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다. 위기 상황에서 자주 사용되는 역설적인 표현이다. 서서히 다가오지만 치명적인 인구절벽과 지방소멸의 조짐은 우리의 마음속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예고된 위기에 맞서고 있는 지역과 도시의 운명은,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의 표현처럼, 큰 도로에 접해 있는 작은 골목길의 신세와 같다. 우리를 위협하는 위기(危機)에는, 그 단어가 암시하는 것처럼, 위험만 있고 기회는 없는 것일까? 이 질문이 이 글의 시작이자 끝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장소의 매력과 재능을 가진 지역이나 도시에 살고 싶어한다. 이러한 인간의 욕구는 도시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자, 도시 성장의 비밀이기도 하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도시에서는 혁신과 부를 창조하는 사회적 상호작용과 협력이 왕성하게 이루어진다. 도시를 연구하는 물리학자인 제프리 웨스트는 도시는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진화시킨 독창적인 메카니즘이라고 주장한다. 도시의 역사를 보아도 도시의 재능을 키워주는 것은 다름 아닌 인구 규모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양한 사람들을 특정한 지역이나 도시에 모이게 하는 일이 도시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 지를 새삼 일깨우는 대목이다.
인구 감소의 위기에 처한 지역이나 도시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사람을 끌어들이는 특별한 전략과 구상이 필요하다.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전 세계로 매력을 뿜어내는 대중문화가 있다. 덕분에 해외 젊은이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과 방문 욕구는 최고조다. 이 기회에 이들을 대상으로 한국문화와 산업을 이해하고 체험하는 것을 교육과정으로 하는 온라인 글로벌 대학의 설립을 제안한다. 대학 입학의 문턱을 낮추어 제한없이 학생들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언어와 문화를 온라인 강좌와 현장에서의 일과 경험을 통해 학습하는 매우 혁신적인 신개념의 대학이다.
학생이 모자라 대학이 줄어들고 있는 마당에 지역에 대학을 신설하는 것은 역발상에 가깝다. 그러나 고등교육 현장에서는 시대변화를 반영한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실험이 시작되고 있다. 미국의 애리조나 주립대학(ASU)은 과감한 혁신을 통해 성공한 사례로 유명하다. 온라인과 온·오프라인 혼합형 강의를 통해 비용을 줄이고 학습효과를 향상시키는 한편, 개인 맞춤형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학생의 성장을 돕고 있다. 최근에는 오픈AI와 협력하여 교육 현장에 챗GPT를 도입하는 등 미국 대학 최초로 AI를 공식 교육프로그램으로 채택하여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미 한국형 미네르바 스쿨이라 할 수 있는 태재대학이 작년 8월에 개교하여 신입생을 뽑고 있다. 이 대학은 온라인 수업과 현장 중심 경험학습으로 21세기형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교육목적으로 하고 있다.
필자가 생각하는 신개념의 글로벌 대학은 한국학을 교과과정으로 만들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문화를 체험하는 대안대학이다. 한국어와 K-culture가 교과과정의 핵심이지만, 지역의 고유한 역사와 산업에 대한 이해와 경험도 포함된다. 전문화된 지식을 전수하는 전통적인 아카데미즘을 추구하기보다는 일(실무)과 체험을 통해 학생 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교육 목표이다.
또한 비용이 적게 들고 학습효과가 크다는 점도 장점이다. 온라인 학습플랫폼과 현장 중심의 수업이 이루어지고 은퇴한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대학이기에 가능하다. 경험이 풍부하고 교육에 신념을 가진 은퇴한 전문가들이 수업을 이끌기 때문에 비용이 적게 들고 교육효과도 크다. 게다가 AI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언어의 장벽을 허물고 있어 온라인 기반의 대학 설립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온라인 기반의 글로벌 대학이 전북특별자치도에 세워지길 기대해 본다.
/서순탁 서울시립대학교 교수∙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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