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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소설] 미지의 여행 - 신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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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성 화백.

동의 없이 찾아오는 황량한 새벽에 잠에서 깨면 먼저 어디에 누워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어둠 속에서 헤매는 시선들로 창밖의 희미한 불빛들과 귀신의 형상처럼 걸려있는 신문배달 유니폼을 찾아내면 절반은 온 것이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는 방법도 어렵지 않다. 막으려 해도 비집고 새어나오는 입김이 결마다 갈라진 입술을 거쳐 코끝까지 서리를 맺히게 하니 아마 꿈속에서 이렇게 시린 계절은 없으리라. 어쩌면 그 새벽에 눈을 뜨게 되는 건 서서히 몸이 굳으며 동사가 되기 직전 발악하는 한 생명의 마지막 배웅일 수도 있을 것이다. 몸을 움직이는 데도 절벽에서 뛰어내릴 만큼의 결단이 필요하다. 침낭 덕분에 몸 곳곳에 어설픈 온기를 품고 있는데 여기서 나가는 순간부터는 온몸이 떨리는 추위에 마치 내 안에 꿈틀거리는 모든 신경세포들이 내게 역정을 내는 느낌이다. 그 때문인지 살 끝 곳곳이 더 찌릿찌릿하면서 따가워진다.

새벽 2시 15분.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팔을 올리며 귀에서 귀마개를 빼면 창 밖에서 철로를 지나다니는 기차들의 소리가 벌써부터 야단법석이다. 그나마 지하철은 유난떨지 않고 얌전하게 지나가는 편이지만 가장 고약한 녀석은 주기적으로 석탄을 나르는 열차다. 지나갈 때마다 박자가 맞지 않는 온갖 신호음으로 생색을 내며 열차의 길이는 또 얼마나 긴지 30초 남짓의 시간동안 도시 전체를 흔드는 소음이 이어진다. 언제쯤 익숙해질까. 익숙해지긴 할까. 

 2평 남짓의 기숙사에 처음 발을 디딜 때 엄지손가락만한 바퀴벌레 다음으로 나를 반겨주던 게 8줄의 철로들이었다. 오랫동안 잠겨있던 듯 먼지 가득한 창틀의 창문을 열자마자 철로들이 격하게 환영하는 것처럼 뿌연 먼지바람이 내 안면을 가득 매웠다. 그러고는 쓸데없이 우수에 젖어 감성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철로에는 삶과 죽음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는. 비단구렁이처럼 철로를 따라 꿈틀거리는 열차들이 생생한 도시의 삶을 비춘다면 또 한편엔 나오기 힘든 쇠창살 같은 철로들 위로 확 뛰어내려 죽어버리기 딱 알맞은 배경이었으니까. 저 철로들은 어디에 더 가까울까. 동적인 삶, 정적인 죽음. 철로들은 찰나에 생긴 고요함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머릿속에서 서성거리는 생각들과 어색한 인사를 하고 있으면 문이 부서질 듯 세 번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굵직한 목소리도 들리기 시작한다. 

“오키테!”

며칠 전에 어학원에서 배운 단어다. 오키루. 일어나다. 명령어에는 루를 지우고 테를 붙이니 일어나라는 말일 것이다. 방에서는 귀찮은 듯 “하이!(네)”라고 대답하고는 그제서야 애벌레처럼 침낭 밖으로 몸을 뺀 뒤 부랴부랴 배달유니폼과 헬맷을 집어 들고 한기로 가득 채워진 방안을 벗어난다. 

신발을 꺾어 신은 채로 쥐구멍 같은 계단 통로를 내려와 중앙거실로 나오면 이미 오타군이 따듯한 우롱차를 마시고 있다. 만화로 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있는 19살 학생인데 저 나이에 신문배달을 하는 것만으로도 철이 일찍 든 편이다. 일을 시작한 지 2주 정도 되었을까. 다른 직원들과 조금씩 안면도 트고 일본어로 간단한 안부 인사정도의 소통이 가능하기 시작한 때에 오타군은 거실 한 쪽에 있는 내게 본인이 만든 파스타를 조심스럽게 건네주었다. 아무 야채가 들어가 있지 않고 소금과 오일만 들어가 있는 파스타였는데 이미 오타군이 자주 저렇게 해 먹는 걸 곁눈질로 봐서 알고 있었다. 나는 한국식으로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는 표현을 전했고 오타군은 별 거 아니라며 나이와 어울린 쑥스러움을 눈가의 주름에 내비치며 먹어보라고 권했다. 

겉보기에는 파스타면만 삶은 모양을 취하고 있지만 포크로 면을 살짝 비벼주니 그 안에 있던 올리브오일이 흘러나오며 슬며시 오일파스타의 윤기를 뽐냈다. 먹고 싶지 않은 비주얼이긴 했지만 오타군의 오랜 연습의 결과인지 간도 잘 배어있고 보기보단 훨씬 괜찮은 음식이었다. 그동안 배운 단어들과 문장들을 겨우 조합해서 어설픈 발음으로 오타군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정말 맛있네요. 근데 오타군은 왜 매일 이것만 먹습니까?”

문장으로 된 일본어가 내 입에서 나온 게 처음이었는지 오타군은 살짝 놀란 눈치였지만 이내 내 말을 곧장 이해하고선 나조차도 알아듣기 쉬운 단어를 선택해 대답했다. 어쩌면 나를 위한 배려였을까.

“야스이까라.(싸니까). 저거 하나에 90엔이에요.”

그는 손짓으로 주방 선반에 있는 파스타면 봉지를 가리키며 쌀보다 싼 음식이 필요하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의도치 않게 선명한 그와의 첫 만남이었다. 

몸을 녹이며 차를 마시고 있는 오타군과 잘 잤냐는 형식적인 인사를 주고받으면 뒤이어 다나카, 요시다, 그리고 창 위엔이라는 22살 중국인 유학생까지 줄줄이 이어 나온다. 전부 잠이 덜 깬 채로 까치집 머리를 하고선 기계처럼 인사를 주고받는다. 다들 무언가를 원망하는 표정들이지만 원망해야하는 대상이 이 암흑같이 깜깜한 새벽의 현실이 아니라 본인 자신이라는 걸 깨닫고선 찬물 세수로 잡생각들까지 겨우 씻어낸다. 

출근카드를 넣을 때면 이제 잠은 다 깬 상태다. 신문사에 무료로 배급되는 짠맛 섞인 물 한 통을 챙기고선 오토바이 안장에 넣고 서로 약속된 것처럼 각자의 위치로 오토바이를 옮겨놓는다. 그러면 저 멀리 도로 한복판에 대형트럭이 멈춰 서는 게 보이고 그때부터 우리 지사에 할당되는 신문 2800부를 전부 나르기 시작한다. 한 뭉치마다 100부씩 묶여있으니 대여섯 명의 직원들이  두, 세 번씩 나르면 금방 끝나는 일이다.

조간신문의 경우 330부, 석간신문의 경우 180부를 배달해야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새벽에는 4시간 안에 300곳을, 오후에는 2시간 안에 150곳이 넘는 장소들을 들락날락해야하니 일이 끝나고 나면 잠에서 깼을 때 설한의 고통이 그리워질 만큼 온 몸이 땀에 젖어있다. 새벽 배달 업무는 5시간 안에만 마무리하면 되지만 서둘러 오전 6시 30분까지 맞춰 끝내면 숙소 근처의 철교에서 다채로운 경치가 어우러진 주황빛 일출을 간신히 볼 수 있다. 온통 검은색뿐인 내 하루 중 일상에서 유일하게 색감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색을 느낄 수 있는 시선들을 눈에 자주 담으면 내 안에 있는 시커먼 먼지같은 것들이 벗겨질 수 있다는 마지막 발악인 것일까. 

세상의 색깔이 어두워 보이는 것도 이젠 나만의 불치병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거울 속에 보이는 한 인간의 얼굴부터 사계절 내내 우기를 알리듯 폭우에 지친 우중충한 장마의 모습을 띄고 있고 표정이라고는 무표정 말고는 미세한 다른 어떤 표정도 가늠할 수 없다. 손가락으로 입가 양 쪽을 찢어 억지로 미소라는 것을 만들어보아도 그 어색하고 불편한 기색에 오히려 더 거부감이 생기게 되고 안색마저 죽어가고 있는 짐승들의 표본이다. 미소를 지어 본 적이 언제였을까. 그때였을까 생각해내면 너무 멀리 돌아가 버리고 아니면 그때인가 싶으면 그때는 행복해서 지은 미소가 아니었다. 한 때는 눈부신 일상을 그리기도 했고 마주하기도 했다. 햇빛이 온 몸에 닿으면 서서히 스며들어 피부결의 일부가 된 듯 서로 한 몸을 이루며 어쩌면 그 온기들로 인간의 혈색과 세상의 색들이 갖춰지는 것일까.  

어느새 조금씩 피어오르는 해가 억지로 기지개를 키고 있다.  

이미 알고 있었다. 어차피 사랑이란 건 사랑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르지 않을까 하는 알 수 없는 기대감과 어리석음으로 스스로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사랑에는 돈이 있어야 하고 돈이 있어야 두 사람의 미래가 있을 수 있었다. 풋내기 때의 연애에서는 하룻밤 사랑만으로도 사랑이 되기도 하지만 30대 때의 사랑은 물질주의에 틀어박혀 버리고 서로의 보폭만 눈치보며 주변을 맴돌기만 한다. 내가 변한 것일까. 

그 사람을 원망할 자격도 없다. 원망이 늘어나면 오히려 더 비참해지는 신세한탄으로 이어지며 그 때의 순간들을 안주삼아 술을 찾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마시는 술은 술맛이야 좋겠지만 예상치 못한 더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전화를 하거나 눈물을 보이는 하찮고 창피한 순간들. 

적적한 고요를 즐기며 잠에 드려 할 때쯤 누군가 방문을 두드린다. 정직원인 요시다였다. 요시다가 내 방에 온 건 처음이었다.

“점장이 찾아요.”

일본인들은 왜 저렇게 다 친절할까. 저 간단한 말을 하면서도 내게 보이는 찰나의 웃음들과 정성껏 안내하려는 손의 움직임들. 어쩌면 일본이라는 나라의 인식을 좋게 심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다가 나는 한국인이라는 생각으로 돌아오며 정신을 차린다. 

1층에 있는 사무실로 내려가자 혼자 업무를 보고 있는 점장이 나를 보자마자 사무실 한 쪽에 있는 테이블을 가리키며 앉으라고 손짓했다. 머릿속은 복잡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배달오류라면 쪽지를 붙여놓았을 것이고 배달지가 새로 생겼다면 그것도 쪽지를 붙여놓았을 것이다. 사무실의 한 구석에서 점장의 눈치를 보고 있으니 영락없이 교무실에 끌려온 중학생의 모습이었다. 만약에 큰 잘못이라도 저질러 쫓겨나게라도 된다면 당장 내일부터 거리에 나앉게 된다. 뭐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일은 괜찮죠?” 점장은 아직 내가 일본어가 짧은 것을 알고 쉬운 단어만 골라 물었다. 아마 일 적응에 대한 안부인사 정도가 될 것이다. 

“네. 좋습니다.”

덕분에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이 정도는 쉽게 견딜 수 있다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더듬거리며 단어를 떠올리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당신에게 충성하고 있다는 태도와 눈빛을 보여주니 점장도 옅은 웃음기를 보이며 긴장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별 건 아니에요. 김 상. 혹시 수금 업무도 해보는 건 어때요?”

수금에 관해서는 직원들과 넌지시 얘기했던 적이 있었다. 오타군이 점장의 지시를 받고 부랴부랴 외출을 하길래 어디가냐고 물었더니 수금을 간다고 했었다. 떠나버리는 오타군 뒤로 얌전히 있던 다나카가 수금을 하면 수금한 금액 10%의 인센티브가 있다며 한 달에 50곳 정도만 수금해도 보너스로 쏠쏠하다는 얘기가 불현 듯 떠올랐다. 

“어려운 건 없어요. 그냥 지로용지 가지고 가서 수금하러 왔다고 하고 돈만 받아오면 돼요. 영수증도 그 자리에서 손으로 써서 주면 되고.”

어차피 오후 배달이 끝나면 할 일도 없었다. 읽을 책도 바닥난 상태였고 일본어 공부만 하기에는 따분함이 몰려오던 시기일 뿐더러 혼자서 술을 마시는 것도 이제 지긋지긋한 상태였다. 돈이 급한 건 아니었지만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들을 지워주기 위한 활동으로 적합할 것 같았다. 

“네. 좋습니다. 점장님. 혹시 하다가 힘들면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언제든지요.”

일을 막 시작할 무렵, 점장은 신문배달 업무와 숙소생활에 관해 유의사항 같은 것들을 하나하나씩 일러주곤 했다. 출근시간 새벽 2시 20분은 반드시 지킬 것, 비가 올 때는 무조건 우비를 입을 것, 월급은 매월 24일에 지급, 숙소에 외부인 출입은 금지, 저녁 8시 이후에는 숙소에서 소란피우지 말 것, 공용주방 설거지는 곧바로 할 것 등 다양한 규칙들이 있었는데 대부분 일반적인 상식과 매너 비슷한 것들이었다.

“아. 그리고 배달하는 집에 신문이 3개정도 쌓였으면 사무실에 보고해야 해요.”

배달지의 오류거나 집주인이 여행을 갔을 수도 있으니 그 단순한 뜻을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점장은 내가 그 말의 숨은 뜻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

“요즘 혼자사시는 분들 중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나중에 알고 보니 신문사가 일본 경찰청과 자살방지 협약을 맺었다고 했다. 대강의 내용들은 배달원들이 수금이나 배달 때문에 날마다 가정집에 들락날락하며 자살에 대한 징조나 이미 자살한 사람에 대한 초기 발견에 있어 도움이 될 수 있으니 경찰은 배달원들에게 일종의 협조를 구하는 것이다. 점장의 얘기를 듣고 나니 괜히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눈앞에 시체를 마주하는 것이 태연하게 지나갈 수 있는 일은 아닐 테니까. 

점장과 얘기를 마치고선 그 다음날부터 곧바로 수금 업무에 투입됐다. 말이라도 걸거나 모르는 업무에 대해 요청하면 어떡해야하는지 걱정의 마음도 앞섰지만 점장 말대로 수금만 금방 끝내버리는 단순한 일이었다. 방문 전 매니저가 먼저 전화를 걸어 수금하러 방문해도 되겠냐는 허락을 받아놓고 가기 때문에 허탕을 치는 일도 없었다. 자동이체 하는 방법을 알려드리면 되지 않냐고 단순한 궁금증을 물어보자 그렇게 되면 서서히 밥줄이 끊기게 되니 알아서 하라는 매니저의 핀잔을 듣고 말았다. 

이노우에를 처음 만난 것도 수금 업무 때문이었다. 어두운 새벽에는 신문을 넣을 우편함 찾기에만 급급하기 때문에 집집마다의 분간은 하지 않는데 알고 보니 이노우에의 집은 내가 조간신문을 직접 배달하고 있는 집이었다. 족히 50년은 되었을까. 대문 앞에는 이미 사람의 손길을 떠난 지 오래된 자전거가 문지기처럼 문을 지키고 있었고 그 옆에는 이노우에(井上) 한자가 써있는 철제 재질의 우편함이 성인 가슴팍 높이에 걸려있었다. 사람 양팔 길이의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도심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담한 정원이 눈에 들어왔고 그 다음에는 손님들을 언제라도 환영하겠다는 듯 활짝 열린 거실 사이로 이노우에가 슬리퍼를 신으며 부랴부랴 사람을 맞이한다. 정원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수국들은 이미 수명을 다한 상태였다. 꽃이 핀 형체는 어렴풋이 드러난 걸 보니 아마 잎 정리에 손을 뗀 지 얼마 안 된 모양이었다. 

“한국인?”

70대 노인이라기엔 잔잔한 호수같은 평온함이 첫인상에 가득했다. 수많은 순간들을 거쳐 이제는 당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놀랍지 않고 대수롭지 않은 듯한 그 평온함. 아마 이노우에는 누군가 그의 목에 칼을 대도 살려달라 목 놓아 애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네. 어떻게 아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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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성 화백.

“한국인들은 특징이 있지. 웃음기가 없는 얼굴과 단정한 머리.”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을 만큼 피곤해도 세면대에서 머리는 꼭 감는, 이유 없이 밝은 표정을 짓고 있으면 되레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한국인들. 어쩌면 한국이라는 나라는 남에 대한 시선이 강박처럼 자리 잡고 도저히 행복할 수 없는 세상에서 얼굴에 띄는 미소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곳인 걸까. 생각해보니 우울한 말이었다.

대화가 길어지면 문장 곳곳마다 못 알아듣는 말들이 늘어날 테니 서둘러 수금하러 왔다며 둘러댔다. 하지만 이노우에는 대뜸 내게 따듯한 차를 한잔 하고 가라며 권했다. 어색한 상황이 이어질 것 같은 느낌에 처음 한 번은 사양했지만 이미 준비를 하고 있는 이노우에를 보며 발걸음을 무겁게 옮겼다.

실례하겠다는 말을 시작으로 신을 벗으며 밖에서 처음 보았던 거실로 들어서자마자 연한 살색의 다다미가 간격을 맞춰 다소곳하게 펼쳐져 있었다. 이노우에는 중앙에 있는 좌식형 테이블에 앉아있으라는 듯 그의 허리처럼 꾸부정한 손짓을 건넸다.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며 코타츠 안에 다리를 넣으니 온 몸이 녹아버릴 듯한 따듯함에 긴장이 풀려버렸고 시선은 자연스럽게 집의 곳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 시선들 사이에 가장 오래 머문 시선은 아마 거실 구석에 깔끔히 자리잡고 있는 제사상이 될 것이다. 때깔 좋은 원목 수납장 사이에 그의 부인으로 보이는 나이 지긋한 여인의 사진이 중앙에 놓여있었고 그 아래 바닥에는 몇 개의 향과 바로 먹어도 이상하지 않은 과일, 정갈한 식사까지 정성스레 준비돼있었다. 도둑질을 하듯 조심스럽게 살피던 내 눈길들을 이노우에도 금방 눈치챘다.

“내 아내야. 두 달 전에 죽었지. 그래서 매일 오마이리 하는 중이야.”

“오마이리요?”

오마이리를 이해하지 못하자 이노우에는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을 하며 몸으로 단어의 뜻을 알려주었다. 매일 아내를 기리며 기도를 하는 모양이었다. 음식도 매일 준비하는 것이냐고 물어보니 같이 먹으면 심심하지 않다며 쑥스러운 듯 의미 담긴 웃음을 지어보이며 끓인 차를 내어왔다. 잔에 차를 따라주는데 이노우에의 손이 덜덜 떨려 하마터면 내게 쏟아버릴 것 같은 걱정이 들었지만 다행히 별 문제없이 잔이 채워졌다. 걸러지는 찻잎 사이로 쏟아지는 선명한 초록빛 물줄기가 파도를 일렁이며 잔이 채워졌고 일본의 다도문화를 몰라 그래도 예의를 차리겠다는 모습을 위해 무릎을 꿇고 앉아있으니 이노우에는 손사레치면서 편하게 앉으라며 내 자세를 다시 바로 잡았다. 

“옛날에 선물 받은 녹차야. 뜨거우니 천천히 마셔봐.” 

두 손을 모아 잔을 들어 먼저 향을 맡아보니 녹차의 쓴 향보다는 산 속 곳곳에 담겨있는 피톤치드처럼 상쾌한 내음이 코 속으로 들어와 정신까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천천히 입술 끝에 녹차를 적셔 온도를 확인하고 조금씩 들이키자 코로 맡았던 향이 다시 퍼지며 부드러운 녹차의 맛이 입 안에서 맴돌았다. 뜨거운 물에 티백을 담가 마시던 싸구려 녹차와는 아예 다른 차의 종류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차는 잘 모르지만 이게 좋은 차인 건 알겠습니다.”

이노우에는 그의 나이와 어울리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선 나도 모르게 그가 아내를 위해 차린 상에 시선이 멈추었다. 노인의 얼굴과 주름에서는 생기 넘치는 감정을 읽기 어렵지만 그가 겪고 있는 상실감이라는 감정에 대해서는 느낄 수 있었다. 사실 그의 아내가 죽었다고 했을 때부터 그의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공허한 무언가가 공간에 있는 모든 공기의 무게를 더 탁하게 만드는 듯 했다. 언젠가의 이별에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두었는지 일생동안 함께한 사람을 한순간에 잃은 것에 비해서는 초연해보이기도 했지만 멋쩍게 건네는 미소 사이로 그 쓸쓸하고 외로움이 사무치는 감정들마저 숨기지는 못했다. 짐작해보려도 했지만 이건 찰나적으로도 짐작이 가능한 게 아니었다. 수십 년이 넘는 세월이 힘껏 담겨있는 서로의 사랑과 이별에 대한 소중한 감정들을 이제 사회에서 발버둥치는 풋내기가 느끼기엔 넘볼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랬기에 내 안에서 어떤 위로의 표현을 써야할지 헷갈리고 말았다. 마당에 있는 수국을 보며 쓸쓸하진 않냐고, 집 곳곳에 깃들어있는 아내의 흔적들 때문에 외롭진 않냐고, 이제 아내를 보지 못하는 것이 눈물을 참아야 할 만큼 힘들진 않냐고 선뜻 오지랖을 건넬 말들도 생각했지만 괜한 위로가 될 것 같았다. 

다른 수금 업무가 있다고 뻔한 거짓말을 둘러대며 천천히 나갈 채비를 하니 이노우에는 시간을 많이 뺏어 미안하다며 가는 발걸음을 하는 내 어깨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의 기운에서 느껴지는 외로움 때문인지 다음에는 더 오래 있어도 괜찮냐는 말을 건네자 이노우에는 선뜻 그러라며 언제든 차를 끓여놓고 기다리겠다는 가벼운 농담을 건넸다. 

그와 헤어지고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어쩌면 그가 마지막으로 건넨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기 때문일 것이다.  

“참 오랜만이구만. 누군가와의 대화.”

기숙사에 들어서자마자 항상 그랬듯 답답한 헬맷을 벗어 서랍장 위에 올려놓고 구겨져있는 침낭에 쓰러질 듯 뻗어버렸다. 그리고 잠자코 천장을 바라보며 머릿속에서 가져온 생각들은 이노우에와의 대화와 그가 느끼고 있는, 아니 느끼고 있을 거라 추측하는 감정들에 대해 회상하기 시작했다. 도달하는 결론은 결국 한 가지뿐이었다. 그의 하루하루는 얼마나 쓸쓸하고 외로울까. 

고타츠의 온기가 몸에 남아있었는지 누워있던 기숙사의 바닥은 그날따라 유독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이노우에를 처음 만나고 그 이듬달부터 수금을 위해 다시 그를 찾아갔을 때부터 아마 우리는 친구가 될 준비를 하고 있던 것 같다. 나는 한인시장에만 있는 태양초 고추장과 신라면을 사들고 첫날 마신 차에 대한 답례를 했고 이노우에는 내 선물을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전형적인 일본인들의 가식적인 연기가 아니었기에 오히려 기분이 좋은 건 내 쪽이었다. 두 번째 방문부터는 처음 그와 나 사이에 있던 어색한 교류마저 떨쳐버릴 수 있었다. 어쩌면 나 혼자 가지고 있던 외국인 울렁증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와의 대화에서 어려운 말이 오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노우에 집에 있는 고타츠가 내 모든 살결들을 부드럽게 보듬어줬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그의 친구가 될 수 있는 명분이 충분했다.

“자네는 내가 따분하지 않나보군. 다른 젊은 사람들은 나를 전염병 걸린 사람처럼 취급하고 도망가던데. 아니면 그 고타츠 때문인 건가?”

이노우에는 한국 노인들한테는 경험해보지 못한 센스있는 농담을 잘했다. 그만의 특별한 능력인건지 일본 노인들의 유머감각이 뛰어난 건지 헷갈렸지만 누군가의 농담에 아주 오랜만에 미소를 지어보았다. 

“고타츠 때문인 것도 있습니다.”

고작 두 번째뿐이지만 오래된 습관이 몸에 밴 것처럼 한쪽 구석에 있는 그의 아내 제사상을 살펴보니 지난번과는 다르게 상차림이 조촐해졌다. 오래돼 보이는 사진들과 편지들, 그녀의 장식품으로 보이는 것들이 상의 대부분 자리를 차지했고 외로운 향초만 홀로 기운을 차리고 있었다.

“내가 아내하고 50년을 넘게 같이 살면서 그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도 모르더라고. 그래도 매일 일어나자마자 기도는 해.”

상차림을 보고 있던 내게 이노우에는 거실너머 주방에서 과일을 깎으며 혼자 떠들어댔다. 어쩌면 아내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과 미안함을 내게 대신 하소연하는 듯 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와 있는 시간에서 그의 아내 얘기만 나오면 이노우에는 급격하게 우울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 그는 내가 모른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웃음을 짓고 농담을 건네고 활기찬 대화를 이어갔지만 그 모든 게 아무렇지 않지 않았다. 그러고선 정적을 깰 무언가가 생각이 났는지 이노우에는 안방에 들어가 기초한국어 책을 가져와 고타츠 위에 펼쳤다.

“치매에 바둑이랑 언어 배우는 게 좋다는 데 바둑에는 영 흥미가 없어가지고 말이야. 그래도 언어는 외우기만 하면 될 거 아닌가?”

오랜만에 활자로 된 한국어를 책에서 보니 괜스레 반갑기도 했다. 책 사이에 껴있는 노트에는 안녕이라는 글자만 몇장씩 적혀 있고 그 다음에는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반갑습니다를 포함한 대부분의 인사말이 적혀 있었다. 삐뚤삐뚤 쓰여 있긴 했지만 똑같은 그림을 베껴서 그리려는 것처럼 펜을 정성껏 다루는 이노우에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엄청 열심히 하셨네요. 글씨도 잘 쓰셨어요.”

이노우에는 오른손 중지 한쪽에 생긴 굳은살을 보여주며 어린 아이처럼 자랑했다. 그러고선 책의 접힌 부분을 펼치며 이상한 부분이 있다며 내게 물어볼 것이 있다고 했다. 

“아이시떼루는 보통 한국말로 뭐라고 하나?”

“‘사랑해’라고 합니다.”

“근데 그거는 명령어 아닌가?”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가 이노우에가 말을 천천히 해준 덕에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이노우에가 받아들인 뜻은 결국 간단했다. 어떤 행동을 하라고 하는 ‘해’라는 말의 명령어를 글자로만 외우고 있었기에 그 말이 왜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단어 옆에 있냐는 말이었다.

“그러면 일반적으로 한국말로는 ‘사랑하고 있다’고 말해야 되지 않겠나? 영어도 I LOVE YOU는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 일본어도 아이시떼루도 지금 사랑을 하고 있다는 말이니까.”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사랑해’라는 말보다 ‘사랑하고 있어’라는 말이 사랑과 더 잘 어울리는 말이었다. 한국어로 ‘해’라는 말에는 ‘하고 있다’는 말의 줄임말 격으로도 사용된다는 말을 설명하자 이노우에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말 하나 때문에 사랑을 해야만 하는 것처럼 보여 지는군. 마치 부모가 어린 아이에게 강요하는 것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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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성 화백.

어쩌면 이노우에의 말대로 은혜와의 관계는 무언가의 힘에 이끌리는 강요의 관계처럼 돼있었을까. 그간 잠잠히 스쳐지나간 마음 속 메아리들이 귓가에 하나둘 울리기 시작했다. 사랑은 행복이라 배웠으니 행복하지 않아도 행복한 척이라도 해야 하는. 사랑과 결혼의 비극을 선명히 보았기에 그 결말을 누구보다도 알고 있었지만 우리는 특별해서 반드시 행복할 거라는. 하나같이 정확한 이유 없이 우리의 사랑은 꼭 그럴거라는, 꼭 그래야만 한다는 말들. 그렇게 현실에서 혼자 비틀거리니 은혜는 주저없이 떠났을 것이다. 도망친 것은 은혜였을까. 나였을까. 

이노우에와의 마지막 만남은 그의 집에 네 번째 방문했을 때였다. 세 번째 방문에는 그와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보니 3시간씩이나 흘러 뻔뻔하게 저녁식사까지 신세를 지고 말았다. 그래서 수금을 위한 네 번째 방문 때는 간단히 김밥과 제육볶음을 준비해 지난 저녁신세를 갚을 심산이었다. 

“곧 여행을 떠날 생각이야. 아주 오랫동안. 더 이상 여기에 있기 좀 힘들거든.”

돌이켜보면 이별은 항상 갑작스러웠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그와의 만남이 이제 없을 거라는 확신을 했고 이럴 줄 알았으면 그가 먹어보고 싶다는 잡채를 좀 만들어 올 걸 하는 아쉬움이 내 미간에 어렴풋이 묻어났다. 여기에 있기 힘들다는 말은 이미 거실 한쪽에 자리잡고 있던 그의 아내 사진들이 사라진 흔적들을 보며 짐작할 수 있었고 집안 곳곳도 짐정리를 마친 상태였다.   

“여행지는 정하셨어요?”

“아직은. 한국을 가볼까? 내가 한국어를 좀 하잖아.” 

유일한 일본인 친구와 그간에 생긴 정 때문인지 이별 소식을 듣고 나서는 그의 농담에도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아주 한 때, 감성적인 인간이라면 많은 감정들을 진심으로 흐느끼니 삶에 더 활력이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기도 했지만 이때만큼은 살아 숨 쉬는 수많은 감정 속에 어두운 감정만 잘 느끼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삶이 더 불행할 것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결국 인간의 삶속에 행복과 불행은 같이 머무는 것이다. 

“네. 가셔서 한국인 애인이라도 만들어 보세요.”

이노우에는 인위적으로 느껴질 만큼 크게 웃음소리를 내며 내게 한 방 먹었다는 듯 엄지를 내밀었다.

“좋은 생각이야. 죽음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랑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나름 정성스레 싸온 음식들을 그와 같이 먹으며 고타츠의 온기가 잘 느껴지지 않을 무렵부터는 서서히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내 신문사의 주소로 종종 편지를 하겠다고 말했지만 진심으로 믿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일본인이라도 된 듯 당신이 편지를 보내주면 정말로 반갑고 기쁠 것이라며 과장된 연기를 하고 말았다. 아마 그 어색한 연기는 이노우에도 눈치를 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되돌아가는 발걸음 속에도 마당 한 쪽에 이미 시들대로 시들어버린 수국만 덩그러니 눈에 들어왔다.

그 후로 일주일 쯤 지났을까. 이노우에의 집 우편함에 신문이 하나 둘 쌓이자 그가 말한 여행이 시작됐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신문함에 신문이 세 개가 쌓이는 날이 되고선 문득 그가 죽어버린 건 아닌지 직업병이 섞인 걱정이 되기도 했다. 손길이 닿지 않은 듯 나란히 겹쳐있는 신문 3개의 모습은 나같은 사람들에겐 이미 상징적인 장면이 되어버렸으니까. 이노우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안타까운 죽음이라 할 수 있을까. 이생에 남은 미련이 없으니 이만하면 됐다는 삶과의 안녕은 깔끔한 작별인사가 아닌가. 이노우에라면 죽음이 있기에 고귀한 삶이 완성된다는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의 죽음과 여행, 어느 쪽을 더 응원해야 하는 걸까. 무엇이 되건 어차피 이별이었지만 어느 쪽이든 가슴에 사무친 은밀한 응원이 될 것이다. 

조간 배달이 끝나고선 이노우에가 여행을 갔다는 사실을 말하러 사무실에 들어서니 매니저가 기다렸다는 듯이 택배가 왔다고 내게 알려주었다. 날 아는 사람이 없을 텐데 택배라니. 커다란 택배상자에 적혀있는 보낸 이를 살펴보니 이노우에였다. 곧장 그 무거운 택배상자를 낑낑거리며 숙소로 가져와 열어보니 손바닥만한 편지와 그의 집에 있던 고타츠가 담겨있었다. 

‘미안하네. 김 군. 오늘은 고타츠를 미리 데워놓지 못했어.’

마지막까지 이노우에다운 농담이 담긴 편지를 읽고선 편지를 덮으려 하자 편지지 끝자락에 한글로 쓰여져 있던 문구를 미처 보지 못할 뻔했다. 이제는 한결 깔끔해진 글씨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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