 충남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에는 견훤왕릉이 자리잡고 있다. 후백제의 왕도였던 전주에도 동고산성과 남고산성, 중노송동 인봉리 등 유적지들이 있다.
그러나 고려 통일 이전 후삼국 시대의 한 축이었던 후백제의 역사문화는 다른 역사문화권과 달리 제대로 조명받지 못해왔다. 늦은 감이 있지만 지난 26일 전주에서 후백제문화권 지방정부협의회가 발족했다. 전주시와 완주·장수·진안군, 경북 문경시와 상주시, 충남 논산시 등 후백제 문화유적을 보유한 7개 시·군이 참여했다.
전라·경상·충청이 함께 뭉친 후백제문화권 지방정부협의회는 후백제 역사문화의 체계적 정리와 위상 정립, 관광자원화 등에 나설 계획이다. 후백제 문화유산 실태조사와 유적 발굴, 후백제 역사문화권의 법제화 등 할 일이 적지 않다. 여기에 더해 망국적 지역주의를 깨는 첨병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더 좋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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