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8기 각 지자체의 최대 화두는 역시 ‘인구 늘리기’다. 지방소멸 위기의 시대, 인구는 지역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가늠하는 잣대다. 정부와 각 지자체에서 그동안 갖가지 묘안을 짜내면서 인구 늘리기에 안간힘을 쏟았다. 하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이제는 인구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저출산 완화에 초점을 맞춘 기존 정책으로는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기에 역부족인 만큼 새로운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구정책의 방향을 기존 정주인구에서 ‘바람의 인구’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일본에서 주목받은 ‘바람의 인구’는 정주인구와 대비되는 새로운 인구 개념이다. 인구의 범위를 거주지 주민 외에 관광객과 체험 프로그램 참가자·출향인 등 해당 지역과 일정한 관계를 맺은 사람들로 넓힌 관계인구, 그리고 관광과 통근 및 통학·휴양·업무 등의 목적으로 특정지역에 체류하는 인구를 포함한 생활인구가 이에 속한다. 전북도는 최근 ‘함께인구’라는 개념을 도입해 인구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인구감소지역지원특별법’에서도 생활인구의 개념을 정의해 놓았다.
이 같은 추세에 맞춰 전북도를 비롯해 전국 각 지자체들이 인구정책의 패러다임을 과감하게 전환하고 있다. 주민등록인구 늘리기에 초점을 맞췄던 기존 정책을 지역 연고자 늘리기로 바꾼 것이다. 정주인구가 다소 줄어들더라도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면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어 소멸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관계인구가 늘어나면 지역 정주인구 유입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성과를 기대하기 힘든 기존 인구정책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사회 변화에 맞춰 새로운 인구 개념도 도입해볼 만하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고향사랑 기부제’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서도 관계인구·생활인구 개념을 적절히 연계해 활용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가 지방소멸 위기의 해법으로 기존 정주인구 개념을 애써 제쳐놓고 ‘바람의 인구’를 부각시켜 행정력을 집중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근거도 없이 부풀려질 게 뻔한 각 지역의 관계인구는 대부분 수도권에 거주하는 사람들일 테고, 그 인구가 해당 지역의 정주인구로 유입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각 지자체가 허상일 수도 있는 관계인구에 매달리면서 서글픈 구애정책에 몰두할까 염려된다. 좀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지방은 수도권 주민의 여행이나 체험·여가활동 장소가 되기 위해 경쟁해야 하고, 그들의 관심과 발길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소멸의 길을 걸어야 하는 ‘시한부 삶터’라는 점에 우리 사회가 동의한 것으로 보여질 수 있다.
백약이 무효였다면 극약처방을 내려야 한다. 바람의 인구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곧 허물어지고, 폐허가 된 마을에는 관광객도 출향민도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인구정책은 출산율 제고가 아닌 지역소멸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지역상생·불균형 해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지방의 인구를 빨아들여 몸집을 불리고 있는 ‘수도권 1극 체제’ 극복이 최우선 과제다.
심각한 인구 불균형 속에 지방이 텅 비어 가는데도 ‘수도권 신도시 건설 정책’을 고집하고 있는 수도권공화국 정부가 죽어가는 지방도시에 관계인구·생활인구라는 새로운 개념을 들이밀면서 지역 불균형 문제를 우회할까 우려된다. 잘 포장한 ‘바람의 인구’로 바람을 잡으면서 수도권 1극 체제 해소와 지방 살리기 정책을 제쳐놓아서는 안 된다. 지금은 지방도시 바람의 인구 늘리기에 앞서 수도권 집중을 막기 위한 균형발전 정책에 역량을 집중해야 할 때다.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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