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엄마는 내게, “헌수야, 너처럼 수학공부 안하는 녀석의 ‘수학의 정석’을 두 권 정도 가져 오니라”라고 말씀을 하셨다. 두 권의 책은 이미 확보가 되었으니 나머지 두 권만 가져오면 수평이 맞지 않는 재봉틀을 괴어놓고 쓰기에 좋겠다며, 벽돌책을 꺼내 보지도 않는 내게 말씀 하셨다. “아니야, 나도 공부 할 거야”라고 말해도 엄마는, “몇 권 더 가져와라, 아버지 낮잠 주무실 때 목침 대신 쓰기에도 좋겠다.”라며 나를 놀리곤 하셨다.
그렇다고 내가 두꺼운 책을 무조건 기피하거나 읽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벽돌책을 끼고 살았던 적도 있다. 괴테의 파우스트,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벌 등, 세계문학전집을 꺼내 읽던 재미는 또 남달랐다. 오롯이 문과생이었던 나는 벽돌책이 주는 무게의 의미와 책의 물성에 빠져 들기를 좋아했다.
진안 장승초의 킹콩샘인 윤일호 선생님이 벽돌책을 들고 나타났다. ‘킹콩샘의 어린이 글쓰기 수업’이라는 제목에 글쓰기로 삶을 가꾸는 교실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이다. “이리 긴 글을 언제 다 썼어요?” 라는 물음에 호탕한 웃음으로 받아치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를 오래 바라보았다. 성량이 풍부한 목소리와 웃음 덕분에 막걸리 집에서 한 출간파티는 들썩들썩 했다.
아이들과 현장에서 만나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책에는 글쓰기와 글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들이 촘촘하게 이어져있다. 책은 크게 두 개의 마당으로 나뉜다. 첫째마당은 삶을 가꾸는 글쓰기, 둘째마당은 글쓰기로 가꾸는 한해살이로 나뉜다. 첫째마당은 삶과 글, 맺힌 마음 풀어내기, 나부터 드러내기 등으로 구성이 되어있다. 둘째마당은 시시하지 않은 시로 시작된다. 시와 동시, 서사문, 스토리큐브로 창의 글쓰기, 무심코 지나쳤던 것에 마음 주기 등 배움과 성장에 필요한 것들이 가득하다.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작년 한 해 초등교사 들의 죽음을 우리는 보았다. 교육공동체의 회복과 학교현장에서 교권이 보호되는 마음과 아이들이 학교 가는 것이 즐겁고 교사들도 학생들과의 모든 일이 즐겁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태보기도 했다. 각박한 삶 앞에서 삶을 바라보는 눈을 달리하고 물질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주는 행복과 소중한 가치들을 일깨우는 삶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삶을 가꾸는 글쓰기를 읽다 보면 한 사람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글쓰기 정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자연스레 알게 된다. 어려운 시대에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도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 길이 교육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길임을 알기에 그 길을 가고 싶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교실의 아이들, 마음이 아픈 아이들을 만나면서 아이들을 보듬고, 교사의 말을 따르지 않는 아이와 소통하고 나누는 일, 글쓰기를 통하여 조심스럽고 관심 있게 열어갔던 일들을 보여주고 있다. 책속에 들어있는 아이들의 말은 매우 논리적이다. 진실하고 솔직한 글쓰기와 자신의 글을 통해서 마음도 풀어지고 스스로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는 것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때론 가슴 아픈 사연들이 펼쳐져 교실이 울음바다가 되고 서로를 치유하는 자리가 되며 마음의 상처가 아무는 일도 있다.
글쓰기로 사람과 소통하고 나누는 방법이 들어있는 책을 통해서, 저자는 글쓰기 지도나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 글쓰기의 시선을 새롭게 찾고 싶은 분에게 조금의 도움을 주고자 썼노라고 말한다. 글쓰기를 통하여 한해살이 식물이 아닌 여러해살이 식물로 거듭 피어나는 아이들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장승초등학교 킹콩샘의 다독임이 있는 글쓰기가 봄볕에 오래도록 머물기를 바란다. 이번 주말에는 모래재를 굽이굽이 돌아 봄꽃이 핀 진안을 둘러봐야겠다.
김헌수 시인은
2018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삼례터미널'로 등단했다. 또 그는 '작가의 눈' 작품상을 받은 이력이 있다. 그의 시집으로는 <다른 빛깔로 말하지 않을게>, <조금씩 당신을 생각하는 시간>이 있고, 시화집으로는 <오래 만난 사람처럼>, <마음의 서랍>이 있다. 오디오북으로는 <저녁 바다에서 우리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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