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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한지로드] ⑤ 한지를 지키는 사람들: 지자체 관심·지원 중요⋯전통한지 보전·계승 역할

전주천년한지관, 전통한지 생산 대표 장소 상징
한지장들 전통 원료·공정 복원해 전주한지 제작
전주시 조례, 전담팀 구성⋯한지 판로 개척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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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천년한지관 전경/ 사진=전주천년한지관 제공.

전주 서서학동 흑석골 개천과 천변을 따라 늘어선 평화제지, 문성제지, 청보제지, 우림제지, 호남제지, 문산한지, 고궁한지⋯. 6·25 전쟁 이후 20여 개의 한지 제조공장이 들어섰던 흑석골은 1990년대 초반 정부의 환경 규제로 공장들이 팔복동으로 집단 이전하기 전까지 한지 생산이 왕성하게 이뤄졌던 곳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곳을 '한지골'이라 불렀다. 그 많던 사람과 공장은 사라지고 없지만, 전주한지의 탯자리인 흑석골을 지키는 기관이 생겼다. 올해 5월 개관한 전주천년한지관이다.

전주천년한지관은 전국 최초의 한지 관련 R&D 연구기관인 한국전통문화전당 한지산업지원센터에 이은 또 하나의 한지 거점공간이다. 전통한지 보전·계승에 대한 자치단체의 의지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이처럼 전주한지가 명맥을 이을 수 있었던 데는 민간 영역에서 한지를 지켜온 한지장들의 노력과 함께 공공 영역에서 자치단체의 관심·지원이 큰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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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교만, 박신태, 오성근 한지장과 후계 교육생/ 사진=전주천년한지관 제공

 

△한지산업지원센터 이은 한지 거점공간 '전주천년한지관'

전통한지를 생산·체험·전시하는 한지복합문화공간인 전주천년한지관은 총 83억 원을 투입해 지상 2층 규모로 지어졌다. 1층에는 초지·도침·건조 등 전통한지를 제조·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됐다. 2층에는 전시실과 사무실 등 문화·사무공간이 마련됐다.

한지관은 한지산업을 문화산업으로 보고 전통 방식의 한지 제조 기술을 보전·계승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인미애 전주천년한지관 실장은 "경제 논리로 한지를 만드는 게 아닌, 한지를 생산했던 대표적인 장소의 복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나아가 전통한지 제조 방식을 경험하는 장소로 만들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한지관에서는 국내산 닥나무, 천연 잿물, 황촉규(닥풀), 대나무발 등 전통적인 재료와 도구를 사용해 전통 제작 기술인 흘림뜨기(외발뜨기)로 전통한지를 제작한다. 건조도 온돌, 목판 등 전통적인 방식을 따른다. 최근 한지 제조공장에서 볼 수 있는 외국산 닥나무, 양잿물, 가둠뜨기(쌍발뜨기) 등이 아닌 전통적인 원료와 공정을 복원해 한지를 제조한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전통 방식으로 만든 한지의 우수성은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닥나무 껍질(인피섬유)은 길이가 길고 두께가 얇아 종이로 만들어질 때 섬유끼리 서로 잘 엉키는 부분이 많아 견고한 구조를 갖게 된다. 닥나무 껍질을 종이 원료로 만들 때도 천연 잿물을 사용해 순한 처리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인피섬유의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렇게 제조된 원료는 중국이나 일본에는 없는 우리나라 고유의 종이뜨기 기법인 흘림뜨기에 의해 잘 찢어지지 않는 강한 종이로 만들어진다.

지난달 29일 찾은 전주천년한지관. 1층 초지방에는 곽교만, 박신태, 오성근 한지장과 후계 교육생이 있었다. 한지 제조 체험을 위해 방문한 초등학생들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후였다.

세 한지장과 후계 교육생은 한지관에 상주하며 전통 방식으로 한지를 만들고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이들 한지장은 전주 흑석골에서 시작해 팔복동, 완주 소양면 등에서 수십 년간 한지를 만들어왔다. 한지 제조공장이 하나둘 문을 닫으며 잠시 손을 놓기도 했지만, 한지관 개관과 함께 다시 손에 하얀 닥나무 섬유를 묻히고 있다. 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콩대·볏집대·고춧대·메밀대·깻대를 직접 보관했다가 천연 잿물을 만들고, 각종 도구와 설비를 손보는 등 열정 가득하다.

곽교만, 박신태, 오성근 한지장은 "전주한지는 1970∼1980년대 찾는 곳이 많아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됐다. 사람들이 많이 찾으니 하루에 100장 뜰 걸 300장, 400장씩 떠야 했다. 하지만 전통을 중시하는 지금에 와선 그게 오히려 독이 됐다"고 했다. 한지 생산이 기계화·기업화되면서 전통 수공업에 의한 한지 생산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들은 "전주한지장들이 전통 방식으로 한지를 못 만드는 게 아니다"라며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전주 전통한지를 보전·계승하는데 일조하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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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창호 전주한지 바르기 행사/ 사진=전주시 제공

 

△전주시 조례, 전담팀 구성⋯한지 판로 개척·확대 추진

"전주는 한지에 대한 행정의 관심과 지원이 많아 부럽다." 한지를 취재하며 타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들었던 말이다. 한지의 본고장인 전주의 경우 실제로 자치단체 차원의 지원이 많은 편이다.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를 통해 국내 한지 관련 조례 현황을 보면 광역·기초자치단체 6곳에서 조례를 제정·운영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전북도와 전주시가 각각 '전라북도 한지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 '전주시 한지산업 육성 및 지원 조례'를 통해 한지산업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전주시는 전통문화유산과 내 한문화팀을 구성해 전통한지 보급을 위한 사업들을 수행하고 있다.

전주시의 대표적인 지원 정책은 2017년부터 6개 농가를 대상으로 닥나무를 재배·수매하는 '전주산 닥나무 수매사업'이다. 한지산업지원센터에 따르면 한지의 원료인 닥나무의 연간 수요량은 847톤이고, 이 가운데 국내산 닥나무는 230톤 정도로 추정된다. 나머지 부족량은 태국과 중국, 베트남, 라오스 등지에서 조달하고 있다.

이에 전주시와 한지산업지원센터는 전주한지의 정체성 확보와 안정적인 원료 공급을 위해 닥나무를 수매하기 시작했다. 2017~18년에는 관리만 진행하다가 2019년 11톤, 2020년 6톤(수해 영향), 2021년 8톤을 수확했다. 올해 기준 닥나무 재배 면적은 모두 2만1527㎡(6512평)이다.

판로를 넓히기 위한 다양한 정책적 시도도 이어졌다. 최근에는 전주시와 문화재청, 신협중앙회가 지난 2020년 체결한 전통 한지 문화유산 보전과 활용을 위한 업무협약에 따라 경복궁 창호 전주한지 바르기 행사를 진행했다. 전주산 닥나무로 제작된 전통한지는 내년 3월까지 조선시대 4대 궁궐과 종묘의 창호 보수사업에 지원될 예정이다.

또 그동안 시는 공공기관, 교육기관, 금융계, 종교계 등을 대상으로 표창장과 임명장 등에 전통한지를 사용하도록 독려해왔다. 도내 병원, 장례식장을 대상으로는 전주한지수의를 홍보했다. 한지수의는 1벌 당 A4 크기 전통한지 약 550장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품질보증은 한지 인증기관인 한지산업지원센터에서 수행하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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