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 신문로에 가면 성곡미술관이 있는데 성곡(省谷)은 쌍용그룹 창업자인 김성곤의 호다. 카이제르 수염으로 유명했던 성곡 김성곤은 백남억, 김진만, 길재호 등과 더불어 반 김종필계 4인방 중 한명이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리던 그도 1971년 오치성 내무부장관 불신임안을 가결시킨 소위 '10·2 항명파동'을 계기로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진노를 사 결국 정계를 떠났다. 동명이인은 많아도 호가 같은 경우는 드문 법인데 김길준 전 군산시장의 호 역시 성곡(省谷)이다. 어려운 사람을 살핀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오래전 정계를 떠났고 또한 별세한지도 2년도 넘은 김길준 전 시장이 요즘 지역사회에서 화제가 되고있다. 그를 추모하는 기념사업회가 활동을 시작한 때문이다. 염석호 전 시장 비서실장이 주도하는 기념사업회에는 나창기 전 군산상고 감독, 이종영∙김관배 전 군산시의회 의장, 지역 언론인 등이 뜻을 같이하고 있다고 한다. 사업회는 흉상 제작, 장학기금 확대 운영, 김길준 기념관 마련, 추모집 발간 등을 계획중이다. 찬반 논란이 가열되면서 소석 이철승 추모사업도 진행되지 못하는 상황인데 정계나 법조계 거물도 아닌 국회의원 한번, 군산시장 두번을 지냈을 뿐인 사람을 추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큰 인물은 아닐지라도 김길준 전 시장이 나름대로 어떤 원칙을 지키며 살아왔다는 얘기다. 기념사업회 관계자들은 “그는 늘 서민의 편에 섰으며 나름의 원칙을 지키는 과정에서 손해를 감수하면서 권력자와 충돌했다”고 회고했다. 대표적인게 F1 그랑프리인데 이 사건은 많은 이들의 운명을 바꿨다. 군산시장 재직시절 세풍건설에서 찾아와 폐 염전 167만평을 용도변경해 자동차 경주대회를 하자는 제안을 했다. 당시 폐 염전 공시지가가 1만원 이었는데 이를 준공업지역으로 용도변경하면 10만원으로 뛰게 돼 그 차익은 상상을 초월했다. 용도변경이 되자마자 세풍은 은행에서 997억원을 대출받았는데 사진 한장 찍고 공사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 결국 조건부 용도변경을 한 군산시는 용도를 본 상태로 되돌렸다. 난리가 난 은행은 세풍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고, 결국 덤터기는 유종근 당시 도지사가 져야만 했다. 유 지사는 이 사건으로 5년형을 선고 받았다. 에피소드 하나. 김 전 시장은 당시 위암 수술을 받고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세풍에서 병원까지 찾아와 과일 상자를 두고갔다고 한다. 염석호 실장은 “저 상자 갖다 주라고 해서 돌려줬는데 돈이 그렇게 무거운 것임을 그 때 처음으로 알았다”고 회고했다. 김 전 시장은 생전 “세풍은 처음부터 F1 그랑프리 대회를 치를 계획이 없었고 시세차익을 노린 범죄행위에 불과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어차피 추진하기로 한 기념사업인 만큼 김길준 전 시장을 영웅시하기 보다는 어려운 이를 살핀다는 그의 유지를 받들어 장학기금 확대 등 작지만 지역사회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활동을 기대한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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