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은 2015년 7월이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익산을 비롯해 공주와 부여의 8개 유적을 한 권역으로 설정한 통칭이다. 당초 백제유적이 남아 있는 공주와 부여 익산은 각각 등재를 추진했었다. 먼저 등재를 추진했던 것은 공주의 무령왕릉. 충남과 공주가 함께 나섰으나 여건은 만만치 않았다. 충남은 2010년, 부여를 묶은 공주부여 역사유적지구로 등재를 다시 추진했다. 같은 해 익산에서도 익산 백제유적지구 등재에 나섰다. 같은 성격의 유적이 따로따로 등재를 신청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어려움은 더 커졌다. 전북과 충남 등 두 개의 광역단체와 공주와 부여 익산 등 3개 기초단체가 뜻을 모아 ‘공주부여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 등재 추진단’을 꾸리게 된 이유였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은 모든 인류가 공동으로 보존하고 관리해야 할 ‘탁월한 보편적 가치’와 진정성, 완전성을 동시에 갖춰야 한다. 그만큼 등재까지 이르는 길은 험난하다. 백제역사유적의 등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과제도 역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증명해내는 일이었다. 추진단은 등재 기준 중에서도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류’ ‘문화 전통 또는 문명의 독보적이거나 특출한 증거’ ‘인류 역사의 중요한 단계를 보여주는 건축적·기술적 총체 또는 경관의 탁월한 사례’를 주목했다. 백제유적은 그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증명해 세계문화유산이 됐다.
익산의 미륵사지는 특히 탁월함과 보편적 가치를 갖춘 유적으로 꼽힌다. 아시아 3국이 모두 불교를 가진 것이 보편적 가치라면, 탁월함은 3탑 3금당의 특별한 구조에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익산 미륵사지 탑의 축조방식이나 과정의 실체는 오랫동안 드러나지 않았다. 1981년과 1994년 두 차례 조사가 이루어졌지만, 그 대상과 방식의 한계로 목탑지는 물론 미륵사지 서원 석탑의 축조 시기도 추정됐을 뿐이다.
반가운 소식이 있다. 베일에 싸여있던 익산 미륵사지 목탑지 기단 내외부 축조 공정의 면모가 공개됐다. 지난 3월부터 진행된 미륵사 목탑지 보완 발굴조사를 통해서다. 중원 목탑의 축조 공정과 규모의 면면뿐 아니라 그동안 추정됐던 공간배치가 밝혀지면서 서원 석탑보다 중원 목탑이 먼저 축조되었다는 추정도 사실로 증명됐다. 제대로 된 고증과 복원의 길이 탄탄해진 셈이다.
익산의 백제역사유적은 삼국시대 최대 사찰인 미륵사지와 궁성 구조의 완전한 형태를 가진 왕궁리 유적, 무왕과 왕비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쌍릉, 현존하는 백제 석불 중 가장 큰 석불을 가진 석불사, 무왕이 건립했다는 제석사까지 그 궤적이 빛난다. 이 귀한 유산을 제대로 보듬어 내는 일이 더 절실해졌다./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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