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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정전 70년] 끝나지 않은 전쟁 기억해야 할 미래 - 프롤로그

한국전쟁 정전 70주년 맞아 지역 대표 언론 9개사 참여
쉼표, 물음표, 말줄임표, 느낌표 던지며 전국 독자와 함께
전쟁의 상흔 돌아보고 미래 준비하기 위한 기억 공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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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시 창동리 임진강 하구에서 동쪽을 향해 달려가면 일련 번호가 매겨진 팻말이 500~600m 간격으로 줄지어 있다.

'0001호'로 시작하는 팻말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한반도를 가로질러 육지가 끝나고 바다를 만나는 강원도 고성군 명호리까지 248㎞ 달려간 뒤에야 '1,292호'로 마침표를 찍는다. 남쪽을 향한 696개와 북쪽을 향한 596개의 녹슨 표지판은 이곳이 남과 북을 가르는 '군사분계선(Military Demarcation Line)'임을 알려준다.

남과 북은 한반도의 동·서를 가로지른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DeMilitarized Zone·DMZ)'를 사이에 두고 언제 다시 재개될 지 모르는 '전쟁의 폭탄'을 품은 채 살얼음판을 걷 듯 70년을 보내고 있다.

DMZ을 만들어낸 한국전쟁은 1950년 6월25일 발발해 1953년7월27일 정전협이 체결되면서 중단됐다. 1,129일 동안 300만명의 사망과 실종자를 낸 동족상잔의 비극은 남과 북을 갈라놓고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마침표(.)'가 아닌 쉼표(,)'만 찍어놓고 여전히 대치 중이다. 이렇게 70년을 맞은 정전(停戰)의 시간, 그 물밑으로는 어떤 역사가 흐르고 있을까.

전북일보 등 지역 대표 언론 9개사가 소속돼 있는 한국지방신문협회는 한국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아 독자들과 함께 '끝나지 않은 전쟁'을 테마로 한국전쟁의 상흔을 돌아보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기억'의 공간으로 향한다.

 

△첫 번째 여정 '쉼표'

그 첫번째 여정은 '쉼표(,)'다. 한반도가 포성에 휩싸인 1950년 6월25일 부터 포성이 멈춘 1953년 7월27일까지 수많은 젊은이들이 자유를 지켜내기 위해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대한민국은 이들의 희생으로 자유를 지켜낼 수 있었다.

한국전쟁 첫 승전 전투인 '춘천 대첩', 낙동강 방어선 구축에 필요한 시간을 벌어준 '대전 전투', 임시 수도 부산을 지켜낸 '마산방어 전투', 대한민국을 구해 낸 '낙동강 전투', 한국전쟁의 분수령 '인천 상륙작전', 그리고 정전을 앞두고 처절하게 치러진 최후의 전쟁 '백마고지 전투'까지….

박격포로 달려오는 적의 전차를 막을 수 없게 되자 화염병과 폭약으로 적의 전차에 뛰어들어 파괴한 젊은 군인을 비롯해 "내가 물러나면 나를 쏴라"면서 부하들을 독려해 전투를 승리로 이끈 사단장 등 전장에서 죽음을 불사하고 조국과 자유를 휘해 희생한 영웅들의 숨소리를 찾아가는 길이다.

 

△두 번째 여정 '물음표'

하지만 전쟁은 영웅들의 스토리만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누군가는 전장이 아닌 집에서, 마을에서 이유없이 죽어가야만 했다. 왜 무참한 죽임을 당해야 했는지에 대해 가해자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한국전쟁에서의 민간인 학살, 알려지지 않은 그 피해는 상당했다. 그래서 두번째 여정은 '물음표(?)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민간인들의 사망과 부상, 실종은 99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 중에는 북한군은 물론 국군과 유엔군의 무참한 학살로 끔찍한 죽음을 맞은 민간인들도 많다.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으로 불리는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학살이 대표적이다. 1950년 5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대전 동구 산내 골령골에서 벌어진 남북의 민간인 학살은 최소 1,800여명에서 최대 7,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전남과 전북, 경남, 그리고 제주에서는 정부와 경찰이 죄 없는 민간인들이 좌익으로 몰아 살해한 '국민보도연맹' 학살사건이 자행됐지만 희생자 수 규명 등 진실 규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고, 네이팜탄 폭격으로 인천 월미도 일대에서 희생된 100여명의 마을주민 역시 인천상륙작전의 기념비적 승전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한국전쟁 이후 호남을 색깔 이데올로기로 물들게 한 '빨치산'의 역사와 아픔 등 숨겨지거나 알려지지 않은 전쟁의 잔혹사를 찾아가는 여정은 1,129일 간의 전쟁보다도 더 아픈 여로가 될 듯하다.

 

△세번째 여정 '말줄임표'

세번째 여정은 '말줄임표(…)'다.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라, 한국전쟁과 같은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오늘을 사는 우리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이야기다.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고 기록해 우리가 이루지 못한 일을 후세에 연결시켜 주기 위한 길이기도 하다.

전 국토의 10%만 남은 절체 절명의 위기에서 대한민국을 구한 전투는 낙동강 방어선, 일명 ‘워커 라인(Walker Line)’을 기점으로 한 낙동강 전투다. 이 곳에서의 승리로 국군과 유엔군은 대 반격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중요한 낙동강 전투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사실상 거의 없다. 낙동강 전투의 의미와 기념사업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기간 1,023일 동안 대한민국의 임시수도 였던 부산에는 당시 청부청사 등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동아대 소유로 돼 있는 임시수도 정부청사는 국가등록 문화재로 지정돼 관리중이며 세계 유일의 유엔묘지와 2022 부산비엔날레 무대로 활용됐던 부산항 제1부두 창고 등의 유산이 남아있다.

세계전쟁사에 기록돼 있는 인천상륙작전을 오늘 다시 반추하고, 국립현충원에 잠들어있는 전사들을 다시 떠올리며, 마산만 전투와 춘천대첩의 기념관을 세우기 위한 노력들도 모두 후대에 역사로 전하기 위함이다.

아픔을 기억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아픈 기억을 기록으로 남겨 후세에게 똑같은 시련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짊어져야 할 또다른 책무다. 한국전쟁의 아픈 상처를 기록으로 남기고 자유와 조국을 위해 이름모를 산하에서 초개처럼 쓰러져간 영웅들을 기리기 위한 움직임은 그래서 중요하다. 때문에 세번째 여정의 또다른 의미는 '현재 진행형(Ing)'이다.

 

△네 번째 여정 '느낌표'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 평화의 댐 인근에는 백암산을 바라보며 철조망을 두른 언덕 안에 녹슨 철모를 쓴 10여개의 '비목'이 세워져 있다. 이곳은 1964년 어느날 화천군 백암산에서 수색대 소초장으로 근무하던 젊은 소위가 백암산 계곡에서 봤던 돌무덤과 이끼 낀 나무비(碑)를 떠올리며 만든 가곡 '비목'의 탄생지이다.

백암산은 1953년 6월부터 정전협정이 이뤄진 7월 사이에 벌어진 금성 전투의 핵심 전투이자 강원도 화천 백암산을 사수하려는 국군 5사단과 8사단, 6사단 7연대가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맞서 고지전을 벌이며 피로 지켜낸 전장이다.

이곳에서 쓰러져간 국군 장병들의 유해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수습되지 못해 돌무덤 밑에 남겨졌거나 이름모를 골짜기에 방치되기도 했다. 가곡 '비목'을 쓴 청년 장교 한명희씨가 보았던 비목의 주인공도 백암산 전투에서 스러져간 젊은 영웅 중 한명 이었을 것이다.

나라의 부름에 꽃 같은 젊음을 바친 비목의 주인이 꿈꿨던 모습은 어땠을까?

이름모를 산하에 묻힌 선열들과 우리가 희망하는 정전의 쉼표(,)가 종전의 마침표(.)로, 그리고 끝내는 통일 한반도에 한민족의 기쁨과 환희로 물결치는 느낌표(!)가 가득찬 모습을 기대하며 독자 여러분을 '기억'으로 향하는 여정에 초대한다.

강원일보=이명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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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기획 #끝나지 않은 전쟁 #한국전쟁 정전 7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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