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수많은 책이 출간되고, 그만큼의 책이 버려진다. 힘겹게 모았을 연구자의 책장과 장서가의 창고도 맥없이 사라지고, 도서관에서 폐기하는 책도 상당하다. 책이 쉽게 없어지는 세상. 전라북도와 14개 시·군이 다음 세대에 전해야 할 책은 어떻게 지켜야 할까.
영구 보존 도서에 관한 생각은 2007년부터 ‘전라북도 작고 문학인 추념 행사’를 치르며 더 뚜렷해졌다. 이 행사는 높은 지명도보다 전북 문학사에 윤기를 더하며 자존을 세운 문학인들을 대상으로 연 소박한 세미나다. 초기에는 연구자들을 설득해 발제를 맡긴 후 학술지 발표를 유도했다. 이를 통해 작고 문학인의 삶과 작품 연구가 확산하기를 바랐다.
몇 년 전부터 틀을 바꿨다. 모든 작품을 후배 문학인이 나눠 읽은 뒤 언론매체에 서평을 발표하고, 함께 모여 감상을 이야기했다. 후배들은 선배들의 작품을 읽고 일상의 아름다움과 고운 인연을 느꼈으며, 느슨하면서도 끈질기고, 깐깐하면서도 찰진 선배들의 글쓰기를 통해 삶과 글이 진실했던 문학인의 참모습을 만났다.
그러나 이 사업에는 큰 걸림돌이 있었다. 문학인들이 쓴 책들의 행방이다. 서점과 헌책방, 인터넷 서점, 원로 문학인의 서재, 학교·지역 도서관 등 어디에서도 개별 문학인의 작품집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는 없었다. 기댈 곳은 출신지와 거주지의 도서관. 전북 1세대 수필가인 목경희(1927∼2015)·김순영(1937∼2019)의 수필집·서간집 열세 권은 전주의 도서관 곳곳에 있었다.
아쉬움도 남는다. 전주시립도서관에는 ‘전북의 살아있는 역사’라 불리던 작촌 조병희(1910∼2002)의 『완산고을의 맥박』이 없다. 역사적 사건과 인물, 유적 등을 찾아다니며 그것의 의의와 가치를 조명한 향토사학자의 노고가 담긴 책이다. 부안군립도서관에는 신석정(1907∼1974), 정읍시립도서관에는 정렬(1932~1994), 익산시립도서관에는 이광웅(1940∼1992) 시인이 생전에 낸 시집이 없다. 전라북도교육청 진안도서관에는 백운면 출신 문정희(1961∼2013)의 유고 시집이, 전북대학교 중앙도서관에는 1956년부터 20년 동안 대학에 근무하며 전북연극의 초석을 다진 박동화(1911∼1978)의 유고 희곡집이 없다. 1987년 6월항쟁부터 전주의 민주화운동을 서사시로 형상화한 최형(1928∼2015)의 『다시 푸른 겨울』은 시인의 출생지인 김제와 말년을 보낸 익산의 도서관에는 있지만, 정작 시집의 배경지인 전주의 도서관에는 없다.
이 책들이 처음부터 없지는 않았을 터. 세월에 바래고, 찾는 이가 없으니 자연스레 폐기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수년 동안 아무도 찾지 않는다고 그 책의 가치가 사라지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자체의 도서관은 도·시·군과 인연이 깊은 책을 뚝심 있게 간직해야 한다. 이 땅에 대한 지극한 애정으로 역사와 문화, 풍경과 감성, 언어를 오롯이 담은 책, 삶터의 자존을 올곧게 세운 책. 후손에게 물려줘야 마땅한, ‘백년도서’를 선정하고 알리고 보존하는 것은 도서관의 분명한 사명이다. 백 년 전 선조들이 후손을 위해 작정하고 남겨준 책이 많이 있었다면 우리 역사는 조금 더 당차고 꼿꼿해졌을 것이다.
아! 책 선정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조건은 저작권자의 무조건적인 협조다. 작가와 작품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다양한 활동 속에서 공공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소불위의 권력만 휘두르려는 안하무인도 왕왕 있기 때문이다.
/최기우 극작가
△최기우 작가는 다수의 희곡집과 인문서를 냈으며, 전북일보사 기자와 전주대학교 겸임교수, ㈔문화연구창 대표, 전북작가회의 부회장, 한국문학관협회 이사, 최명희문학관 관장 등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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