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린다는 말이 어떤 느낌인지 알 게 되었습니다. 수상 소식을 듣자마자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겨우 부여잡고 장난전화가 아니냐는 말만 되풀이 하고 말았네요. 같이 있던 아내가 손을 잡아준 덕분에 벌벌 떨리던 손도 겨우 진정할 수 있었습니다.
제게 올해의 사계절은 따듯한 계절 없이 전부 시린 계절이었습니다. 봄에는 대상포진에 걸려 입원을 했고 여름에는 수술했던 허리디스크가 또 말썽을 부려 입원, 가을에는 목디스크 수술 진단에 겨울에는 식중독으로 응급실까지. 그래서 그런지 수상소식을 아내에게 전하자마자 조용히 속삭이더군요. 그래서 그렇게 아팠나보다라고.
그래도 조금씩 썼습니다. 컴퓨터가 없으면 휴대폰으로 썼고 허리와 목이 아프면 누워서 썼고 바쁘면 새벽에 일어나 썼습니다. 이렇게 10년 동안 써보니 제게 습작행위란 마치 영혼의 벗인 느낌인 들어 여전히 타자기에 손을 올릴 때면 설레는 감정들 먼저 달래줘야 합니다.
돌이켜보면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못했습니다. 시인으로 저명한 이병기 선생의 호를 따라 이름을 지어주신 아버지, 멋모르고 쓴 제 첫 소설의 제목까지 정해주신 어머니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고 이 모든 게 사랑이었다는 걸 다시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10년은 묵묵히 써보라는 아내의 조언이 없었다면 지금쯤 글과 어색한 사이가 돼있었을 겁니다. 결혼 후 행복만 전해주는 예쁜 아내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조금씩’의 견고한 힘을 다시 되새겨준 전북일보사에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이 상에 담긴 책임감을 갖고서 좋은 글로 다시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신가람 씨는 전남대 철학과와 서강대 언론대학원을 졸업했다. 중도일보에서 지난 2021년까지 기자로 일했으며, 현재 다양한 문단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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