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간병하는 일은 누구나 건너야 할 어둠의 긴 터널이다. 태어나서 부모 등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하듯 노화나 질병으로 스스로 거동할 수 없는 때가 되면 또 다시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 한다. 돌봄, 그 중에서도 간병은 대개 힘겹고 오랜 싸움이다. 노인의 경우 죽어야 끝나는 전쟁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과정에서 견디다 못해 환자를 살해·학대하거나 동반 자살하는 등 간병범죄가 발생한다. 이제 간병문제는 한 개인이나 가족에게 맡길 문제가 아닌 국가 차원의 접근이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
우선 간병(caregiving)의 정의부터 보자. 간병에 대한 명쾌한 정의는 없으나 대체로 질병이나 장애, 노화 등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는 경우 타인의 보살핌으로 기동의 보조나 신변을 돌보는 행위를 말한다. 단순히 신체적 물질적 차원만이 아니라 사회심리적 측면까지 포함한다.
이러한 간병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노(老)-노(老)간병으로,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대다수 부모가 선택하는 형태다. 노인의 기대수명이 급격히 높아지고 핵가족화하면서 해마다 늘고 있다. 80대 부인이 중증의 80대 남편을 돌본다든지, 70대 아들이 90대 노모를 돌보는 등의 경우를 들 수 있다. 2019년 4월 군산시 흥남동 자택에서 80세 남편이 치매에 걸린 82세 부인을 10여 년간 돌보다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내의 병간호를 도맡아 오던 80대 남편은 요양병원 입원문제로 입씨름을 벌이다 순간 분노가 폭발해 극단적 행동을 한 것이다. 남편은 남은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유서를 쓴 뒤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를 알렸다. 현장에 도착한 아들은 “침대 곁에서 흐느끼고 있는 아버지를 봤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전형적인 노노 간병살인 사례 중 하나다.
둘째는 독박간병으로, 말 그대로 집안일과 간병을 혼자 맡아 하는 것이다. 치매에 걸린 부모의 간병을 장남이나 며느리가 떠안는다든지, 결혼하지 않는 딸이나 아들이 도맡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영 케어러(young carer)도 여기에 속한다. 영 케어러는 청소년이 학업 또는 취업을 포기한 채 가족을 간병하는 유형이다. 지난해 5월 대구에서 22세의 청년이 뇌출혈로 쓰러진 50대 아버지를 8개월간 간병하다 방치해 숨지게 한 사건이 대표적 예다. 영국 호주 일본 등에서는 장애나 질병, 약물 등 문제를 가진 가족을 돌보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까지의 돌봄자를 ‘영 케어러’라 부르며 수당 등 각종 복지를 지원한다. 이에 비해 우리는 지난 3월부터 부랴부랴 실태조사에 나섰다.
셋째는 다중간병으로, 여러 환자를 혼자 간병하는 형태다. 예컨대 간병인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간병하면서 치매환자인 노모를 돌보는 경우다. 2019년 11월 일본 후쿠이(福井)에서 70대 며느리가 한꺼번에 병수발을 하던 가족 3명을 살해한 사건이 벌어져 일본사회를 놀라게 했다. 당시 72세의 며느리는 10년 넘게 아예 거동이 불가능한 93세 시아버지와 95세 시어머니를 간호하고 있었는데 70세의 남편마저 뇌경색으로 쓰러지자 이들을 한꺼번에 살해한 것이다. 자신도 자살하려 했지만 미수에 그쳤다. 법정에 휠체어를 타고 나온 며느리는 “내가 죽으면 아이들이 남편을 돌볼 부담을 지게 되는 게 싫었다”고 범행이유를 밝혔다.
넷째는 노장(老障)간병으로, 중증 장애가 있는 자녀를 고령의 부모가 계속 돌보는 형태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중증 장애를 가진 자녀를 부모가 대부분 돌보게 되는데, 어렸을 때는 체구가 작지만 나이가 들게 되면 체구가 커진다. 반면 부모는 상대적으로 늙고 힘이 부치게 되는 경우다.
다음으로 간병범죄에 대해 살펴보자. 간병범죄는 요양원이나 요양병원 등의 시설간병 보다는 가택간병에서 많이 일어나며 간병살인, 환자 살해 후 자살, 환자와 동반자살, 치매로 인한 간병인 자살 등이 있다. 이 중 가장 많은 간병살인의 경우 우리는 아직 이에 대한 통계가 없다. 다만 서울신문이 2006~2018년 발생한 간병살인 사건 판결문 108건과 가해자 주변 친인척들을 전수 조사한 결과 가해자는 154명, 희생자는 213명이었다. 피해자의 평균나이는 64.2세, 간병기간은 6년5개월로 나타났다. 또 10명 중 6명이 독박간병이고, 10명 중 4명은 목을 졸라 살해했다. 범행동기를 보면 경제적 어려움이 48.0%로 가장 높고 순간적 격정 분노가 38.9%, 장기간 간병 스트레스 38.0%, 난폭한 치매증세 32.4%로 분석되었다(박숙완, 2019).
그러면 간병범죄의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간병인의 수면 부족과 불면, 만성피로를 들 수 있다. 심각한 수면부족과 불면이 계속되면 우울증에 걸리기 쉽고 간병살인의 방아쇠가 될 가능성이 높다. 또 간병인의 고립감에서 오는 우울증과 스트레스도 큰 원인 중 하나다. ‘긴 병에 장사(효자) 없다’는 말처럼 간병기간이 길어질수록 스트레스가 쌓이고 그로 인한 정서적 불안, 인내력 감퇴 등 정신적 고통을 수반한다. 분노와 스트레스는 한 순간에 폭발해 돌봄 환자를 공격하는 형태로 나타나기 십상이다. 경제적 어려움도 중요한 요인이다. 간병기간이 무한정 길어지면서 생기는 극심한 생활고와 감당할 수 없는 간병 비용은 극단적 선택을 유혹한다. 그리고 간병기간이 오래될수록 간병인의 사회경제적 활동이 중지되면서 지위 및 역할 상실로 인한 좌절감도 들게 된다.
간병범죄에 대한 대책은
간병노동은 대표적인 감정노동이면서 댓가 없는 그림자 노동이다. 기간이 길고 노동 강도가 셀수록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커진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가족간병인에 대한 간병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나아가 경제적 악화에 따른 복지적 지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가족 간병인 자신을 위한 ‘자기돌봄 치료 프로그램 PTC(Powerful Tools for Caregivings)’ 마련도 필요하다. 걷기, 명상하기, 스트레스 해소법, 환자나 가족간 대화법 등을 내용으로 하는 이 프로그램을 언제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더불어 단기적이나마 환자를 전문시설에 보내거나 간병인을 투입하는 레스핏 케어(respite care)제도의 활성화다. 레스핏은 ‘잠시 중단, 한숨 돌리기’라는 뜻으로 영국에서 가족간병인이 돌봄에서 잠시 벗어나 휴식을 취하며 지친 심신에 활기를 불어넣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일정 경비를 지원해 주기적인 휴식을 보장한다. 독일은 수발보험조합에서 최대 4주간 1150유로를 지원해 준다. 일본 역시 가족간병인의 휴식을 위해 쇼트데이(단기보호서비스)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최근 빠른 기술발달로 인공지능(AI) 간병로봇의 활용도 점차 늘고 있다. 미국과 일본, 중국 등은 이미 돌봄환자를 상냥하게 부축해 주고 들어주는 강도 높은 노동을 할 수 있는 로봇을 개발했다. 응급상황 발생 시 간병인에 통보는 물론 말 상대, 간병 보조, 상담 등도 해 주는 수준이다. 아직 비용이 문제이긴 하나 간병로봇이 치매환자나 가족간병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시대가 눈앞에 와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조상진 전 전주시 노인취업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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