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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진 기자의 예술 관람기] 어느 수집가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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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산울림19-II-73#307, 1973, 캔버스에 유채, 264x213cm

어느 수집가의 초대 – 고(姑)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

“비록 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갈지라도, 이는 인류 문화유산의 미래를 위한 것으로, 우리 모두의 시대적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고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을 맞이하여 문화예술을 널리 향유 하고자 했던 고인의 뜻을 살려,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의 공동 주최하는 ‘어느 수집가의 초대’전을 8월 8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하고 있다.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를 종횡하는, 폭넓고 깊이 있는 ‘세기의 기증’ 컬렉션이다.

전시 작품들은 각 시대의 대표작들로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창조적 역량을 발휘한 걸작들이다. 자연을 즐기고 배웠던 조선 회화의 정신, 고난과 역경의 역사 속에서 변하지 않는 가족의 사랑, 고매한 정신세계, 종교적 의미를 탐색한 작품 등 예술혼을 불태운 걸작이다. 기증 대표작으로 정선의 국보<인왕제색도>와 김홍도의 보물<추성부도>, 김환기의 <산울림>,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박수근의 <아기 업은 소녀> 등을 꼽을 수 있다.

겸재 정선(鄭敾)이 그린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는 비가 그친 뒤, 운무가 감도는 웅장한 인왕산을 공간감과 실체감, 먹의 느낌이 살아 있게 표현한 걸작이다. 중국 북송의 문인 구양수(歐陽修)는 가을바람 소리에서 죽음의 엄숙한 섭리를 느껴 시 추성부(秋聲賦)를 지었고, 김홍도는 이 시를 그림으로 그렸다. 그는 시 원문을 그림 여백에 써서, 시와 그림, 글씨가 어우러진 걸작 추성부도(秋聲賦圖)를 탄생시켰다. 감동이 물결친다.

근현대로 오면 뛰어난 화가가 많지만, 김환기(1913~1974)를 소개한다. 그는 추상적인 조형 어법으로 한국적 정서를 양식화한 서양화가이다. 그는 말년에 점을 찍고, 점 하나하나를 사각형으로 돌려 에워싸는 작업을 반복하며 작품 ‘산울림’(1973년)을 완성했다. 푸른 ‘산울림’은 깊고 깊은 바다 같다.

외국 작품으로 넘어가면, 빛에 따라 같은 대상이 얼마나 다르게 보이는가를 입증한 프랑스 인상주의 창시자, 클로드 모네(1840~1926)의 ‘수련이 있는 연못’을 빼놓을 수 없다. 말년에 아내와 아들을 연달아 잃고, 시력이 급속도로 나빠진 그에게 수련이 가득한 연못은 그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시력 탓으로 푸른 빛을 띤, 그의 일생의 역작 ‘수련 연작’ 중 한 작품이다.

1년 전, 삼성 이건희 회장의 유족은 국립중앙박물관에 2만1693점과 국립현대미술관에 1488점을 아무런 조건 없이 기증했다. 수준급이면서 다양한 예술품의 방대한 기증, ‘세기의 기증’은 역사에 유례가 없다. 재력을 가장 뜻깊고 품격있게 사용한, 어느 수집가의 초대에 다시 한번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수집가를 배출한 우리 대한민국이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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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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