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타이 들어보셨나요?"
몇 해 전 누군가와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눌 때 들은 말이다. 물론 당시에도 익히 들어본 이름이었고, 바로 '그' 빈타이에서 커피를 마시던 참이었다. 빈타이가 지역 사람들에게는 '전북의 스타벅스'로 불린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들었다. 최근 인터뷰를 해봐야겠다고 다시 마음먹은 것도 부여 롯데아울렛에서 빈타이를 본 직후였다. 전북 지역이 아닌 곳에서 처음 본 매장이었다.
하지만 막막했다. 인터넷을 찾아보아도 이상할 만큼 나오는 것이 별로 없다. 흔한 홍보성 기사는 물론이고 대표와 관련된 정보는 찾기 더욱 어려웠다. 그러던 중 지난해 나온 작은 기사 하나를 계기로 대표와 간신히 연락이 닿았다.
첫 통화에서 그는 웬만하면 외부 노출을 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정말 인터뷰를 꺼리는 분이구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다만 우리 지역(전북) 매체이기도 하고, 이번에는(인터뷰) 해보려고 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기쁜 마음으로 곧장 약속을 잡았다.
3월 말. 전주 호성동 빈타이 본점에서 강신석 대표(42)를 만났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시각. 가장 여유 있는 시간이라고 했지만, 강 대표는 로스팅이 한창이었다. 각 매장에 원두를 납품하기 위해 오전에 출근해 오후 3시까지 본점 로스터리에서 직접 로스팅한다. 인터뷰 내내 강 대표의 전화는 수없이 울렸고, 그를 찾는 방문객도 끊임없었다.
직접 만나본 그는, 순박해 보이는 웃음 사이로 진지함이 비쳤다. 커피를 순수하게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커피가 좋았어요
첫 시작은 라테 아트 사진 한 장이다. 사진을 본 순간부터 커피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부지런히 영상을 찾아보고 마침 일하던 레스토랑에 있던 커피 머신으로 한 시간 일찍 출근해 커피 내리는 연습을 했다. 커피에 대한 갈증은 커져만 갔고, 수소문한 끝에 강남에 바리스타 학원을 찾았다. 2006년. 전문적인 커피 교육이 대중화된 때는 아니었다. 40명이 넘는 수강생 가운데 지방 출신은 강 대표 한 명뿐. 그만큼 행복했고, 절실했다.
2008년 20대 중반의 나이로 창업에 도전했다. 처음부터 '빈타이'라는 이름은 아니었다. 지금은 커피 가게가 골목 가득 들어서 커피 골목으로 익숙하지만, 당시에는 인적도 뜸했던 전북대 대학로 한쪽 골목에 '10그램'이라는 카페를 차린 게 시작이다. 열여섯부터 시작했던 비보이 이력이 화제가 돼 인기를 끌었다. 20대 초반부터 서비스업에 종사한 경험도 사업이 연착륙하는 데 도움을 줬다.
"찾아 주는 손님들이 정말 많았어요. 감사한 일이죠. 제 커피가 거기서 시작이 됐습니다"
그곳에서는 커피 교육도 함께 진행했다. 그저 즐거워서 시작한, 나누고 싶다는 의미에서 시작한 일. 하루 영업이 끝나면 커피를 배우고 싶어 찾아온 손님과 함께 공부하고, 또 커피를 가르쳤다. 그렇게 창업한 사장님들도 다수다.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장사가 잘되던 점포를 넘기고 2011년 객사에 '빈타이'라는 이름의 카페 문을 열었다. 현재 빈타이의 본격적인 시작이다. 그 후 10여 년. 첫 매장이었던 객사점부터 부여 아울렛에 입점한 매장까지. 5곳을 넘기기 어렵다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이미 13곳까지 늘었다.
사업가보다 '커피하는 사람'이라 생각해요
전국 각지에서 가맹 문의가 빗발친다. 이쯤 되면 가맹점을 늘려 전국적인 프랜차이즈로 성장을 꿰할 법하지만, 강 대표는 "어려운 문제"라고 말한다. 실제로 처음부터 프랜차이즈를 염두에 두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기에 준비가 미흡했다고 말한다. 겉으로 보기에 충분히 잘 진행되는 것처럼 여겨졌지만, 애초부터 방향성을 정하고 추진했으면 지금보다 나았을 거라는 뉘앙스였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빈타이 무조건 잘되잖아요' 하세요. 하지만 그렇지 않거든요. 엄청 힘들어요. 똑같이 힘들 거에요. 좋은 말씀을 해주시면 감사하지만, 부담 아닌 부담입니다"
특히, 가맹점을 문의하는 분들께 미안해한다. 왜 더 이상 전주에는 매장을 내지 않는지 문의가 많이 들어오는데, 강 대표는 더는 전주에서는 이득이 없다고 판단했다. 물론 본인이 아니라 업주들 입장에서다. 현재 전주 시내에 있을 만한 곳에는 모두 매장이 있고, 군산이나 익산, 남원에도 매장을 늘렸다. 조금 더 세부적으로 구획을 나누면 전주에도 매장을 더 만들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면 업주분들이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더 크다. "저는 커피를 하는 사람이지, 사업가가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괜히 사업가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그래서인지 우선 전북 도내 시군 가운데 매장이 없는 곳 위주로 확장을 생각하고 있다.
빈타이라는 '자부심'
커피콩이 보타이를 한 이미지. 빈타이는 강 대표가 서울에서 커피 로스팅 교육을 받고 지하철을 기다리던 중 용산역에서 떠올린 이름이다. 커피콩을 볶는 사람마다 커피 맛이 달라지는 것이 꼭 우리가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게 강 대표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사업 시작은 왜 전주였을까? 의외로 답은 간단했다. 전주가 고향이고, 단 한 번도 타지에서 살아본 적 없었다. 자연스럽게 시작도 고향에서였다. 확장성이 다소 부족하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오히려 인지도를 더 빨리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도 됐다.
특히 "전주에도 이런 커피 전문점이 있다"며 타지에서 온 지인과 함께 '빈타이'를 찾은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자부심이 한껏 올라간다. 커피, 그리고 카페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빈타이는 익숙한 브랜드가 됐다. 빈타이는 전주와 전북에서는 '고유명사'로 여겨진다. 이 자체가 신기하고 감사하다 말한다. 고향인 전주와 전북이 빈타이를 도와준 만큼 사회를 위해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돕고 싶다고도 덧붙였다.
가맹점이 늘어날수록 관리해야 하는 부분도 많다. 직영이 아니다 보니 매장마다 모두 업주가 따로 있지만, 빈타이 매장을 찾는 손님은 모두 같은 수준을 기대한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창업 교육을 할 때, 업주와 매니저는 본점에서 일정 기간 일을 해야 한다. 교육이라고는 하지만 직원처럼 일한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일을 하는지, 어떤 멘트를 하고, 어떤 서비스를 하는지 직접 아시는 게 중요하거든요" 커피 교육도 커피 교육이지만, 빈타이만의 색을 입히는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시간이 지나도 찾을 수 있는 곳으로
강 대표가 말하는 빈타이의 정체성은 '커피 회사'다. 커피 회사에서 빈타이라는 카페를 만들었다는 것. 인스틸이라는 원두 회사를 함께 운영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강 대표는 그것이 주 '업'이라고 말한다. 빈타이는 강 대표가 만든 원두를 맛볼 수 있는 '쇼룸'이다. 빈타이에서 커피를 마시고 원두와 관련해 연락했다는 이야기가 뿌듯하다.
"사실, 빈타이가 계속 영업하고, 지금 빈타이를 찾는 손님들이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찾아올 수 있다면 가장 좋을 것 같아요. 그 자체가 가장 바라는 점입니다"
빈타이 컴퍼니를 '커피 회사'로 더 키우고 싶다는 마음도 크다. 커피 로스팅 공장을 준비하고자 하는 마음도 그러한 차원이다. 자연스럽게 빈타이 카페에도 도움이 되고, 커피를 연습하고, 교육하는 곳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49살에는 은퇴하고 싶어요
인터뷰가 마무리될 무렵 강 대표 개인의 미래도 궁금했다. 너무 빈타이에만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던 참이다. 그런데 대뜸 49살에는 은퇴하고 싶다니, 말로만 듣던 파이어족(FIRE·조기은퇴 계획자)이 내 눈앞에 있나 싶었다. 49살 은퇴는 처음부터 생각했던 일이라는 게 강 대표 말이다. 커피가 좋아서 시작했지만, 사업은 하루하루가 전쟁처럼 느껴진다. 49세 이후 일에 대해서는 뚜렷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커피와 관련해서는 좋은 곳 가서 힐링하며 커피 마시는 게 제일 좋다고 말한다. 빈타이처럼 강 대표 역시 신기한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49세라면 앞으로 7년. 강 대표가 7년 후 실제로 은퇴를 할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처음 커피를 만나 지금껏 달려온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처럼 생각됐다. 전북대 앞에서 처음 10그램 카페를 운영하던 시절, 매일매일 테이블과 의자를 닦으며 '오늘 여기 앉으시는 분들 행복하세요'라는 주문을 속으로 되뇌었던 일화처럼. 여전히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쓰는 모습이다. '행복한 커피 나라'라는 당시 슬로건은 지금도 유효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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