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경부선과 호남선이 지나던 대전은 교통과 물류 중심 도시로 성장했다. 6·25 전쟁 시 대전은 국토의 중심이면서 교통·물류 중심이었던 만큼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6·25 전쟁 발발 후 북한군에 속수무책으로 밀리던 이승만 정권은 수도 서울을 버리고 피난길에 올라 대전에 도착, 임시수도로 공표하기도 했다. 옛 충남도청(등록문화재18호)을 임시정부로 사용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마치 서울에 있는 것처럼 '동요하지 말고 생업에 충실하라'는 취지의 방송 녹음을 대전에서 했다는 사실은 이미 역사적으로 검증된 일이다. 이 방송을 믿고 피난을 주저한 서울시민들이 북한군의 점령 아래 희생이 컸던 역사적 아픔도 있다. 피해는 컸지만 국군과 미군이 결사항전으로 막은 '대전전투'는 북한군의 남하 진격을 일정 시간 저지, 낙동강 전선에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할 소중한 시간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기에 당시 미군 24사단장 윌리엄 딘 소장을 구출하기 위한 철도기관사들의 활약 등 대전은 6·25 전쟁의 많은 사연을 간직한 도시로 기억된다.
◇대한민국 임시수도 대전과 임시정부 충남도청
1932년 지어진 옛 충남도청. 6·25 전쟁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다.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 각료들은 27일 새벽 2시 서울 경무대를 떠나 피난길에 올랐다. 이 대통령을 태운 열차가 대전역에 도착한 시간은 이날 오후 4시 무렵, 이렇게 늦어진 데는 열차가 대구에 내려갔다가 다시 대전으로 돌아왔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이영진 당시 충남도지사가 머물던 대흥동 관사에 짐을 풀었다. 그렇게 충남도지사 관사는 '대전경무대(大田景武臺)'로 불리며 대통령의 임시 관저가 됐고, 충남도청은 정부청사가 된 것이다. 대전은 28일 임시수도로 공표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정부는 대통령 이하 전원이 평상시와 같이 중앙청에서 집무하고, 국회도 수도 서울을 사수하기로 결정했으며, 일선에서도 충용 무쌍한 우리 국군이 한결같이 싸워서 오늘 아침 의정부를 탈환하고, 물러가는 적을 추격 중입니다. 국민 여러분은 군과 정부를 신뢰하고, 조금도 동요함이 없기를 바라는 바입니다"는 내용으로 육성녹음을 했다. 이 녹음은 27일부터 서울중앙방송국에서 방송되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방송만 믿고 이 대통령이 서울에 머무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은 28일 새벽 2시 30분, 인민군의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한강인도교를 폭파했다. 이 대통령의 녹음 방송 말만 믿다가 뒤늦게 피난길에 올라 다리 위에 있던 무고한 피난민 수백 명이 희생을 당했다. 북한군을 저지하다 한강 이남으로 후퇴하지 못한 국군 수만 명도 발이 묶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래도 유의미하게 7월 12일 관저에서 한국과 주한미국대사가 '대전협정'을 맺었는데, 이 협정으로 국군과 미군이 '대전전투' 등을 통해 일주일 동안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는 고군분투를 했다. 16일 금강방어선까지 무너지자, 윌리엄 딘 소장은 대전 갑천 동쪽 천변에 새로운 진지를 구축하고, 북한군의 남하를 필사적으로 막았다. 비록 북한군의 승리로 끝났지만 이는 훗날 낙동강 전선에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버는 값진 전투로 평가됐다.
현재 옛 충남도청은 2013년 대전근현대사전시관으로 개관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머물던 6·25 전쟁 당시 모습 등 100년간의 대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기관사, 미카 3-129호, 그리고 호국철도기념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영면을 하고 있는 보훈의 성지 국립대전현충원 한쪽에는 멈춰선 철마가 있다. 이 철마는 6·25 전쟁과 무슨 사연이 있을까?. 북한군에 대전이 위협을 받자 이승만 대통령과 내각이 또다시 대구로 피난길에 오른다. 이후 군인과 미국군은 1950년 7월 19-20일 이른바 '대전전투'를 벌인다. 당시 미군 24사단장 윌리엄 딘 소장은 오산-평택-천안-조치원 등 앞선 전투에서 패전을 거듭하자, 계획에 없던 대전을 방어선으로 구축했다. 딘 소장은 미 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의 지시에 따라 3일의 시간을 벌기 위해 대전 외곽의 갑천을 중심으로 진지를 구축, 북한군과 격전을 벌였지만 결국 대전을 내주며 후퇴하고 말았다. 미 제24사단은 1950년 7월 20일까지 대전을 방어해 미 제1기병사단의 옥천, 영동 일대 투입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는 임무를 완수했지만, 이 과정에서 부대가 제각기 철수하며 투입 병력 3933명 중 1/4에 달하는 1150명의 전사자와 다수의 전투 장비 손실 등 많은 희생을 감수했다. 특히 딘 소장은 북한군의 포로가 되고 만다.
충남 논산 출신인 김재현 기관사(1923-1950)는 7월 16일 북한군이 대전까지 내려오자 수송지원을 위해 약 1만 9300명의 철도원과 함께 전투에 참여했다. 포로가 된 딘 소장을 구하기 위해 김재현 기관사는 미군 특공대원 30여 명과 함께 증기기관차 미카 3-129호를 몰고 딘 소장 구출 작전을 벌였다. 그러나 적탄을 뚫고 대전역까지 갔으나 작전에 실패하고 귀환하던 중 매복하던 적으로부터 8발의 총상을 입고 순직했다. 김재현 기관사가 쓰러지자 곧이어 현재영 부기관사가 운전대를 잡았지만, 그도 왼팔에 총상을 입었으며 마지막에는 황남호 부기관사가 운전대를 잡고 기적적으로 탈출에 성공했다. 탈출 과정에서 김재현 기관사를 포함, 모두 33명이 순직했다. 딘 소장은 1953년 포로교환으로 귀환했으며, 세 기관사는 미 국방장관 특별민간공로훈장이 수여됐다. 특히 김재현 기관사는 철도인 최초로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이 됐고, 대전 판암기지 인근에 그를 기리는 순직비가 있다.
증기기관차 미카 3-129호는 부산-신의주 등 주요 간선에서 운행되다가 1967년 디젤 기관차가 등장함에 따라 운행이 중단됐다. 이후 1981년부터 2년간 동해 남부선 부산-경주 구간서 관광 열차로 활용되다가 2008년 10월 17일 제415호 문화재로 등록됐다. 전국의 미카형 증기기관차 중 2량만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415호로 지정됐으며, 그중 하나가 국립대전현충원에 전시된 것이다.
대전현충원은 미카 3-129호와 함께 6·26 에 참전한 철도인들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2013년 '호국철도기념관'을 건립했다. 6·25 당시 군사 수송작전에 투입됐다 순직한 기관사 287명을 기리고 있다. 김재현 기관사를 비롯, 전쟁에서 활약한 철도기관사 등도 소개한다. 나아가 한국철도의 시작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철도의 역사를 만날 수 있다.
◇기억하라, 호국보훈메모리얼파크
이렇듯 대전시는 6·25 전쟁의 역사적 아픔이 있는 곳이다. 여기에 보훈의 성지인 국립대전현충원까지 있지만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을 위해 필요한 제대로 된 보훈인프라는 부족한 실정이다. 국립대전현충원의 경우 국가유공자, 유족뿐만 시민들까지 1년에 약 331만 명이 방문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일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나 후대를 위해 교육 등의 시설은 열악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대전에 '호국보훈메모리얼파크(호국보훈파크)'가 조성되는 이유다. 호국보훈메모리얼파크 조성사업은 윤석열 대통령의 지역 7대 공약이다. 대전시가 제안한 후 윤 대통령이 지역공약사업으로 채택하며 본격화됐다. 유성구 구암동 현충원역 일원 약 70만 5000㎡ 부지에 8995억 원을 들여 전국 최대 규모의 추모를 위한 보훈테마파크 조성이 골자다.
지난 9월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호국보훈메모리얼파크' 조성 사업에 대해 "국가유공자 유가족과 참배객들이 불편함이 없도록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고인을 기릴 수 있도록 국가가 노력할 것"이라며 "관계부처 간 협의와 함께 예비타당성조사 등의 조사를 거쳐, 장기적으로 추진해 나가게 될 것"이라며 긍정적 입장을 보임에 따라 청신호가 켜졌다.
최근 대전시는 메모리얼파크 조성을 위해 '호국보훈파크 조성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발주했다. 용역은 보훈복합커뮤니티센터와 보훈휴양원 등 국가보훈시설 건립의 타당성 조사와 함께 사업계획 수립 추진, 각 사업 개발의 시행자 선정과 방식·규모·콘텐츠 구상, 행정절차 대응 등 사업추진에 필요한 기술·학술적 검토를 목적으로 한다.
시는 용역을 통해 자체적 사업계획 마련 후 국가보훈부 등 관계기관과의 협의를 통해 2029년까지 준공할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국가보훈파크 조성으로 잊혀져 가는 보훈문화를 확산하는 것이 목표"라며 "의미를 갖는 만큼 모두가 한목소리로 조성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전일보=이다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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