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우리는 전주라는 큰 마을에 도착했었는데 이곳은 지난날 왕이 살던 곳으로서 지금은 전라도 관찰사가 주재하고 있었다 –중략- 전주는 바다로부터 하룻길이었지만 마을이 컸고 큰 장이 서고 있었다.“ 1668년에 간행된 <하멜표류기>는 이렇게 적고 있다. 하멜이 기록한 ‘큰 장’은 오늘의 남부시장이다.
김주영의 소설 <객주>에도 남부시장의 풍경이 있다.
”미처 헤아려 챙길 사이도 없는 갖가지 물화들이 길 양편으로 쩍 벌여 내놓였는데 그 길이가 남문에서 서문까지의 오릿길 행보를 꽉 메우고 있었다. 그런데도 저잣거리 아래로 흘러가는 개천은 쪽빛으로 맑아서 길 위에선 저자가 물빛에 드리워 또한 오릿길 저자를 이루니 그 분주함이 미처 정신을 가다듬을 틈이 없을 지경이었다.”
당시 국가가 주도해 만든 시전은 서울의 도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지만 전주 같은 대형거점장에서도 열렸다. 호남권 최대 물류 집산지이자 교역의 중심으로서 전주의 기능은 8개의 도(道)가 13개로 개편되기 전까지 지속됐다. 남문(풍남문)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남문 밖 남문시장과 동문 밖 동문시장, 북문 밖 북문시장과 서문 밖 서문시장을 통해서다. 사람들은 이를 ‘남밖장’ ‘동밖장’식으로 불렀다. 남문시장인 남밖장이 지금의 남부시장이다.
전주시장의 중심이었던 남문시장은 1905년 정기 공설시장으로 개설됐다. 이후 일본 상인들이 자연스럽게 이곳에 몰려들면서 다른 장들은 쇠퇴하고 남문시장으로 통합됐다.
남문시장이 ‘남부시장’으로 이름이 바뀐 것은 1936년 시장을 개축하면서다. 당시 개축된 규모는 5천 8백여 평. 지금보다도 컸다. 이용객들도 많아 일제강점기에 쓰인 <전주부사>에는 1년 동안 시장을 이용한 사람이 186만 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남부시장은 이후에도 오랫동안 전북의 상업과 금융의 중심이었다. 전성기였던 60년대와 70년대에는 전국 각지에서 쌀을 사러 오는 상인들이 몰려 남부시장에서 전국 시세가 결정되었을 정도다.
그러나 전통시장의 상권은 오래전에 잠식당했다. 대부분의 전통시장은 소멸했거나 살아남았다 해도 쇠퇴의 길에서 허덕이고 있다. 전주의 전통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공간을 바꾸고, 서비스 환경을 새롭게 갖추는 등 회생을 위해 분투하지만 현실은 암울하다. 게다가 새로운 기술과 편리성, 서비스로 무장한 대형마트의 공세는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전통시장 살리기 전략이 바뀌어야 하는 이유다.
돌아보니 전통시장을 관광자산으로 활용하는 자치단체가 많아졌다. 이들 사이에서도 성공과 실패의 경험이 엇갈린다. 성공 사례는 지역과 그 시장만의 특성을 차별화한 경우가 많다. 전통시장을 살리는데는 좋은 선례다. /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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