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약 1500여 년 전에 강씨 성을 가진 선비가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모친마저 병들어 자리에 눕게 되자 효자인 아들은 모친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어느 날 꿈속에서 산신령이 나타나 '관음불봉 암벽에 가면 빨간 열매 세 개가 달린 풀이 있을 것이니 그 뿌리를 달여 드려라. 그러면 네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다.'라며 선몽했다. 강 선비는 풀을 찾고 뿌리를 캐어 달여 드렸더
니 모친의 병은 완쾌됐고 그 씨앗을 인공적으로 재배하게 됐다. 이 것은 마치 사람의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인삼이라고 불리게 됐다.
백제삼의 전통을 이은 금산곡삼
인삼은 생육환경과 지리적 조건, 채취 기간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일교차가 큰 금산에서 생산된 인삼은 몸체가 작지만 희고 단단한 것이 특징이다. 2월과 4월, 8월 상순에 뿌리를 캐내 대나무 칼로 껍질을 벗겨내면 다음 과정은 뜨거운 햇볕과 바람이 맡는다. 맛과 향이 강해 예로부터 약으로 쓸 만하다는 평가를 들었던 금산인삼. 전통성과 독창성에 안정성까지 더하며 산업적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형세견백차원(形細堅白且圓). 백제삼을 설명할 때 자주 쓰는 말이다. 가늘고 희고 단단하며 둥근 것이 특징으로 금산곡삼을 설명할 때도 등장한다. 금산인삼은 모양도 작고 연근도 4년 근에 불과하지만 맛과 향이 강해 으뜸으로 꼽혔다.
중국 양나라 무제시대의 약물학자 도홍경이 쓴 '본초강목'에도 인삼은 백제 것이 좋다는 기록이 있다. '모양이 가늘고 단단한 인삼이 모양이 크고 허하고 연한 인삼에 비해 약효가 우수하다'고 기록했다. 고려삼의 전통을 이은 것이 개성직삼이라면 백제삼의 전통은 금산곡삼으로 이어졌다.
금산인삼은 재배방법부터 개성식과 달랐는데 밀식하며 햇볕을 충분히 받도록 했다. 또한 한여름인 7월부터 8월 사이 채취해 건조, 가공을 하다 보니 5년 근과 6년 근처럼 편대가 큰 대형인삼을 생산하기 어려웠다. 모양이 가늘고 작은 금산인삼은 둥글게 말아 곡삼으로 가공해왔다. 실제 1920년대만 해도 생삼보다 곡삼의 유통이 많았다. 1974년엔 금산인삼조합에서 검사 포장한 금산곡삼이 국내외 시장을 독점하기도 했다.
인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풍경은 금산 장날 인삼시장의 흔한 풍경이었다. 전국 여러 곳에서 생산된 인삼이 금산에 모였고, 인삼을 사려는 사람들로 시장은 붐볐다. 수요와 공급, 가격 형성이 이뤄지면서 금산은 국내 유일의 대규모 유통 중심지가 됐다. 금산인삼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금산곡삼을 언급하는 이유다. 과거처럼 둥글게 말지 않고 생삼을 햇볕에 말려 수분함량을 15% 이하가 되도록 가공한 것은 백삼이라고 부른다.
한국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국내외 인삼시장은 6년 근 직삼의 개성인삼과 4-5년 근 곡삼의 금산인삼으로 양대산맥을 이뤘다. 그러나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으로 개성의 인삼 산지가 사라지자 반사적으로 금산에서 생산되는 인삼이 크게 빛을 보게 된다.
세계가 인정한 농업유산이 되다
1500년 전통의 금산인삼 재배법은 세계도 인정했다. 2015년 국가중요농업유산 지정에 이어 2018년에는 세계중요농업유산 GIAHS에도 등재됐다. 농업유산은 농업인이 지역의 환경과 사회, 풍습 등에 적응하며 오랫동안 형성해온 유·무형의 농업자원을 의미한다.
일찍이 인삼산업이 발달해 인삼을 중심으로 지역 경제공동체를 형성했던 금산은 전형적인 산간분지로 인삼농사 짓기에 적합했다. 반음지성 다년생 식물인 인삼은 배수가 양호한 토양, 서늘한 생육온도를 유지해야 하는 작물인데, 금산의 기후조건은 인삼농사에 최적이었다.
세계가 금산인삼 농업의 보존가치를 인정한 이유는 일곱 가지다. 독특한 재배법과 인삼 생산 및 유통의 중심지라는 점이 첫 번째, 해가림 시설과 퇴비사용이 두 번째, 연작으로 인한 재배지 부족을 객토, 담수 등의 방법을 통해 논 재배로 확장하는 등 재배면적을 극대화 한 것이 세 번째다. 주민 생활양식을 반영한 다양한 농경방식, 개삼제와 금산농악, 금산인삼축제, 금산세계인삼엑스포 등 문화 발달을 견인했다는 점, 백삼을 곡삼 형태로 가공했다는 점도 보존 가치를 인정받은 이유다. 여기에 금산인삼은 사포닌 등 인삼의 8개 대표 성분 함량에서 대부분 최고치를 기록했다.
외부오염을 엄격히 차단하고 병해충 감염 차단 및 안전관리에 철저한 재배법은 금산인삼의 우수성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무엇보다 세계는 금산인삼 재배법의 독창성과 전통성을 인정했다. 대표적으로 순환식 이동농법 체계다. 휴경과 윤작을 통해 생물학적 회복의 과정을 거치고 예정지 관리를 통해 토양 물리학, 화학적 회복의 과정을 밟았다. 장기간의 휴경과 윤작은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기다림의 농법'이면서 독특한 토지 이용방식이다.
방향과 바람이 순환하는 해가림 농법도 금산인삼 재배법의 독창성으로 꼽힌다. 해가림 농법은 500년 이상 계승되어 왔음에도 일부 자재가 현대식으로 변화되었을 뿐 해가림 시설의 기본 원리와 구조(높이와 모양)은 현재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평균 해발고도 250m 내외의 산간침식 분지를 이루고 있는 금산. 주민들은 산간 구릉지 주변 마을에서 인삼을 재배하며 자연과 사람이 공생하는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최대 인삼약령시장과 으뜸 축제
금산인삼약초시장은 전국 인삼 생산량의 70%가 거래되는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연간 6200억 원 규모의 인삼과 약초가 거래되고 있다. 전국에서 생산된 인삼은 금산에 오고 나서야 비로소 귀한 대접을 받는다.
남북분단 직후만 해도 금산에서 생산된 인삼은 전국 생산량의 80%를 차지할 만큼 독보적이었다. 상황이 바뀐 것은 금산 사람들이 전국으로 인삼재배 면적을 확산시키면서 부터다. 자연스럽게 기술이 전수됐고 경작지도 넓어졌다. 전국에 인삼 경작지가 늘어났지만 가격 결정과 거래는 여전히 금산에서 이뤄지고 있다.
100년 역사를 간직한 금산수삼센타에는 시골 장날의 정취가 여전히 남아 있다. 금산장이 열리는 2일과 7일이 되면 수삼센터에도 활기가 넘친다. 장이 서는 전날(장안날)엔 도매시장이 문을 연다. 전국에서 대량으로 수삼을 구입하는 도매상인들도 장날 못지않게 사람들로 북적인다.
금산에는 국제인삼시장, 인삼종합쇼핑센터, 금산수삼센타, 농협수삼랜드, 금산수삼시장, 금산약초시장, 금산인삼약령시장 등의 전문시장이 형성돼 있다. 서울 약초시장, 대구 약령시장과 함께 국내 3대 약초시장의 하나가 바로 금산인삼약령시장이다. 백삼류의 건삼이 필요하다면 국제인삼시장을, 생삼을 구입하고 싶다면 수삼전문시장을 찾으면 된다.
금산인삼의 어제와 오늘을 체험하려면 40년 역사를 자랑하는 금산인삼축제를 찾으면 된다. 국내 최고의 산업형 축제로 인정받고 있는 금산인삼축제는 1981년 시작됐다. 1999년 이후 10여회 이상 전국 최우수 축제에 선정되며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관광축제로 자리 잡았다.
금산인삼축제는 2016년 세계축제협회(IFEA) 피너클 어워드 시상식에서 축제 이미지 등 6개 부문 최다 수상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대전일보=길효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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