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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전북 도자문화 메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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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장근 군산대 교수

우리나라에서 오직 초기청자만을 굽다가 문을 닫은 중국식 벽돌마가가 전북에 있다. 진안 도통리와 고창 반암리로 모두 다 후백제 영역에 속한다. 진안 도통리는 벽돌가마가 참담하게 파괴된 뒤 길이 43m의 진흙가마를 다시 앉혀 우리나라에서 그 길이가 가장 길다. 후백제 멸망 이후 유통 문제를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가마터의 문을 닫았다.

고창 반암리는 후백제 멸망으로 벽돌가마가 파괴되자 도공들이 병풍산을 넘어 용계리로 이동했던 것 같다. 고창 용계리는 길이 38m, 31m, 14m의 진흙가마가 서로 중첩되어, 도공들이 도전과 끈기로 진흙가마를 완성시킨 산실이다. 12세기 초 진흙가마의 원리를 완벽하게 터득한 도공들은 줄포만을 건너 부안 진서로·유천리 일대로 이주한다.

부안 유천리는 천하제일의 부안청자를 탄생시킨 명소이다. 흔히 상감청자로 상징되는 부안청자는 전북 도자문화의 최전성기를 대변한다. 구리로 문양을 그린 동화청자도 부안 유천리만의 자랑거리이다. 당시 국보급 도공들의 지혜와 고령토가 하나로 응축된 부안청자는 우리나라 도자문화의 아이콘이자 최고의 걸작품이다.

1350년부터 남해안과 서해안에 왜구가 출몰하기 시작한다. 왜구의 피해가 무자비하고 극악무도해 도공들이 호남정맥을 넘어 전북 동부로 대거 이동한다. 이 무렵 진안 반송리, 순창 심초리 등 섬진강유역에서 고려 말기 청자가 홀연히 등장한다. 전북 동부의 풍부한 백토가 도공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 보약 같은 자양분이었다.

진안 도통리를 떠난 도공의 후예들이 400년 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진안군 백운면 반송리와 성수면 중길리에 정착한 도공들이 그들의 끼를 맘껏 발휘해 중국식 벽돌가마에서 초기청자를 구운 진안고원을 도자문화의 중심지로 다시 가꾸었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건강했던 가마터가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어 몹시 애통하다.

백두대간 품속으로 이주한 도공들도 있다. 남원시 운봉읍 공안리 도요지로 왜구의 피해가 얼마나 잔인했던가를 헤아릴 수 있는 곳으로, 전북에서 유일하게 백두대간 동쪽에 위치한다. 어느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가마터가 모조리 사라져 안타깝다. 전북도자사의 역사책과도 같은 도요지가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그 보존대책이 절실하다.

조선 건국으로 전북의 도자문화가 한 단계 더 도약한다. 한국도자사에서 15세기를 분청사기, 16세기를 백자 시대라고 한다. 부안청자의 상감기법으로 무장한 도공들이 섬진강유역을 분청사기 메카로 일구었다. 기형과 색깔을 강조한 고려청자와 달리 분청사기는 해학과 풍류를 강조했다. 그때 남원은 광주, 고령과 함께 도자문화의 자웅을 겨루었다.

전북 일원에 도요지가 골고루 산재해 있지만 임실 학정리·필봉리 등 가장 핵심적인 유적이 섬진강유역에 모여 있다. 임진왜란 때 심당길, 이삼평 등 최고의 도공들이 남원부에서 포로로 붙들려가 일본 도자문화의 서막을 열었다. 우리나라 도자문화의 애환과 흥망성쇠를 간직한 전북 동부는 엄밀히 표현하면 도자문화의 극치이다.

당대의 시대상과 사회상을 가장 잘 웅변해 주는 것이 도자문화이다. 전북은 도자문화의 메카로 초기청자부터 백자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고 풍성하다. 전북의 도자문화에서 부안청자만을 기억하는 것은 한그루의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최소한 도자기전쟁 때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들의 영혼이 담긴 가마터만이라도 꼭 찾아야 한다.

/곽장근 군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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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장근 #문화마주보기 #전북도자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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