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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법종 교수의 전라도 이야기] ⑪조선의 첫 공식 ‘카메라 촬영자’, 퍼시벌 로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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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웰의 카메라. 로웰이 1884년 3월 10일 고종의 최초 사진을 찍었던 카메라로 삼각대위에 거치된 카메라 렌즈에 별도의 셔터장치가 없는 초기형임을 보여준다. 1884년 3월 10일 이후 일본 복귀 준비 중 제물포 일대에서 미해군 Juniata호 사진사 매티스 촬영. 포크가 조사여행시 사용한 카메라도 같은 기종을 사용하였을 것으로 보이는 데 날씨 상태에 따라 조리개 기능을 하는 크기가 다른 구멍이 뚫린 금속판(워터하우스 스톱(Waterhouse stop)을 렌즈 중간에 끼우고, 시계를 보며 손으로 카메라 렌즈마개를 열고 미리 계산된 노출시간이 되면 닫는 방식으로 사진을 촬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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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옵스큐라에 관한 최초의 도해집(1545)(좌)과 카메라 옵스큐라를 이용해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 이 기술이 사진술의 전신이다.(우)     출처: 위키피디아

 

△조선에 들어온 카메라(Camera)의 전신, ‘칠실파려안’

포크가 1884년 전주에서 사용한 사진기 즉, 카메라(Camera)는 1870년대 유행한 건식 유리원판 카메라였다. ‘카메라’는 로마인들이 썼던 라틴어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를 줄인 말로 ‘어두운(obscura)’+ ‘방(camera)’이라는 단어를 결합한 용어이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어두운 방이나 상자의 작은 구멍을 통해 빛을 통과시키면, 반대쪽 벽면에 바깥 풍경이나 물체가 거꾸로 나타나는 광학적 현상을 기계장치로 만든 것이다. 이 카메라 옵스큐라를 활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기법이 17세기 유럽에서 사용되었고 이 기술이 18세기 후반 조선에 도입되어 이명기(李命基)가 1787년에 그린 사실주의적 작품인  ‘유언호 초상화’(보물 제1504호) 제작에 활용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특히, 조선의 대표적인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시문집(산문) 10권)에는 카메라 옵스큐라를 순 우리식 한자표현인 ‘칠실파려안(漆室玻瓈眼)’이라고 부르고 있다. 여기에서 ‘칠실(漆옻 칠 室집 실)’은 ‘칠흑같이 어두운 방’, ‘파려’(玻유리 파瓈유리 려)’는 ‘유리’, ‘안(眼)’은 ‘눈, 보다’로 ‘캄캄한 방에서 유리 눈을 통해서 본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기계를 통해 외부 물체를 보고 그림을 그리는 것을 설명한 '칠실관화설‘(漆室觀畵說:어두운 방에서 그림을 보는 것에 대한 설명)을 통해 그 원리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칠실(漆室)은 산과 물의 아름다움이 반대편에 둘러 비친다.……맑고 좋은 날씨를 골라 방을 닫는다. 창문이나 바깥의 빛을 받아들일 만한 것은 모두 틀어막는다. 방안을 칠흑같이 깜깜하게 해 놓고 구멍 하나만 남겨둔다. 돋보기(안경알) 하나를 가져다가 구멍에 맞춰놓고 눈처럼 흰 종이판을 가져다가 돋보기에서 몇 자 거리를 두어 비치는 빛을 받는다. ...산과 물의 아름다움과 나무와 꽃과 누각 등의 모습이 모두 종이판 위로 내리비친다.……천하의 기이한 경관이다.……사물의 형상이 거꾸로 비쳐 감상하기 황홀하다. 이제 어떤 사람이 초상화를 그리되 터럭 하나라도 차이가 없기를 구한다면 이 방법을 버리고서는 달리 좋은 방법이 없을 것이다.”  <여유당전서> 문집 10 설편(說篇)

정약용의 카메라 옵스큐라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은 이기양(李基讓)이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丁若銓)의 집에 ‘칠실파려안(漆室玻瓈眼)’이라고 불린 카메라 옵스큐라를 설치하고 화가로 하여금 자신의 초상화 초본을 그리게 한 사실을 기록한 「복암이기양묘지명(伏菴李基讓墓誌銘)」에서도 확인된다.  이후 이동형 카메라 옵스큐라에 대한 기록으로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영법변증설(影法辯證說)'이 있다. 그는 “그림자란 사물의 그늘이다. ... 밝음의 반대이다. 물상이 없으면 그림자도 없고, 또 빛이 없으면 그림자도 생기지 않는다.”로 빛에 의한 물체 모습을 ‘그림자’로 총괄해 우리의 전통적 인식체계로 설명하였다. 즉, 햇빛에 비춰 생긴 검은 그림자, 거울에 나타난 그림자, 물위 거울처럼 비춰진 그림자 등의 실체와 칠실파려안에 의한 그림자 등의 실체를 빛과 연결지어 설명하였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과학적 논리로 더 발전하지는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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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3월 10일 창덕궁 농수정에서 로웰이 촬영한 고종의 최초 사진. 이 사진은 2년뒤 간행한 로웰의 저서(Percival Lowell, <Chosö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1886) 첫 페이지에 수록되었다.  사진 오른쪽 윗부분 검은색 자국은 유리원판 모서리 부분이 깨져 사진 인화시 검게 나타난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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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2월 22일 오후 2-3시경 조선에서 최초로 촬영된 조선여인 사진. 로웰이 서울 화계사 가는 길에 촬영한 최초의 조선 기생(노래하는 여인), Fragrant Iris 향기로운 붓꽃, 향란(香蘭)?, 계손향(溪蓀香)? 사진.

 

△조선 방문 공식 첫 사진촬영자, 퍼시벌 로웰 (Percival Lowell)

1830년대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외부의 물체 모습을 볼 수 있는 카메라 옵스큐라 장비와 햇빛에 반응하는 은화합물 계통 물질을 결합시켜 8시간 노출을 통해 최초의 사진이 발명되었다.(니엡스) 그리고 이후 은판에 사진이 나타나는 방식(다게레오 타입, 1분 노출)을 거쳐 1850년대 유리판에 얇은 막을 생성하는 의료용 콜로디온액과 은화합물 반응에 의한 ‘습식 콜로디온 방식(유리습판)’을 거쳐 1870년대에는 젤라틴을 활용한 ‘건식’ 유리원판 사진술(유리건판)이 개발되었다. 그리고 1883년 미국에 갔던 조선 보빙사를 돕는 외교 고문으로 포크와 함께 활동했던 미국 천문학자 ‘로웰’이 포크보다 6개월 앞서 조선에 공식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와 조선국왕 고종의 최초 사진을 찍었다. 로웰은 조선에서의 활동으로 노월(魯越)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는데 , 앞서 미국에 파견된 조선의 보빙사를 위한 외교고문으로 활동하였고 그 보답으로 1883년12월 20일 조선에 공식 초청되어 1884년 3월18일까지 약 3개월간 체류하였다. 이 기간 동안 그는 한양에 머무르면서 고종을 알현하고 이때 접한 조선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을 백과사전 형식으로 자세히 정리해 2년 뒤 1885년,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Chosö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이라는 제목의 책을 내놓았다.  로웰은 뛰어난 사진 촬영기술을 발휘하여 조선 수도 서울 일원의 다양한 모습을 촬영하였고  고종과, 왕세자 시절 순종의 최초 사진을 포함하여 80여장의 사진을 촬영하여 현재 그가 세운 박물관에 관련 자료가 남아있다. 

우리나라 사진관 기록은 1883년으로 〈한성순보(漢城旬報)〉 제14호 1884. 2.14에 “김용원(金鏞元)이라는 사람이 작년 여름에 사진관을 개설 하였다.”는 기사가 실렸는데, 이것이 최초의 기록이다. 그런데 당시 조선 사회에서 접한 사진기는 대부분 서양인들이 들고 왔다. 카메라는 처음 보는 신기한 물건이었을 뿐만 아니라 놀랍도록 정교한 사진의 결과물로 인해 사진을 찍는 카메라는 ‘사람 혼을 빼는 기계’로 인식되었다. 즉, 1880년대 후반 조선의 저잣거리에서는 “어린아이의 눈을 빼내 사진 박는 기계의 눈을 해 박는다.”, “사진 기계가 집이나 담에 비추면 집이나 담장이 무너진다.”등 흉흉한 소문이 돌던 시기였다. 특히, 1888년 선교사가 사진을 찍은 어린아이가 죽은 사건으로 사진관련 괴담이 도성에 팽배해져 선교사 보호를 위해 제물포에 정박했던 미군이 출동하는 사태도 있었다. 이 같은 서울 일원에서의 사진관련 소문과는 달리 전주에서는 오히려 전라감사가 사진찍기를 자청하고 사람들도 거부감없이 촬영에 응하고 있어 전주지역이 상대적으로 신문물 수용에 적극적이거나 거부감이 적었음을 보여준다. 

/조법종(우석대 교양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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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법종(우석대 교양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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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법종 #전라도 이야기 #퍼시벌로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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