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 영정이 제사를 지내는 영정이므로 나이 든 사람의 얼굴이어야 한다는 주장과 미성년자를 성적으로 보호하고 건전한 성인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현대적 가치관을 부정하는 일이어서 16세 춘향 영정은 안된다고 하는 이들이 있다.
왜 춘향 이야기가 오랫동안 국민의 사랑을 받아 온 것일까? 대한민국 성인이라면 역대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춘향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소설이 재미있어서 그럴까? 판소리가 너무 애달프고 심금을 울려서 그럴까?
물론 그런 점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춘향전의 어사또 출두가 신바람 나고, 이몽룡을 그리워하는 춘향의 마음이 애틋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춘향의 전부는 아니다.
인류에게 ‘사랑’만큼 고귀한 것은 없다. 그러므로 사랑에 관련된 스토리는 무궁무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춘향이 오랜 시간 동안 사랑을 받는 이유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춘향의 일편단심이다. 일편단심의 그 마음이 어찌 시대를 초월하지 않겠는가?
춘향은 퇴기의 딸이라는 신분으로 당시의 신분 사회에서 생사여탈권을 가진 사또의 청을 거절했다는 사실이 모두를 놀라게 한다. 나약하고 힘없는 어린 소녀가 신관 사또의 수청을 들라는 부당한 권력에 항거한 것이 어찌 위대하지 않은가?
춘향전에는 모든 사람이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춘향 정신’이 있다. 그것은 지고지순의 임을 향한 ‘일편단심’과 도저히 항거할 수 없는 거대 권력에 목숨으로 버틴 ‘저항 정신’이다.
춘향 영정은 이 두 가지의 ‘춘향 정신’이 나타나야 한다. 지고지순해야 한다. 나이 든 여자가 지고지순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때 묻지 않는 순수한 어린 춘향을 요구한다. 이를 소아병적으로 치부한다면 할 말이 없다.
최초의 영정을 주장하는 이들은 역사성을 강조한다. 일제의 권번들이 제사드리며 사용한 영정이 진짜 춘향 영정이라고 한다. 일리 있는 말이나 그 영정에 지고지순하며 결연한 춘향의 이미지가 얼마나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들은 김은호의 춘향 영정 때문에 생긴 잘못된 학습 효과라고 하지만, 김은호 화백은 이를 간파하고 그렸는지도 모르겠다.
김현철 작가가 그린 춘향 영정 역시 나이 든 춘향이 같다고 한다. 17세 전후의 댕기 머리가 아니므로 계약 조건대로 다시 그리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춘향 영정을 그때그때 다시 그린다면 만화가 된다.
그러므로 감히 제안한다. 세미나를 열어 시민들과 소통하는 자리를 가진 후, 시민의 의견을 물어보고 다수의 의견에 따라 지금까지의 세 작품 중 하나로 춘향 영정을 결정하자.
혹, 김은호 화백의 그림이 선정된다면, 무엇이 왜색인지를 찾아 이를 바로 잡으면 된다. 홍난파 선생이 말년에 친일을 했다고 하지만, 그가 작곡한 ‘봉선화’와 ‘고향의 봄’은 국민 애창곡으로 남아 있다. 작품에 친일이 없기 때문이다.
/류정수 브니엘 회장(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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