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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닥도닥-이건희 컬렉션과 채용신, 그리고 어진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부 부장을 지낸 민병훈 박사로부터 얼마 전 전화를 받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고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에서 만난 한 작품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란다. 그가 주목한 작품은 작가 불명의 `채용신 평생도병풍`이었다.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비롯해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모네의 `수련` 등 대한민국 최고 부호의 수장고에 있던 진귀한 수집품들이 즐비하게 진열된 전시장에서, 그것도 작가 불명의 작품이 그를 붙든 것은 전북과의 연관성 때문이었다. 민 박사는 전주 출신으로 국립전주박물관에서 학예실장을 지냈다.

그가 지목한 병풍 속 주인공인 석지 채용신(1850~1941)은 근대 초상화가의 거장으로, 인생 전반부 무관으로 활동하다가 후반부 전북에서 화가로 살았던 인물이다. 고종의 어진을 그리면서 어진화가로 화명을 떨쳤으며, 사대부와 우국지사, 일반인까지 초상화 대상을 넓혔다. 그가 그린 최익현 초상과 황현 초상은 보물로 각각 관리되고 있고, `운낭자초상`은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국내 미술계도 석지의 독특한 기법과 표현양식, 회화의 근대성에 주목하며 채용신 관련 연구들을 꾸준히 해왔다. 채용신 관련 연구 논문이 석박사 논문을 포함 20편에 이른다. 2000년대 초 국립현대미술관이 `서거 60주년 기념 석지 채용신전`을 연 것도 그 연장선에서다. 그러나 정읍 태인에서 아들 손자와 함께 공방을 운영했고, 그의 묘소도 선산이 있는 익산 왕궁에 자리하는 등 석지의 활동 기반이었던 전북에서 정작 그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전북도립미술관이 그의 사후 70년이 된 지난 2011년에서야 기획전을 연 정도다.

이건희 회장이 어떤 연유로 채용신의 일생을 담은 병풍을 수집했는지 알 수 없으나 작가 미상의 작품이기에 작품 대상의 주인공과 작품성에 주목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10폭으로 이뤄진 병풍은 채용신의 어린 시절 공부에서부터 과거급제 후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 수군으로 활동했던 모습 등을 연대기 순으로 담았다. 박물관 측은 조선말 사회변화상을 잘 드러낸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번 355점 컬렉션 전에 이 작품을 내걸었다고 귀띔했다.

민병훈 박사가 주목한 것은 그보다 채용신이 어진을 모사하는 모습의 다섯번째 작품(사어용도)이다. 지금은 없어진, 그 당시 흥덕전(덕수궁 궁전자리)에서 태조 어진을 그리는 장면이 생생하게 담긴 것을 두고서다. 임금을 상징하는 일월오봉병(해와 달, 그리고 다섯 개의 산봉우리가 담긴 병풍)을 펼쳐놓고 여러 신하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마치 살아 있는 왕의 모습을 그리는 것 같은 어진모사 모습을 이 병풍이 보여주고 있다.

어진은 조선시대 왕을 상징하는 핵심 문물이어서 어진 제작과 봉안, 관리 때 왕을 모시듯 했다. 그러나 이렇게 공들인 제작에도 전란과 화재로 대부분 어진이 소실됐다. 경기전 태조어진만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유일한 전신상 어진이다. 봉안처인 경기전이 함께 남아 있다. 10여 년 전 경기전 내 어진박물관도 새로 만들어졌다. 전국 유일의 어진 전문 박물관이다. 그러나 콘텐츠는 부족하다. 전북에서 활동한 채용신과 어진 관련 콘텐츠가 담긴 `채용신 평생도 병풍`이 어진박물관에 놓인다면 여러모로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건희 회장 유족은 그의 수집품 대부분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고, 지역 연고와 작가 연고가 있는 광주 대구 등 지역의 공립미술관에도 100여점을 나눠 기증했다. `채용신 평생도 병풍`의 제자리는 어진박물관이지 싶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수장고가 아닌, 어진박물관에 있을 때 이 작품과 어진박물관, 채용신이 더욱 빛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김원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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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컬렉션 #채용신 #어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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