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사금(四金)에 이어 올해는 장구를 다룬단다. 2022 전주세계소리축제 광대의 노래 풍운은 풍물굿 악기 중 장구를 메고 춤추는 설장구 명인 네 분의 이야기다. 리플렛을 통해 4명의 장구잽이들이 풀어낼 이야기들이 참으로 넓은 스펙트럼과 시간의 층위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하며 공연에 빠져들었다.
구재연의 설장구는 김만석(김만식), 황규언류라고 말하듯이 호남우도농악 본류 중 하나다. 풍물반주단은 무대 옆으로 서고 구재연의 설장구는 거침없이 빠른 휘모리로 시작한다. 가락과 태를 보자마자 왕년의 김오채 설장구가 떠올랐다. 가락의 구성으로 굿거리 마당이 핵심 주제다. 자진모리도 몇 장단 나왔지만 매도지 가락이 굿거리 마루 사이사이에 등장하여 맺고 풀고, 맺고 풀어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풍물잽이 30년 만에 이름 걸고 처음 서보는 개인놀음판, 구재연의 힘찬 데뷔 무대 그 이후가 더 기대되는 판이었다.
다음은 김병섭류 설장구 성윤선의 이야기가 있는 설장구다. 설장구놀이를 통해 바람둥이 남자, 본처와 애첩 간 삼각관계를 극적(劇的)으로 표현하였다. 남자와 애첩이 등장하여 다스름으로 합을 맞추고 휘모리 마당인 “따구궁따 궁따궁”과 함께 본처가 등장하며 삼각 설장구가 이어진다. 3인이 채우는 굿거리 마당은 다양한 동선과 기존 설장구에 없는 동작들, 연기하는 표정들이 재미지다. 이들이 보여준 설장구의 미덕은 풍물판의 힘찬 장구연주를 기본으로 무용과 연극적 표현이 풍성하면서도 대중적이었다는 점이다.
국립국악원 사물놀이 원년멤버 박은하는 충청웃다리풍물굿 양도일 명인의 장구가락을 받아 창조적으로 이어가고 있는 장구잽이다. 장구잽이의 하얀 한복에 황토빛 장구, 황토빛 장구띠가 이채롭다. 그가 살아온 인생의 여정에 동행하고 싶다는 마음이 인다. 많이 비우니 관객들의 추임새와 탄성이 시공간을 채운다. 순간순간 공간을 가르는 박은하의 장구 열채 발림 잊을 수 없다.
향년 83세 김동언의 고깔설장구는 10대 초등생 장구잽이와 함께 100년의 시간을 채워낸다. 저정거리는 발걸음과 경쾌한 장구소리의 다스름 가락으로 이미 관객들은 설렌다. 70년 차의 두 세대가 이루어내는 호흡과 발디딤, 가락연주가 이렇게 실현되는구나! 노소년 3명 장구잽이의 열채를 앞으로 내밀고 고개를 숙이는 인사는 맵시 있었고 뒷걸음질 퇴장도 인상적이다. 감사하게도 앞으로 올 미래의 설장구를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오늘 공연은 내게 화두를 던져 준 한판 굿이었다. 매도지는 무엇인가? 매도지란 설장구에서 다음 마당으로 넘어갈 때 맺어서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매도지는 맺고 풀거나, 맺어서 다음으로 이어진다. 지금 한 시대를 지나고 있는 풍물굿의 설장구, 어떻게 맺어서 다음 세대에게 이어줄 것인가? 시대의 매도지를 생각한다.
조춘영은
풍물굿 연행자 출신 연구자다. 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이며, 저서로는 <풍물굿의 원리와 미학>, <새나라로 가는 길굿>, <하늘땅을 열어라 캥마주깽 놀아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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