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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이승우 화백의 미술 이야기] 고흐의 여인 - 그 슬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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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의 <슬픔>

소피아 로랜이 주연 배우로 열연을 했던 영화가 있었다. 전장에 나간 남편을 찾으러 러시아에 갔을 때 그 광야 가득히 바람결에 넘실거리던 해바라기, 노란 해바라기의 물결이 파도가 되어 격정처럼 몰아치고 있었다. 그 영화가 지나간 뒤 적성국가인 러시아의 국화인 해바라기는 우리나라의 여인들의 옷이나 신발, 심지어는 핸드백에까지 등장하여 거리가 온통 해바라기로 출렁거렸었다. 해바라기, 잠시 그의 이름은 잊었다 해도 우리는 해바라기의 대입되는 정열의 화가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빈센트 반 고흐.

성이 고흐이고 이름이 빈센트인 그의 인생이 우울해진 데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는 영원한 이해자이며 후원인이었던 데오 반 고흐 말고도 남동생 한 명과 세 명이 있는 집안의 장남이었다. 원래는 형이 하나 있었으나 빈센트보다 1년 먼저 태어나서 일주일 만에 죽었다. 그런데 빈센트와 출생 월일이 똑같았다. 죽은 이 아들에 대한 양친의 아쉬움과 추억이 빈센트에게는 항상 심리적 압박으로 전해졌으니 그의 성격 형성에도 중요한 요소가 되지 않았F나 싶다.

여섯 살 난 빈센트가 칼뱅파의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길을 가고 있었다. 길을 가던 아버지가 오늘은 태양이 눈부시게 하얗다고 하자 그 말을 들은 빈센트는 저 태양이 어째서 하얀색이냐고 저것은 노란색이라고 우겼다. 그런 그가 뒤늦게 그림을 시작하고 노란색의 해바라기를 그렸다. 해바라기뿐만 아니라 그의 그림에는 보색인 청색과 대비된 노란색이 많이 등장한다. 현대의 의사들은 그것을 두고 안과적 질병이라고 한다지만---.

해바라기의 화가, 열정의 화가 빈센트. 그가 사랑의 늪에 빠졌다. 스무 살, 구필 상회의 런던 지점에 근무할 때 하숙집 딸 이슈라 로이어에게 구혼했으나 거절당하고 난 후 깊은 타격과 실망을 느꼈지만, 28살의 나이에 또다시 사랑에 빠졌다. 첫 번째 결혼을 사별로 끝냈지만 아이가 있는 사촌 누님이 그 대상이었다. 큰아버지가 노발대발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큰아버지 앞에서 촛불 위에 파리한 손을 올려놓고 내 손이 이 불꽃 속에서 견딜 수 있는 시간만이라도 그녀를 만나게 해 주십사 하고 애초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광기 어린 모습으로 애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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