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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든 미련한 사람

송준호 우석대 교수
송준호 우석대 교수

지하철역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이렇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깨끗이 잊어버리라고, 이 미련 곰탱아!” 그 목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눈길이 한꺼번에 그쪽으로 몰렸다. 서른 살 조금 넘어 보이는 청년이 휴대폰을 손에 쥐고 씩씩대고 있었다. 그는 수많은 시선을 의식하고는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화급히 찔러 넣었다.

열차에 올라 빈자리에 앉았는데 아까 청년이 외쳤던 말이 귀청을 서성대는 것이었다. 그가 말한 ‘미련 곰탱이’는 짐작컨대 그의 절친이거나 가까운 후배 아닐까. 얼마 전에 헤어진 여자친구일 수도 있었다. 그들 가운데 누군가가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된 일이나 어떤 사람을 깨끗이 잊어버리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걸 알고 답답한 마음이 앞서서 자신도 모르게 공공장소에서 그토록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호기심이 슬그머니 발동했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서 ‘곰탱이’를 검색해 보았다. ‘행동이 느리고 둔한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되어 있었다. 예문을 보니 청년의 표현대로 그 앞에 하나같이 ‘미련’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는 게 아닌가. 이번에는 검색창에 ‘미련’을 입력해보았는데, 거기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찾아냈다.

한자말 ‘미련(未練)’은 ‘품었던 감정이나 생각을 딱 끊지 못하는 마음’이라고 풀이되어 있었다. 그 비슷한 뜻으로 쓰이는 말이 ‘집착(執着)’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곰탱이’ 앞에 쓰는 순우리말 ‘미련’은 stupidity, silliness, asininity 같은 로마자로 뜻 풀이를 대신하고 있었다. 이 셋 모두 ‘어리석음’의 뜻을 가진 말이었다.

모양이 같은 한자말과 순우리말 ‘미련’의 조합이 이토록 절묘할 수 있단 말인가. 생각이나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고 굼뜨면 사람한테 대고 뒤에 ‘곰탱이’까지 붙여 쓸까만, 복잡하게 따지고 말고 할 것 없이 미련한 사람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일을, 청년이 아까 소리친 대로 깨끗이 잊지 못하는 사람이, 집착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미련한 사람인 것이었다.

가운데 번호 하나가 어긋나는 바람에 1등 당첨을 놓친 복권이든, 오래전에 조용필이 외쳐 부른 <허공> 한 대목처럼 ‘돌아선 마음 달래보기엔 너무나도 멀어진 그대’든, ‘미련(未練)’을 버리지 못하면 결국 ‘미련’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그토록 아깝거나 후회막심해도 지나버린 날로 되돌아가는 건 불가능한 일. 복권이든 ‘허공 속에 묻힐 그날들’이든 곁에 없는 시간에 더 이상 가슴 태우지 않는 이들이야말로, 그리하여 앞에 놓인 시간에 눈빛을 반짝일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지혜로운 사람인 것이었다.

하긴 이것도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고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아는 체를 좀 했더니 웬걸, 못말리는 아재 개그 본능이 발동한 거냐면서 누군가 나를 놀려대는 것이었는데, 다른 누군가는 이런 말을 슬그머니 들이미는 것이었다. 살다 보면 어떤 일이 ‘힘들어’ 죽겠다고 하소연할 때가 있지 않으냐고, 그 까닭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그건 바로 힘을 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힘을 기꺼이 내려놓으면 힘들지 않아도 된다고, 정 내려놓기 싫거든 가까운 사람하고 나눠 들면 된다고, 그러면 적어도 힘을 절반으로 덜 수 있을 것 아니겠냐고, 그걸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사람이, 진짜로 미련한 사람인 거라고…. /송준호 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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