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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주민이 첫 단추 꿴 웅치 국가사적지 지정

추모제 재조명작업 주민이 주도
망각의 역사에서 웅치전투 부활
호국 충혼기리는 교육장 선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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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택 수석논설위원

430년 전 조선을 침탈한 왜구에 맞서 관군과 지역주민 3000여명이 결사 항전했던 웅치전적지. 파죽지세로 조선을 점령한 왜군은 마지막 전략적 요충지인 호남평야를 차지하기 위해 총공세에 나선다. 병력을 총결집한 왜군은 15927(음력) 주력부대를 둘로 나눠 이치(梨峙·현 완주 운주)와 웅치(熊峙·곰치재) 2곳을 거쳐 전주성으로 진격하기에 이른다.

이에 조선군은 권율 장군이 이치(梨峙)에서 왜군을 막아내고 웅치에선 김제군수 정담 해남현감 변응정, 나주판관 이복남 의병장 황박과 주민 등 3000여 명이 왜군 1만여 명과 맞선다. 하지만 군사력에서 크게 열세인 관군은 왜군의 총공세에 밀리면서 창과 낫으로 백병전까지 벌이다 모두 장렬하게 최후를 맞는다. 이후 왜군은 전주성까지 진격했으나 웅치전투로 인한 전력 손실이 커 결국 공격을 포기한 채 퇴각하고 말았다.

5년 뒤 조선을 재침략한 왜군은 웅치전투를 도왔던 완주 소양과 진안 부귀를 찾아 앙갚음에 나선다. 승병으로 다수가 참전했던 소양 송광사와 마을은 모두 불태워지고 마구잡이로 주민을 학살하면서 멸문지화를 당한 가문도 적지 않았다. 이후 400여년이 지나도록 웅치전투와 호국영령들은 역사와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그러다 지난 2007년부터 웅치전투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소양주민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교직에서 정년퇴임한 뒤 고향으로 돌아온 강시복 선생이 소양면주민자치위원장을 맡으면서 웅치전투의 실상과 재평가, 홍보 활동에 적극 나섰다. 당시 웅치전투를 역사의 망각 속에서 되살린 실마리는 2년 전 작고한 소양 출신 이목윤 시인이 제공했다. 이 시인은 소설 작업을 위해 고향마을을 탐방하면서 노인들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웅치전투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자료를 취합해서 소양천 아지랑이’ ‘약무웅치 시무호남’ ‘웅치의 눈물등 여러 권의 역사 실증소설을 집필했다. 이에 강 위원장이 우리들의 자랑이라는 책자를 만들어 웅치전투는 패한 전투가 아닌 사실상 승리한 전투라며 웅치대첩을 면민들에게 알리고 자긍심을 심어줬다. 2008년부터 웅치전적지에서 추모행사를 열었고 자신이 조직한 넝쿨장학회를 통해 역사학자를 초청, 웅치전투에 대한 강연회를 여러 차례 개최했다. 2009년에는 소양웅치전투추진위원회를 조직해 선양사업에 매진해왔고 2015년부터는 완주군 웅치·이치기념사업회로 조직을 확대하고 완주군과 함께 추모행사와 성역화사업, 학술대회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앞서 진안지역에선 진안 부귀면 신덕마을 주민들이 오래전부터 웅치전투에서 희생당한 선조를 추모하는 제사를 지내왔다. 2006년부터는 민간차원에서 웅치전 순국영령추모제전위원회를 구성한 데 이어 웅치전적지 보존회로 확대 개편해 매년 추모제를 주관해오고 있다. 진안군에서도 학술단체와 함께 웅치전적지 학술대회를 열고 완주 신촌리 일대로 국한된 전북도 기념물 지정의 부당성을 제기하고 사적지 지정을 촉구했다. 2012년에는 웅치호국 추모사당인 창렬사를 세워 호국선열의 넋을 기리고 있다.

하지만 웅치대첩 추모행사는 민간 주도 행사로 그쳤다. 1976년 전북도 기념물 지정과 1979년 웅치전적지 기념비를 세운 전라북도는 정작 추모행사에는 뒷짐만 졌다. 이에 행정의 무관심에 대한 언론의 질타가 이어졌고 도의회에서도 문제 제기가 나오면서 전라북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 차원에서 학술대회와 지표조사 옛길 고증 웅치전적지 발굴조사 등이 이어졌고 지난 5월 국가사적 지정 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한차례 보완을 통해 지난달 웅치전적지가 국가사적으로 지정되는 쾌거를 이뤘다. 완주 소양과 진안 신덕마을 주민으로부터 시작된 추모행사와 역사바로세우기 노력이 행정과 학계 언론 등의 합심으로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육전에서 최초의 승리를 거둔 완주 이치전적지도 아직 전북도 기념물로 남아있다. 이곳은 익산지역 400여 명의 농민 의병이 순국한 현장이다. 하루빨리 국가사적 지정을 통해 호국영령의 충혼을 기리고 역사교육의 산 현장으로 선양해야 마땅하다.

/권순택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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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치전적지 #국가 사적 지정 #소양 신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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