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20일 밤 11시가 가까워지는 시간 부고 메시지를 받았다. 내가 속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 우리 모임의 창립회원이신 한승헌 변호사님의 본인상을 알리는 연락이었다. 개인적 인연이라고는 까마득한 법조 후배로서 고인께서 만드신 모임의 회원이라는 것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에 재학할 당시 고인의 강연을 듣고, 직접 쓰신 ‘한 변호사의 고백과 증언’이라는 책을 선물 받은 것이 전부지만 큰 어른이 떠나셨다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중에도 내가 고인에 대한 추모를 이야기하는 것이 맞는가라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세대 인권변호사로 독재정권과 맞서 민주화와 인권 확립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 오신 우리 시대의 스승님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표하고자 한다.
고인의 호는 ‘산민(山民)’이다. 고인의 서예 스승인 검여 유희강 선생이 ‘근재산민(近在山民)’, 소외받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있으라는 의미로 ‘산민(山民)’이라는 호를 내렸다고 한다. 고인은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인권변호사로서 여러 시국 사건의 변호를 맡아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헌신했고, 민청학련, 동백림 간첩단 사건, 김지하 시인의 ‘오적’ 필화 사건 등을 변론해 ‘시국사건 1호 변호사’로 꼽힌다. 그러나 정작 고인은 인권변호사라는 칭호에 대해 변호사라는 말 속에 이미 인권을 지키는 직분이 들어있고, 이는 결국 동어반복이니 본업을 하는 사람을 그렇게 불러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고인이 변호한 시국사건만 100건이 넘는다. 심지어 고인은 시국사건의 변호뿐 아니라 1975년 유럽 간첩단 사건으로 사형당한 고(故) 김규남 의원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 ‘어떤 조사(弔辭)’를 썼다는 이유로 구속되기도 했고, 이 일로 8년5개월간 변호사 자격이 박탈됐다. 1980년 5월에는 이른바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으로 계엄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옥고를 치르시기도 했다.
고인이 지나온 길은 누구도 쉬이 감내하기 어려운 고난의 길이었고, 민주화 운동을 하다 탄압받는 이들의 곁을 지켰던 그 길이 곧 소외받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음을 생각한다면, 우리 시대의 큰 어른인 고인의 지난 삶을 감히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고인의 호야 말로 고인의 삶을 가장 잘 표현한 단어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지금 고인에게 의미 있는 장소인 전북대학교에서 많은 단체들과 함께 노제를 준비하고 있다. 개인적인 친분이나 의무감이 아닌 산민(山民) 한승헌 변호사님에 대한 존경심으로 뜻을 함께 하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신 산민 한승헌 변호사님을 보내드릴 준비를 하고 있다.
고인이 미해결 과제라고 말씀하신 “사회권적 기본권의 확립과 인간의 존엄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평등사회의 건설”(전북의 소리 ‘변호사의 체험을 통해 본 한국의 민주화’에서 인용)은 이제 남은 사람들이 이어가야 할 과제가 되었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고인이 세워놓으신 옳은 것에 대한 이정표가 남았고, 우리가 닮고 싶은 어른의 모습을 그분에게서 본다.
민변 전북지부 회원들과 노제를 준비하면서 작년 민변 본부에서 진행한 민변 전북지부 집행부 인터뷰를 다시 읽어 보았다. 민변에 바라는 점이란 질문에 ‘부조리, 불합리, 불평등을 겪었음에도 제대로 말할 수 없는 때, 내가 속한 민변은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이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곳이라 믿고, 나 역시 그 과정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흔들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쓰여 있다.
거창한 정의를 생각하면서 했던 말은 아니었지만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함을 그 목적으로 하는(민변회칙 제3조)’ 민변의 설립목적을 생각하면서 했던 말이다. 이는 창립회원이신 고인이 평생 보여 주신 삶의 모습과 맞닿아 있고, 이 역시 고인이 까마득한 후배에게 알려주신 옳은 것에 대한 그리고 지향해야 할 삶의 나침반이기도 하다.
고인께서는 변호사는 법정에서의 변론을 잘 수행해야 하지만 재판에 정의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할 때, 그 실상을 기록해서 동시대인들에게 널리 알리고 또 다음 세대에 이를 전해줄 의무가 있다고 강조하셨다.
우리에게 어둠의 시대가 있었음을 기억하고, 그 어둠의 시대에 맞선 고인이 지나온 길의 의미와 변호사법 제1조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는 변호사의 사명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고인의 시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거센 바람이야 어제 오늘인가
아직은 목마름이 있고
아직은 바람이 있어
시달려도, 시달려도 찢기지 않은
꽃 잎 꽃잎
꽃잎은 져도 줄기는 남아
줄기 꺾이어도 뿌리는 살아서
상처 난 가슴으로 뻗어 내려서
잊었던 정답이 된다.
- 한승헌 <백서> 부분
‘어둠 속 등불’ 고(故) 산민 한승헌 변호사님의 명복을 빕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우아롬 법무법인 한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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