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에서 가장 작은 자치단체인 장수군. 이곳은 흔히 무진장(무주 진안 장수)으로 불리는 두메산골(奧地) 중 하나다. 4월말 기준 인구 2만1624명으로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경북 울릉군과 영양군에 이어 전국에서 3번째로 작은 곳이다. 당연히 인구소멸 위험지역에 속한다. 그러나 머지않아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이곳에서 나는 희망을 보았다. 1500년 동안 숨겨져 있던 보물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해 12월초부터 세 차례에 걸쳐 군산대 가야문화연구소장인 곽장근 교수의 안내로 이곳 일대를 방문했다. 올해 4월에는 중앙대 송화섭·박경하 교수, 건국대 김기덕 교수 등이 동행했다. 이들과 함께 장수 천천면 삼고리 고분군에서 시작해 장수읍 동촌리 고분군(국가사적 552호), 장계면 난평마을 마을숲과 알봉이라 불리는 고분, 계남면 침령산성(전북도 기념물 141호), 장계면 삼봉리 고분군(전북도 기념물 128호), 반파국 왕궁터로 비정되는 탑동마을 등을 둘러봤다. 또 지난해 12월에는 이들 지역과 더불어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군(국가사적 542호)도 가봤다.
이 지역은 우리나라 역사에 500여 년간 존재했던 가야국 중 일부로, 편의상 전북가야(장수가야와 운봉가야)로 불리는 곳이다. 영역은 금산과 완주, 무진장, 남원, 임실 등 300여리에 걸쳐 있다. 종전까지 가야는 영남에만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곽 교수의 땀 흘린 노고 덕분에 백두대간 서쪽인 전북동부에 존재했던 독자세력이 밝혀진 것이다. 논란이 없지 않으나 반파국(장수)과 기문국(남원)이 그것이다. 2010년대 이후 발굴된 유물과 유적, 문헌 등이 그것을 증명한다. 이 중 반파국은 장수지역을 중심으로 서기 300년대 후반에서 500년대 초반까지 150년 동안 존속했던 가야 소국이다. 반파국은 당시 반도체라 할 수 있는 철을 바탕으로 운봉가야를 흡수하고 섬진강 하구 다사진(하동)까지 진출했다. 한때 백제와 왜(倭)의 군대를 격파하고 신라의 촌락을 습격해 초토화시키기도 했다(이도학 교수). 그러다 521년 백제에 복속되면서 사라졌다. 또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은 영남지역 고분과 함께 다음 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다.
장수가야의 의미는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거대한 고분군과 제철유적, 봉화망 등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유산을 남겼다는 점이다. 특히 제철유적과 봉화는 독보적이다. 둘째, 백제와 가야, 신라의 물고 물리는 각축장이었다는 점이다. 침령산성과 합미산성에 그 자취가 남아 있고 후백제가 리모델링해 활용했다. 셋째, 우리나라 고대의 철(iron road)과 도자기(china road) 전파의 루트를 유추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에서 제철기술과 도자기술을 가진 일단의 주민들이 새만금을 거쳐 전북혁신도시에 정착한 후 철광석 등이 있는 장수와 남원으로 이주해 꽃을 피운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동고산성을 발굴했던 전영래 교수는 일찍이 이러한 반파국을 수수께끼의 나라라고 했다. 어쨌든 장수가야는 보물단지인 셈이다. 이 같은 가야유적이 발굴되면서 장수는 크게 변화하고 있다. 널리 알려진 사과, 한우와 함께 가야유적이 새로운 역사관광콘텐츠로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지금 지방선가가 코앞이다. 도지사 후보 등은 대기업 유치를 외치고 있다. 물론 기업 유치도 중요하지만 있는 것을 활용하는 것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찾아보면 도내 곳곳에는 보물이 산재해 있다. 이를 찾아내 어떻게 꿰는가가 관건이다. 눈 밝은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을 뽑아야 하는 이유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