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공화국, 지방 소멸 위기
정책 전환으로 지방 역량 강화
국가 발전·세계화의 중심으로
얼마 전 지리산을 품은 관광도시 남원에서 도시의 관문인 고속버스터미널이 문을 닫았다. 터미널 운영업체가 누적되는 적자를 더 이상 견디지 못했다. 인구절벽의 시대, 코로나19까지 겹쳐 이용객이 급감하면서 농어촌지역을 중심으로 시외버스 감축운행과 노선폐지가 이어졌다. 또 남원의 사례처럼 경영악화로 인해 아예 문을 닫는 고속버스·시외버스터미널도 속출했다. 지방은 이제 대중교통 인프라인 버스터미널 운영마저 어려운 형편이 됐다. 그러면서 지역사회는 또다시 활력을 잃고, 기억해야 할 옛 모습을 하나씩 더 기록해나간다.
대한민국은 지금 지방소멸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수도권으로의 인구집중 현상까지 더해지면서 지방도시는 생기를 잃고 공동체 붕괴 위기에 몰렸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고, 남아있는 노인들은 하나둘씩 세상을 떠난다. 아기 울음소리가 끊긴 지 오래고, 그나마 수명이 늘어난 노인들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해온 농촌사회는 이제 마지막 가쁜 숨만 남겨놓고 있다. 귀농·귀촌 지원 등 다양한 지역 활성화 정책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 였다.
농어촌지역은 읍·면소재지에서조차 대낮에도 인적을 찾기 힘들다. 촌로들의 투박한 사투리 속에 살가운 정이 오갔던 전통시장은 현대화사업으로 새롭게 단장된 시설만 정적 위에 덩그러니 서 있다. 학령인구가 급격히 줄면서 농어촌 작은학교는 속속 폐교 위기에 몰리고, 지방대 역시 해마다 정원을 채우지 못해 아우성이다.
위기극복을 위해 역대 정부가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앞다퉈 내놓았지만 오히려 불균형만 키웠다. 겉으로 내세운 정책 방향과 상관없이 위정자들이 수도권 중심의 국가운영 기조를 버리지 못한 탓이다. 수도권이 지방의 사람과 자본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이 됐는데도 정부의 수도권 신도시 건설 정책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러면서 수도권의 공간적 범위는 넓어졌고, 대한민국은 수도권과 지방으로 양분·양극화됐다. 급기야 국민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몰렸다. 수도권 과밀의 폐해와 부작용을 수도권 확장으로 해결하려는 부동산정책이 계속됐고, 그 속에서 국가균형발전 정책은 공허한 메아리로 흩어졌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일찌감치 예고된 지방소멸의 비극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국가 현안과제로 균형발전 이슈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최근 시·도지사협의회 간담회에서 ‘본격적인 지방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지방의 소멸이 곧 국가 소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 속에 나온 새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로 분석된다. 하지만 이 같은 기조가 진정성 있게, 흔들림 없이 지속될 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
한때 ‘글로컬(Glocal)’ 이라는 단어가 유행했다. 글로벌과 로컬의 합성어로 ‘지역의 특성을 살린 세계화’를 의미한다. 지역의 경쟁력이 국가의 경쟁력이 되는 시대다. 반대로 지역의 위기는 곧 국가의 위기로 이어져 수도권공화국의 몰락을 부를 수 있다. 현재의 위기는 차원이 다른 미래를 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마침 대한민국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정치와 경제·사회·문화 등 전 분야에서 새로운 체제로의 대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이제 지방이 국가 발전과 세계화의 중심이 되는 진정한 지방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국가 균형발전은 지방에 대한 배려가 아닌 국가 생존전략 차원에서 새 정부가 최우선으로 추진해야 할 시대의 소명이다. 수도권 대신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지방의 역량을 키우는 방향으로의 과감한 정책전환이 필요하다. 비대해진 수도권, 소멸 위기의 지방을 정상으로 되돌려 균형을 맞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껏 지방을 얕잡아보며 중심의 위치를 누려온 수도권에서 상대적 불이익과 불편, 그리고 일정 부분 역차별까지도 감내해야 할 것이다. 비정상이 고착된 수도권공화국 대한민국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접근과 과감한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