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권모(32)씨는 설 연휴 동안 2006∼2007년 방송된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과 2007년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을 몰아봤다. 모두 방영된 지 15년이 넘어가는 드라마지만 여전히 재미있었다.
권씨는 "퇴근하고 학창 시절 인기가 있었던 가수의 뮤직비디오를 보거나 즐겨봤었던 드라마를 다시 보며 업무 스트레스를 푼다"며 "어린 시절 좋아했던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작품이 더 재밌게 느껴진다. 그 시절 느꼈던 즐거운 감정도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자)로도 불리는 젊은 세대의 유년기 향수를 자극하는 콘텐츠의 인기가 뜨겁다.
2009년 방송된 KBS 드라마 '꽃보다 남자' 등에 나오는 장면을 짧게 편집한 영상도 유튜브에서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조회수 500만회를 넘긴 영상도 여럿이다.
이들 영상에는 "OST만 들어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아련해진다", "드라마가 방영되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이 같은 MZ세대의 '유년기 향수'는 게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취업준비생 최모(25)씨는 지난해 10월 출시된 게임 '메이플랜드'에 흠뻑 빠졌다. 취업 스터디가 끝난 뒤 친구들과 어울려 PC방에서 3∼4시간씩 이 게임을 즐기는 것이 최씨의 즐거움이다.
'메이플스토리'의 2007년 버전인 메이플랜드는 넥슨의 콘텐츠 창작 플랫폼 '메이플스토리 월드'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달에는 동시 접속자 수가 6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최씨는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함께 아무 걱정 없이 게임을 했던 때가 생각이 난다"며 "몬스터를 잡고 아이템을 얻는 방식의 단순한 게임이다 보니 조그만 아이템만 얻어도 성취감을 느끼면서 취업 스트레스를 풀곤 한다"고 했다.
넥슨 관계자도 "예전 감성의 메이플스토리를 통해 유년 시절을 추억할 수 있어 많은 2030 이용자에게 주목받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최씨는 인기 애니메이션 시리즈인 '짱구는 못말려'의 극장판 영화 '어른제국의 역습'(2001년)에 빗대 자신을 설명했다. 옛날 간식과 TV 예능이 전시된 '20세기 박물관'에 다녀온 어른들이 추억에 취해 마을을 떠난다는 내용의 영화다.
최씨는 "몸이 크면서 사회가 요구하는 건 많아지는데 정신은 그에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아 벅차다는 느낌을 평소 많이 받는다"며 "영화처럼 영원히 과거에 살고 싶다는 생각도 가끔 드는데 게임 속 유저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런 생각을 나만 하는 것 같지 않아 위안을 느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취업난과 쉽지 않은 내집 마련 등의 문제로 현실이 점점 고단해지자 젊은층이 어린 시절의 옛 추억으로 눈을 돌린다는 분석을 내놨다.
임명호 단국대 교수는 "과거에는 중년이나 노인들이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이 같은 분위기가 청년들에게까지 퍼졌다는 건 그만큼 현실이 힘들다는 방증"이라며 "취업과 주거, 결혼 등의 어려움에 직면하니 아동기에 즐거웠던 추억을 회상하며 두려움을 극복하려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즐겁고 자신감을 얻었던 과거를 회상하며 미래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고 도전 의식을 북돋아 주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도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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