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누군가와 함께 있지만 실상은 늘 혼자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외로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런 호소는 코로나19 이전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코로나19 이전에 이미 미국 성인 다섯 명 중 세 명이, 독일 인구의 3분의 2가 외로움이 심하다고 하였다. 영국인 여덟 명 중 한 명은 가까운 친구가 단 한 명도 없고, 4분의 3이 이웃의 이름을 모르며, 직장인의 60%가 직장에서 외로움을 느낀다고 응답했다(노리나 허츠, 고립의 시대). 급기야 영국 정부는 2018년 세계 최초로 외로움 부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을 임명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외로움 부는 단독 조직은 아니며 ‘문화·언론·스포츠부’ 장관이 겸직하고 있다. 해당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니 ‘외로움’이 무엇인지, 징후들, 원인, 대처법, 도움을 줄 수 있는 단체들, 긴급 연락처 등을 상세히 알려주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 한 조사에 의하면 성인의 네 명 중 한 명꼴(26.5%)로 치료가 필요한 심각한 외로움을 겪고 있다. 외로움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외로움은 담배를 매일 15개비씩 피는 만큼이나 해롭단다. 미국 브리검 영 대학의 조사에 의하면 외로움은 사망 위험을 30%나 높이며, 치매 위험이 66%, 심근경색 위험은 43%가 많다고 한다.
세계인들이 갈수록 더 외로워지는 원인은 무엇일까? 원인은 매우 복합적이다. 10여 년 동안 외로움에 관한 방대한 연구를 한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는 그녀의 저서(고립의 시대)에서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 그리고 신자유주의를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전 세계인이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은 제각기 다르지만 일어나자마자 하는 첫 번째 행동은 똑같다. 바로 휴대전화를 찾는 일이다. 종일 휴대전화를 몸에 붙이고 살면서도 수시로 휴대전화를 확인한다. 하루에 몇 번이나 확인할까? 노리나 허츠에 의하면 무려 평균 221번이란다. 우리는 매일 약 3시간 15분, 일 년 1,200시간을 휴대전화 속에 빠져 산다.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가 주변 사람들을 향한 관심을 빼앗고, 효과적이고 공감적인 의사소통 기회를 갉아먹고 있다.
두 번째 원인은 지난 40여 년 동안 정치와 경제를 지배해온 신자유주의 이념이다. 신자유주의는 ‘자유’를 최우선시한다. 노리나 허츠에 의하면 신자유주의는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켰는데, 미국의 CEO와 일반 직장인 간 평균 연봉 차이가 1989년 58배에서 2018년에는 무려 278배로 벌어졌다고 한다. 신자유주의는 잔인할 정도로 치열한 경쟁, 오직 승자만을 위한 사회, 심지어 ‘탐욕은 좋은 것’이라는 사고방식을 심어주어 우리를 더욱더 외롭고 소외된 존재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외로움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질병으로 보고 정부와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이 고립되어 있다고 느끼지 않게 이웃, 공동체와의 관계망을 연결해 주는 것이다. 마을회관과 같은 공동체 시설, 각종 취미나 스포츠 동아리 등이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과 연결이 될 때 벽은 허물어지고, 이방인은 이웃이 되며, 돌봄과 온정, 협력이 살아나는 따뜻한 공동체가 형성된다. 인구의 고령화, 지역소멸 위기에 처한 우리 전북은 도청과 각 시군 청에 외로움 담당 부서를 설치해야 한다. 그래서 외로운 사람들을 치료해주고, 모든 주민이 소외되지 않게 이웃, 공동체와의 망을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해야 한다. “늘 누군가와 함께 소통하고 공감하는 행복 전북”을 만들어 보자.
/권혁남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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