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초고령사회로 접어들 전망...일하고 싶은 시니어 증가
청년과 마찬가지로 궁금한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많은 시니어
전북도립미술관, 국립전주박물관서 인생 2막 꿈꾸다
시니어 도슨트, 자원봉사자, 바리스타 등 다양하게 활동
우리나라는 지난 2017년부터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오는 2025년 상반기 만 65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들어선다. 이는 국민 5명 중 1명이 노인(이하 시니어)인 셈이라는 뜻이다.
최근 의료비 증가, 기대수명 증가 등 여러 사유로 일하고 싶은 시니어가 늘어나고 있다. 도내 곳곳에서도 시니어를 쉽게 볼 수 있다. 시니어도 청년 세대와 마찬가지로 궁금한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많다는 것이다. 없는 살림에 자식 키우느라 소 팔고 땅 팔았던 시절을 살아온 지금의 시니어들. 늦게서야 그동안 해 보고 싶었던 일, 해야만 했던 일 등에 주저 없이 도전하는 모습이다. 전북도립미술관,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의미 있는 인생 2막을 꿈꾸는 시니어들을 만났다.
모악산 자락에 있는 전북도립미술관. 매일같이 꼬불꼬불 비탈진 길을 오르는 시니어들이 있다. 기본 왕복 두세 시간.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치는 시간이지만 관람객과 마주하는 시간을 기대하며 버스에 오르는 시니어들. 그들은 미술관 전시장 곳곳에서 밝은 미소와 상냥한 목소리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거대한 미술 작품 앞에 서서 전시 안내와 작품 설명까지 마다하지 않는 미술관의 꽃이라 불리는 시니어 도슨트 장춘실 씨, 자원봉사자 권길자 씨와 이야기를 나눠 봤다.
할머니 도슨트가 되고 싶은 장춘실 씨
"춘실아, 너 자신을 잘 보살피렴."
지력과 체력을 잘 관리해야 미술관을 빛낼 수 있기 때문에 나 자신을 잘 보살펴야 한다고 말하는 장춘실(73) 씨. 전직 국어 교사이자 오래된 작품 컬렉터다. 장 씨는 33년을 교사로 살았지만 늦게나마 10대부터 관심 있었던 미술과 사랑에 빠졌다.
그는 "3관이 나를 살렸다. 나를 먹여 살린 8할은 3관이다. 도서관, 영화관, 미술관. 나이 먹고 나서야 그토록 좋아하던 미술관에서 새로운 꿈을 꾸게 됐다. 새로운 전시 들어오는 날, 작품 설치하는 날, 관람객 만나는 날. 미술관에 있으면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즐겁다"고 말했다.
관람객들의 미소를 보면서 힘을 얻는다는 장 씨는 미술관에서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바로 할머니 도슨트. 그는 "33년을 국어 교사로 살면서 다짐한 게 있다. 조직 속에 들어가서 위아래 따지는 거 안 하기. 돈 욕심 내지 않기. 그냥 봉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할머니 도슨트로 오래오래 미술관에 있으면서 관람객들에게 기분 좋고 특별한 경험을 선물해 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미술관서 살아 있음을 느끼는 권길자 씨
"호적아, 너는 계속 나이 먹으면서 가라. 나는 안 가련다."
팔순을 앞두고 있는 나이에도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이 너무 많은 자원봉사자 권길자(77) 씨. 과거에는 자식뿐만 아니라 조카까지 거둬야 했었다. 권 씨는 자식 4명, 조카 5명 총 9명을 키워야 했다.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육아에만 전념했었다. 65세가 돼서야 진정 하고 싶었던 일을 찾았고 10여 년 동안 일하고 있다.
그는 "이 나이 먹고도 출근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 다니면서 점점 내가 성장하는 느낌을 받았다. 뭔가를 새로 아는 게 즐겁고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커지는 것도 신기하고 마냥 재미있다"며 "특히 관람객을 마주하다 보니 머리, 옷도 다 신경 쓰는 편이다. 자연스럽게 나를 가꾸게 되고, 아끼게 되고, 사랑하게 된다"며 지금이 행복하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권 씨에게 과거의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나를 먼저 챙기고 자식을 챙겼으면 좋겠다. 나를 먼저 아끼고 보살피고, 나이 많다고 집에만 있지 말고 밖으로 나와서 사람과 마주하고 하고 싶은 일 하는 시니어들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발걸음을 옮겨 국립전주박물관 로비에 들어서니 연신 "어서 오세요", "맛있게 드세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등 듣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인사가 들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박물관 1층에 들어선 '바로곁애 카페'. 이곳은 지역 시니어 사회 참여를 위해 전주시니어클럽이 운영하는 카페다. 말끔한 유니폼 차림으로 커피 머신 앞에 선 시니어들. 커피를 건네주는 시니어들의 마스크 속 환한 미소가 손님들의 기분까지 덩달아 좋아지게 만든다. 이곳에서 시니어 바리스타 박종미·이다민 씨와 마주했다.
오히려 일하고 마음이 여유로워진 박종미 씨
"종미야, 너 대단하다. 잘했고 잘하고 있어."
1년 동안 바리스타로 일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는 박종미(63) 씨. 카페에서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커피나 차 종류에 관심을 가지고 따로 관련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게 박 씨의 설명이다. 어떻게 하면 손님들에게 더 예쁜 커피, 더 맛있는 차를 건넬 수 있는지 고민한다는 것이다.
그는 "일하는 것도 기쁘지만, 카페에 나오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손님들에게 환한 미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것도 카페에 있으면서 행복감을 느끼고 안정된 느낌을 받기 때문"이라며 "집에 있을 때는 한없이 우울해졌었는데 밖으로 나와 활동할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고 했다.
살면서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였다는 '바리스타'. 바리스타로 지내면서 오히려 젊었을 적보다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졌다는 박 씨다. 그는 "시니어가 되면 무언가를 새롭게 한다는 것은 무서운 것 같다.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있으면서 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나처럼 다른 시니어도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해 더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나'를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된 이다민 씨
"하고 싶었던 것, 해 보고 싶은 것 다 해 보면서 나 자신한테 몰두하고 있어요."
밝은 미소 뒤에 감춰진 아픔이 컸던 이다민(62) 씨. 2019년에 암 선고를 받고 2년 가까이 쉬면서 우울증까지 심해졌다. 그런 그를 환한 세상으로 이끈 것은 바로 바리스타. 이 씨는 카페에서 손님들을 만나고 동료들과 함께 하면서 건강이 좋아졌다.
그는 "평생 한 번 밖에 못 보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잠깐이나마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 나누고 인사하는 게 너무 행복하다. 항상 기분 좋게 손님, 동료를 마주하다 보니 혼자 있으면서 화가 나고 불안했던 마음이 많이 진정됐다. 어느 때보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살기 위해 '돈'만 보고 달렸던 세월이 원망스럽기도 하단다. 지금처럼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에 대한 후회이기도 하다. 이 씨는 "바리스타를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고 많이 움직이다 보니 매일이 건강해지는 것을 느끼고 즐겁다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 더 좋은 일자리들이 많아져서 더 많은 시니어들이 행복한 세상을 경험하고 행복한 노후를 보냈으면 좋겠다"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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