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화재청이 조경묘 정묘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1973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된 이후 50여년 만이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조선왕조의 시조를 봉안한 전주 조경묘에 대한 국가지정문화재 지정이 순조로이 진행되는 것을 환영하는 바이다.
조경묘는 전주이씨의 시조인 이한과 그의 부인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사당이다. 1771년(영조 47년)에 처음 지어져 지금까지 원형을 유지한 채 몇 차례의 보수를 거치며 전해 내려오고 있다.흔히 알다시피 전주는 태조 이성계의 시조인 사공(司空)공 이한부터 4대조인 목종까지 기거한 조선왕조의 뿌리이다. 조경묘는 경기전과 함께 조선 건국의 역사가 담긴 풍패지향 전주의 상징인 것이다.
그런 만큼 조경묘는 권위 높은 형태로 건립됐다. 조선시대 사당 건물의 보편적 공간구성과 건축 형태를 따르되 왕실의 격식에 맞게 정면 3칸 측면 3칸의 9칸 규모로 건립되었으며 영녕전처럼 공포에 이익공의 포작을 두어 사묘 건축 중 종묘를 제외한 가장 높은 등급의 건축물로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역사적 의미와 건축학적 가치가 큰 조경묘를 국가적 차원에서 문화재로 지정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전주시의회는 긴 시간 조경묘의 국가지정문화재 승격을 위한 활동을 펼쳐왔다. 본인 또한 2017년 조경묘의 국가 사적지 지정 추진을 촉구하는 5분 발언을 한 바 있으며 이후로도 의회는 그 가치를 알리고 학술적 연구를 촉진하기 위해 2018년과 2020년도 두 차례에 걸쳐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국가지정문화재 승격을 위한 용역 연구를 시에 건의하고 해당 예산 확보에도 힘써 온 시간이었다. 이러한 활동이 이번 보물 지정 예고에 미력하나마 도움이 되었다면 기쁘기 그지없을 것이다.
조경묘의 국가지정 문화재 지정 예고는 환영할 일이지만 아직 남은 과제도 많다. 조경묘는 정묘뿐 아니라 부속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번에는 정묘 1동만이 보물로 지정 예고되었다. 정묘 구역만이 원형을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취지다. 조경묘는 정묘뿐 아닌 이를 관리하고 의례를 추진하는 부속재 구역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추후 더 많은 연구와 조사를 통해 조경묘 전체를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해야 할 것이다.
또 하나의 과제는 조경단이다. 사실, 조경묘는 신위를 봉안한 곳일 뿐 조선왕조의 시조인 이한의 묘는 전북대학교와 동물원 사이 건지산 줄기에 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조경단은 영조 시기 경기전 북쪽에 건립된 조경묘보다 더 늦은 시기인 고종 시절에 만들어졌다. 사실, 영조 때 조경단을 만들고자 하였으나 제단을 쌓고 제사 지내는 것은 황제만이 가능하다는 일부 대신들의 반대에 결국 사당인 조경묘가 건립된 것이다. 이후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 황제가 1899년(광무 3년) 단을 쌓고 비를 세우며 조경단이 설치되었다.
조경단 또한 경기전, 조경묘와 함께 조선왕조의 발원지인 전주를 상징하는 공간인 만큼 이번 조경묘 보물 지정에 힘입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조경단에 대해 문화재청에서 진행 중인 심사와 향후 조사 등이 순조로이 이루어져 후백제 왕도이자 조선왕조의 발상지이며 동학농민혁명의 중심지인 역사문화의 도시 전주가 문화적 역량을 더욱 활짝 꽃피우기를 희망한다.
/이기동 전주시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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