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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감 2022 시민기지가 뛴다] 우주와 자연의 질서를 담은 나침반, 윤도(輪圖)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상의 묏자리가 집안의 흥망성쇠를 좌우한다고 믿었다. 조상은 죽어서도 자손을 지키는 ‘신적인’ 존재로 여겨졌기에 조상이 묻힌 묘는 혈연집단의 시초이며 보금자리와 같았다. 선조가 영면할 자리를 정할 때 지관이 동행했다. 이들은 묏자리의 위치가 적절한지, 주변의 환경과 여건은 조화를 이루는지, 자연스러운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지 등 우리 특유의 전통적 우주관에 입각하여 지세를 살폈다. 이 때 자리의 방향과 특성을 가늠하는 도구를 썼으니 이를 바로 윤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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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철 완성.

윤도는 자침(磁針)을 활용하여 지관들이 풍수를 보거나 항해자와 여행자들이 방향을 보기 위해 쓰던 일종의 나침반을 말한다. 윤도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로, 영조 18년(1742)에 천문학을 담당하던 관상감(觀象監)에서 윤도를 만들어 천문과 지리를 살피는데 쓰고자 했다는 기록이 나오며, 정조 13년(1789)에는 윤도 제작에 기본이 되는 분금법이 매우 복잡하고 정밀하여 이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음을 한탄하는 기록도 보인다. 윤도의 제작이 천문과 음양오행의 법칙에 능통한 자만이 가능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윤도는 사회 각계에서 다양한 용도로 이용했다. 조선시대에는 대부분의 휴대용 해시계에 윤도를 달았다. 사대부들은 개인부채에 12방위 또는 24방위를 표시한 소형 나침반인 선추(扇錘)를 휴대용으로 매달고 다녔다. 

윤도는 자침을 중심에 두고 24방위를 기본으로 하여 음양·오행·팔괘·십간·십이지·절후·28숙(宿) 등이 방위를 이루어 구성되어 있다. 24방위는 ‘정침(正針) 24산(山)’이라 하여 정간과 분금·각자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점이 된다. 8괘는 음과 양의 부호를 결합시켜 만든 것으로 자연현상, 인간관계, 신체부위, 성질, 짐승, 방위 등을 아우른다. 간지는 달력과 길흉화복의 판단 준거로 쓰이며, 24절후는 춘하추동을 이루는 스물네 개 절기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어 기후와 풍토에 대한 해석이 가능하다. 28숙은 황도 부근의 별을 28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본 천문지식이다. 이 모든 법칙이 여러 개의 층으로 구획되어 하나의 윤도를 이루는데, 오늘날 9층 윤도가 가장 많이 쓰인다. 

1·2층은 묏자리나 집터를 잡을 때 등지고 있는 방위인 좌(坐)와, 자리 잡은 위치에서 바라보는 앞면인 향(向)을 본다. 3층은 만물을 주관하는 수·금·화·목·토의 합을 본다. 즉, 다섯 원소 중 세 개를 연결하여 정삼각형의 합을 이루면 길지로 본다. 4층은 24방위를 가리키며 생기가 모여 있는 정확한 위치를 확인한다. 5층은 산의 지형을 보는 것으로 가장 왕성한 혈맥의 모양새를 파악한다. 6층과 7층은 땅의 산수 형태와 생기를 보며, 8층은 물의 방향을 살펴 해를 줄 수 있는 요인을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9층은 망자의 관이 하관하는 방향을 결정하는데 쓰인다. 무엇이 옳고 그르냐의 문제를 떠나, 우리 조상들이 터를 잡는데 있어 윤도를 통해 얼마나 다양한 우주의 구성요소들을 기준에 두고 자연환경을 바라보았느냐를 알 수 있다. 즉, 우주의 형상에 맞게 질서에 순응함으로써 복된 기운을 누린다는 세계관이 이 윤도에 들어있다.  

전북 고창군 성내면 산람리 낙산(洛山)마을에는 약 300여년에 걸쳐 오늘날까지 윤도를 제작하는 기·예능이 전승되어 오고 있다. 이 윤도를 제작하는 사람을 윤도장이라 한다. 이곳 윤도를 일컬어 ‘흥덕 패철’이라 하는데 이곳이 조선시대에 흥덕현(興德縣)에 속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하며 예로부터 나침반의 방향이 정확하고 견고하기로 유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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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층수 정하기, 각자하기, 먹칠하기, 정침 계열 분금.

윤도 제작은 극도의 정밀함을 요구한다. 먼저 톱과 작두를 이용해 나무의 모양을 결에 따라 원형으로 세밀히 다듬는다. 이어 윤도의 중심을 잡아 동심원을 그린 후 분금(分金)하는 것을 정간(定間)이라 한다. 이 때 동심원 하나를 최소 1도의 각을 이루도록 360개로 분금해야 하는 정교한 작업이 수반된다. 각자(刻字)에서는 분금해 놓은 각 칸들에 해당된 글자들을 새겨 나간다. 만약 하나의 획수라도 잘못 그어 실수하면 분금된 윤도판을 전부 갈아서 다시 만들어야 하므로 엄청난 집중력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한 층을 각자하는데 보통 한나절이 걸리고, 글자 수가 많은 층은 꼬박 하루가 걸리기도 한다. 수일에 걸쳐 각자가 끝나면 먹, 옥돌가루, 주사 등으로 분금과 글자에 색을 입히고, 자침을 만들어 앉힌다. 이렇게 원통형 나침반인 평철이 완성되면 자침의 작동 여부와 정확성을 확인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수백 년에 걸쳐 내려오는 윤도 제작은 오늘날 국가무형문화재 김종대 명예보유자와 그의 아들인 김희수 보유자에 의해 명맥이 이어져 오고 있다. 이들이 쓰는 생업 도구들은 족히 200~300년이 넘은 것들이 무수히 많다. 재료를 취하는 과정부터 제작 과정의 세세한 기법들까지 수대를 이어 내려온 것들이다.  

모두가 스마트폰 하나를 패용하고 다니며 주변을 검색하는 시대가 왔다. 이후의 세대들은 무엇을 휴대하며 세상을 재단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선조들의 전통지식이 총망라된 생활용품 윤도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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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훈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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