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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과 함께하는 공간

이길환 길종합건축사사무소 ENG대표
이길환 길종합건축사사무소 ENG대표

아파트 게시판에 공고가 붙었다. 옆 단지 아파트를 가로지르지 말고 우회해서 다니라는 것이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와 옆 단지는 경비실만 있을 뿐 별다른 경계가 없다. 등하교하는 학생들, 강아지랑 산책하는 사람들 자유롭게 왕래하는 길이다. 어느 때부턴가 옆 단지 가는 길목에 자전거나 유모차가 다닐 수 없게 도로 경계석이 생기고 지금은 입주민들의 사유재산이니 출입을 금지한다는 배너와 함께 흙을 쌓아 막아 놨다. 많은 사람이 사는 공간이다 보니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소음이 심했나 보다.

화려하고 장식적인 미를 앞세운 과거 유럽의 건축계에 더욱 많은 사람에게 집을 만들어주기 위한 고민 끝에 나온 것이 대규모 공동주택이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공간이었고 소유가 아닌 주거 공간이었다. 사람을 감동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었던 건축이었지만 우리나라를 뒤덮은 아파트는 주거가 아닌 소유, 투기의 대상으로 변질한 채 서민을 괴롭히는 괴물이 됐다. 최대 용적률을 따지며 가구 수 늘리기 바쁜 우리나라의 아파트가 높은 담장과 게이트로 외부 출입을 차단하고 그들만의 성을 쌓을 때 사람을 위한 곳이 아닌 건물을 위한 도시가 되어 가고 있다. 아파트에는 많은 공간이 있다. 공간의 기능은 활동 목적에 따라 그 수요공간의 기능이 달라진다. 정원, 주차장, 흡연 구역, 스포츠시설, 독서실 등등 기능이 다양해진 만큼 그 공간이 사람과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요즘 공간이란 단어는 무한히 변신한다. 물리적 공간, 형이상학적 의미를 담은 공간과 가상공간을 포함해 다양한 이름을 가진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다. 유선, 무선으로 이어진 온라인 공간으로 소통의 창이 이동하고 증강현실로 가상공간을 체험하고 상대방을 만난다. 얼마 전 TV에서 증강현실을 이용하여 사망한 가족을 만나는 프로그램을 봤는데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여주는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놀라웠다. 물리학적으로 무엇인가 존재할 수 있는 영역이 공간이지만 전문화, 첨단화에 앞서 좋은 건축과 건강한 도시 공간으로 그 주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통상 4인 가족을 위한 정형적이고 획일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의 색채, 거주자의 취향 등을 고려하여 살기에 쾌적한 환경이 되도록 조화로운 색채 계획을 하는 것도 우리 사회가 가진 건축에 관한 생각의 다양한 면이라 할 수 있다. 1인 가구, 새로운 결합 공동체는 물론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도시에는 많은 이주민이 유입되고 있으며 다양한 구성원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아파트는 도시를 형성한다. 과거 끊임없이 이상적인 공동체 공간을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공동체 공간은 배제되고, 배타적이거나 투기판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사람은 계획적으로 만들어낸 공간에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우선으로 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우리 단지의 아이들이 아니어도 놀이터를 개방하는 것이 당연한 사고여야 하며 건물에 들어가면 사람들과의 관계도 좋아지고 자존감이 커지고 꿈을 꿀 수 있어야 한다. 아파트의 미래는 단순히 한 건축물의 이미지가 업그레이드되는 것이 아니라 바람직한 공동체를 이루어냄으로써 우리의 자아를 이상적으로 꿈꿀 수 있는 것이다.

오늘도 단지 내 어린이집이 마칠 시간이면 마중 나온 엄마들과 아이들의 재잘거림, 어느 집 아이가 리코더로 부는 에델바이스가 빌딩풍이 되어 적막하고 추운 겨울을 감싸주는 포근함이었으면 한다.

/이길환 길종합건축사사무소ENG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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