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전라북도무형문화재 제46호 전라삼현육각 대금 예능 보유자인 전태준 명인이 별세했다. 전라삼현육각은 전국 각 지역에 전승되어 오는 삼현육각 중 전라북도 전주지역에서 전승되어져 내려오던 음악이다. 사라져만 가던 전라삼현육각을 그는 1983년 이정렬(피리), 이광남(피리), 김준기(장구) 등 옛 선·후배, 친구와 의기투합하여 복원에 힘썼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라북도의 향제 삼현육각으로 부각시켰다.
삼현육각은 일반적으로 피리 두 개, 대금, 해금, 장구, 북 하나씩 편성되어 연주되는 풍류 음악을 말한다. 이러한 삼현육각은 지역의 특색을 안고 다양한 음악이 계승되고 있는데 조선말까지 거상악<과거 연회에서 연주하던 곡을 뜻한다. 상을 받기 전에 아뢰던 음악으로 이때 부르던 노래는 대개 가곡, 가사, 시조가 있다>, 무용 반주음악, 행진 음악은 물론 지방 관아의 연향 및 고관의 행차, 사가의 연향, 향교의 제향 등에 사용되었다.
이러한 삼현육각은 맥을 잇기에는 연주가의 단절, 전승 가락의 소멸, 악보 부재 등으로 전승이 녹록지 못했다. 다행히도 삼현육각의 음악을 잇고자 하는 경기지역의 삼현육각, 해서지역의 해주, 은율 삼현육각, 영남지역의 통영삼현육각, 호남지역의 나주, 전주 농·민삼현육각 등은 어려움 속에서도 올곧은 전승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의 전라삼현육각은 오래전 관아와 민간을 중심으로 전승되어 온 소중한 전통음악으로 정자선-정형인-전태준에게 이어지고 있는 지역 시민의 삶에 묻어있는 생활 음악이다. 그러한 우리의 전라삼현육각은 전라북도의 특수성을 안고 전라삼현육각 보존회와 전라삼현육각 대금 보유자인 전태준에 의해 전승되고 있었다.
전태준은 전주시 덕진구 인후동 출신이다. 청년 시절 서울로 상경하여 1970년부터 1983년까지 13년간 종로에서 생활을 했다. 1974년 종로 삼청각에서 국악예술단을 이끄는 초대 단장으로 그 이름이 났으며 스물아홉의 나이에는 서울시의 단체등록을 한 30여 명의 단원을 이끄는 중요한 단장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때 함께 근무했던 명인, 명창을 살펴보면 유대봉 명창, 안향년 명창, 박후성 명창의 부인 백도화 선생, 정철호 명인 등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국악인들이다. 전태준은 종로 생활을 통해 국빈들과 외국 국빈들을 맞이하고 전통예술을 보여주는 자부심으로 생활했으며 그 당시 정화영, 이생강, 김일구, 김청만, 백인영, 김무길, 조통달, 김동진 등과 같은 기악 명인과 함께 종로 생활을 보냈다. 이후 1986년부터는 전북도립국악원 교수부장으로 15년간 재직한다. 오랫동안 보직에 있으면서 교수부에 교수음악회를 처음 만들었으며 전라북도의 전통음악을 함께 도민과 공유했다.
갑작스러운 전태준 명인의 부고로 국악계는 아픔이 크다. 전라북도를 대표하는 이러한 '전라삼현'의 특별한 전통음악은 전태준을 비롯 전라삼현육각 보존회의 노력 없이는 전승할 수 없는 전통예술이었으므로 이제 우리는 더욱 이러한 전라북도의 소중한 전통예술에 관심을 두고 계승자들과 함께 소중히 이어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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