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4-12-01 19:28 (일)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문화 chevron_right 문학·출판
외부기고

이병초 시인, '시란 목숨에 대한 반성문이다'

강형철 시선집 <가장 가벼운 웃음>(군산시 펴냄) 서평

image
 강형철 시인 '가장 가벼운 웃음' 표지

강형철 시인이 돌아왔다. 맑은 정신을 가졌던 이들의 분신과 투신, 동료 선후배들의 투옥과 고문, 시위와 보안법 등만으로 요약되지 않는 1980년대의 공안정국을 뚫고 나온 군산 사나이. 시인이자 학자이고 평론가인 그는, 무려 5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놓고도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가장 가벼운 웃음'을 건넸다. 그의 시집 <해망동 일기>, <야트막한 사랑>, <도선장 불빛 아래 서 있다>, <환생> 등에 수록된 시편 중 고갱이만을 뽑아낸 시선집일 터였다. 

군산시와 군산문화도시센터에서 발간(2022. 12.)했다는 이 비매품 시집을 읽어가는 동안 눈앞이 점점 환해졌다. 당대의 모순에 직면한 현장에 있었고 시인도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이력을 가졌을지라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그의 시편들에 형상화된 사람다움의 온기, 자신이 사랑했던 어제를 쉽게 술 안주깜 삼지 않는 시의 언사는 한 시인이 오래 견딘 시간의 눈금을 느끼게 했다. 

시집 발문에서 이영진은 “그는 선배들인 김수영이나 김지하가 보여주었던 전투적 풍자나 해학의 길 대신 ‘당대의 평범한 사람’들이 견디고 있는 딜레마에서 희망과 낙관의 근거를 찾는 데 주력했다.”라고 견해를 밝혔다. 강형철 시에 간직된 사람다움의 품성을 적확하게 보여준 이 평언은 그의 시 뿌리가 현실과 밀착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우리 역사와 함께 살아온 말, “옛날에 푼이로 나락 훑을 때(「일하러 가신 어머니」), 물자세(「아버지의 사랑말씀2」), 모쟁이(「아버지의 사랑말씀4」), 마심 편케 넘의논 어우리나 짓다가(「아버지의 사랑말씀5」), 너갱이 빠진 짓(「사랑을 위한 각서9」), 한오큼 얻은 꿀(「야트막한 사랑」), 애상받쳐 죽것다(「아버지의 사랑말씀6」), 들바심, 호락질(「농사금지복」)” 등에 나타난 전북 토박이말의 결에는 어떤 삶이 쓸개 빠진 삶인가를 강하게 묻고 있는 것 같다. 평생 뼈 빠지게 살았어도 자신을 드러냄 없이 묵묵히 살아온 분들의 오늘이 진짜 희망이라는 지점에서 강형철의 시구는 생기를 얻는다. 어제가 그랬듯 오늘을 살아냄이 다시 상처일 수밖에 없는 그들의 하루가 시(詩) 역사의 숨통을 틔우는 동력임을 전북 토박이말로 확인한다. 

시 속의 현실처럼 그리고 그들 주인공처럼 어쩌면 강형철 시인도 ‘야트막하게’ 살아왔는지 모른다. 특별하고 고귀한 것에 눈길을 주기보다는 야트막한 존재들에 숨길 보태는 데 지면을 할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그의 생활을 보자마자 곧바로 수정된다. 무려 5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시인은 “옛날의 꽃잎”을 먹고 사는 게 아니라 군산시 옥서면 선연리 산 205번지에 있는 팽나무 지킴이로 나섰기 때문이다. 수령이 600년이나 되므로 지켜야 할 나무이기도 하지만 <군산 미군기지 우리땅 찾기 시민운동>에 더큰 뜻이 있어 보인다. 강형철 시인은 결코 야트막하게 살아온 것도 야트막한 시를 써온 것도 아니다. 자신의 치열한 내면을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을 뿐이다. 

고 천승세 선생과 통화한 내용을 시로 베껴낸 “시란 목숨에 대한 반성문이다(「사랑을 위한 각서1」)”라는 발화는 형언할 수 없는 살가움에 닿는다. 시란 무엇인가, 시를 왜 쓰는가라는 언술에 한참 앞서서 존재하는 이 문장을 강형철 시인의 시를 접할 모든 분께 바친다.

image
이병초 시인

이병초 시인은

전주 출생으로 1998년 <시안>에 '황방산의 달'이 당선되었다. 시집으로 <밤비>, <살구꽃 피고>, <까치독사> 등이 있고 시비평집 <우연히 마주친 한 편의 시>가 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병초 #시인 #서평 #가장가벼운웃음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