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구마모토성은 조선 침략을 이끈 가토 기요마사가 세운 성이다. 일본 내전에서도 활약했던 가토는 구마모토의 세습영주가 되자 성을 쌓기 시작해 7년만인 1607년에 구마모토성을 완성했다. 천수각만 두 개, 마흔 아홉 개의 성루를 가진 구마모토성은 일본의 여러 개 성 중에서도 난공불락, 견고하게 축성돼 좀체 함락하기 어려운 성으로 꼽힌다. 전해지기로는 축성에 탁월한 기량을 가진 가토가 자신의 오랜 전투 경험과 오사카 축성에 참여했던 경험, 거기에 조선의 진주성을 공략했을 때 얻은 새로운 지식을 더해 더 견고하게 성을 쌓았다고 한다. 일본의 근대 사상 최대 내전인 서남 전쟁 때 불에 탔지만 이후 재건했으며 현존하는 천수각도 1959년 다시 세운 것이다.
흥미롭게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축물인 구마모토성이 새롭게 얻은 이름이 있다. ‘구마모토 아트폴리스 지정 건축물’이 그것이다.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구마모토 아트폴리스’ 사업은 1988년에 만들어진 일종의 도시 만들기 프로젝트다. 구마모토 현이 ‘아름다운 디자인을 가진 건축물로 도시를 바꾸어 보겠다’는 취지를 내세워 만들어낸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후대에 남길 문화적 자산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근대 이후 기술적 공법을 주목하고 기능만을 앞세웠던 기존 건축물에 문제를 제기하며 건축의 진정한 가치를 모색하고 실현해나가겠다는 태도와 과정이 바탕에 있다. 과거 유산인 역사건축물을 이 대열에 포함한 배경이 궁금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구마모토 아트폴리스는 구마모토성 외에도 주요한 현대건축물까지 현 안에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 수십 개를 그 대상으로 지정해놓았다. 프로젝트를 시행한 지 4년 후, 역사적인 건물이나 호평을 받는 건축물(전통과 현대)에 대한 인증 사업을 새롭게 더해 1992년 46개의 기존 건축물을 선정한 결과다. 역사적 건축물과 이 프로젝트가 시행되기 전에 지어진 주요건축물까지 아트폴리스 영역으로 들여온 것은 시민들이 이 프로젝트를 좀 더 친밀하게 느끼고 스스로도 자부심을 갖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설명이 더해진다.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35년. 구마모토 아트폴리스는 지금도 진행 중인 프로젝트다. 한 자치단체가 같은 사업을 이처럼 길게 이어온 사례는 드물다. 세계적으로 도시를 바꾸고 새롭게 만드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국가와 도시가 적지 않지만, 그중에서도 구마모토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자치단체장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고 지속되는 힘, 역사건축물에 대한 진정한 존중과 예의를 갖춘 구마모토 아트폴리스 사업이 주는 교훈이 크다. 돌아보면 우리에게는 문화유산을 내세우면서도 그것의 진정한 힘을 의심하는 자치단체장들이 아직 많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 김은정 선임기자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