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 피츠 제랄드, 에즈라 파운드, 제임스 조이스, 또는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유트릴로, 샤갈, 브랑쿠시, 기슬링, 수틴, 파스킨, 브락크, 트리스탄 짜라, 만 레이, 후지타, 데스노스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뿌듯할 만큼 유명한 사람들, 혹은 유명해질 사람들이 파리의 몽파르나스에 옹기종기, 그렇지만 격렬하게 모여 살았다.
세기 말과도 같은 상황에서, 오히려 그런 분위기를 즐기며 1950년대의 명동처럼 그렇게 살았다. 보헤미안 혹은 에뜨랑제 예술가들, 그들이 살아가는 단면을 당시의 키키라는 여인의 회상을 통해 보면 도무지 뒤죽박죽이다.
키키라는 여인이 유트릴로 앞에서 포즈를 잡고 모델을 선 뒤 어떻게 그렸을까 궁금해서 그림을 보았다. 그랬더니 시골집 한 채가 그려져 있었다거나 거리에서 텀블링을 하며 자신을 홍보하기에 바빴던 후지타라는 일본인 화가가 3000명의 모델을 그렸다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야기로부터 키키가 모델을 서러 와서는 이젤을 빼앗아 후지타의 초상화를 그리고 나서는 오히려 후지타에게 모델료를 받아 갔다는 등, 심지어는 위에 열거했던 거의 모든 남자들과 잠자리를 같이 하고 20명의 남자와 데이트를 약속했다는 식으로 전혀 정상적인 사고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아주 쉽게, 극히 정상적인 것처럼 이루어지던 그때, 그곳에서 그림을 그렸던 사람들, 그 에콜 드 파리에 뒤늦게 어느 날 홀연히 파스킨이 나타났다.
파스킨은 넉넉하게 돈을 벌었음에도 오랜 방랑의 언저리에서 숙명처럼 받아들였을 고독과 허망, 그리고 비애의 그림자를 끌고 이 저주받을 회오리의 한가운데로 끌어당겨진 것이다. 서부 영화의 감성 어린 주인공처럼 검은 눈에 검은 옷, 검은 양말, 검은 모자에 검은 구두까지를 모두 검은색으로 감싼 그는 스페인계 유대인의 바이올리니스트 아버지와 이탈리아 사람인 어머니 사이에서 불가리아에서 태어나 루마니아에서 교육을 받고 미국 국적을 갖고 있는 다국적인 방랑자로서 모든 나라말을 묘한 악센트로 다 말할 수 있는 사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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